“다섯 손가락 깨물어 봐라.”
“엄마, 열 손가락이 아니고?”
“유난히 아픈 손가락이 있지. 뭔 소린지 몰러?”
엄마의 아픈 손가락은 작은언니다. 작은언니는 열여섯, 그러니까 중3 때 부산 고모네로 보내졌다. 작은언니 말로는 국민학교 때 원불교 학교에 가라는 말도 들었다고 다. 말을 막 떼었을 무렵에는, 아들만 있는 우거티 아줌마가 작은언니를 달라고 했다는 얘기도 있었다. 언니의 삶은 늘 집 밖으로 밀려나 있는 것 같았다.
한번은 엄마가 작은언니를 크게 혼냈다. 저녁 먹을라는데 작은언니가 집을 나갔다. 우거티 아들만 있는 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있던 작은언니를 엄마가 찾아냈다. 그런 작은언니는 아부지랑 엄니가 아파서 말을 못할 때면, 기적처럼 정확한 발음으로 말을 하게 만드는 재주가 있다. 나는 그 재주가 때로 불편했다. 우리 중 누구도 해내지 못하는 일을 언니는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것 같아서였다.
엄니가 돌아가시고, 간병인은 금요일까지만 집에 왔다. 오 남매는 돌아가며 주말마다 아부지를 봤다. 작은언니는 순번만 되면 나한테 전화를 했다.
“짠남아, 아부지가 너만 찾어.”
“아부지가 왜?”
“몰러. 일단 와 봐.”
삼례에 도착하자마자 작은언니가 물었다.
“아부지 목욕은 어떻게 시키는 거여?”
“잘 봐. 일단 변기 의자에 아부지를 앉혀.”
“바닥 의자 말고?”
“여기 손잡이가 있잖여.”
“아, 더 편하겠네. 그리고?”
나는 변기 의자며 손잡이, 물 온도까지 하나하나 설명했다. 화장실 문이 열리자 아부지는 “주… 죽어야 혀”를 했다. 놀라 문을 닫고 문 안에서 설명을 이어 갔다. 작은언니는 거실에 누워 떡이나 집어먹으며 내 말을 들었다. 결국 나는 혼자 아부지를 씻겼다.
다음 순번에도 작은언니는 나를 불렀다.
“언니, 수작 부리지 마.”
“아녀. 너만 찾는다니께.”
딸까지 데리고 왔다기에, 나는 그 주말엔 가지 않았다. 저녁에 전화가 왔다.
“아부지 다 나았어.”
“아부지가 다 나았다고?”
“정확한 발음으로 말했어.”
“뭐라고?”
“씹팔.”
아부지는 뇌경색 이후 말을 하지 못했다. 발음도 어눌해서, 입을 열어도 거의 알아들을 수 없었다. 그런 아부지가 욕을 했다는 건 위급했거나 화가 난 순간이었을 것이다. 그날 이후로 아부지는 의사 표현을 조금 더 또렷하게 하게 됐다. 목욕은 여전히 내 차지였다. 나는 그 말이 고맙기보다, 오래 마음에 걸렸다.
엄마 때 일이다. 엄마가 뇌수술 뒤 누워 있을 때, 오 남매는 돌아가며 곁을 지켰다. 작은언니 순번이던 날, 엄마는 위중했다. 다들 거실에 누워 있는 엄마만 보고 있었는데, 작은언니는 마당에 나가 마늘을 캐기 시작했다.
‘며칠 못 산다는데, 마늘을 캐서 뭘 한단 말인가.’
그날 엄마 밥 먹이고 기저귀를 간 건 여동생이었다. 작은언니가 마늘을 캐자, 나와 남동생도 텃밭 일을 도왔다. 마늘을 다 캐고 풀을 뽑고, 전지가위로 울타리를 손봤다. 나는 소리쳤다.
“엄마 보러 왔으면 엄마를 봐야지.”
작은언니는 말이 없었다. 큰 모자를 눌러쓰고, 엄마 파자마를 입은 채 울타리까지 정리하고 들어왔다. 씻고 나오자 누워 있던 엄마가 눈을 떴다. 우리는 엄마를 부축해 앉혔다. 엄마는 한참 천장을 보더니 작은언니를 봤다.
“마… 마늘 다 캤어?”
그때 나는 엄마 곁에 있었지만, 엄마가 끝까지 붙들고 싶었던 삶은 작은언니 쪽에 더 가까이 있었다. 작은언니는 멈춰 버린 엄마의 세상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