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조증상

by 이선남

버스 정류장 앞 긴 의자에 어르신이 앉아 있었다. 의자 밑에는 큰 포대가 놓여 있었다. 어르신과 눈이 마주쳤다.

“안녕하세요. 장에 가세요?”

“잉, 오늘은 전주 중앙시장에 가서 팔라고.”

어르신이 일어섰다.
포대를 트렁크에 넣으려 했지만 들어가지 않았다. 내가 잠시 머뭇거리자 어르신은 포대를 빼서 뒷좌석 문을 열고 눕혀 밀어 넣었다. 나는 접은 수레를 그 아래에 끼웠다. 앞자리에 앉은 어르신이 내 얼굴을 한 번 훑었다.

“인자 보니께 니가 옛날 같지 않고 많이 늙었다잉.”

“그래요? 급하게 나오느라 화장을 못 했어요.”

“아녀. 고단한 것 같은디?”

차가 움직이자 어르신은 딸 이야기를 했다. 공항 보안대에서 일한다고 했다. 전에 냉이를 만 원 받고 나에게 팔았더니 딸이 왜 공짜로 안 줬냐고 핀잔을 줬다고 했다. 그 만원은 어르신이 내리면서 냉이를 건네길래 지갑에 있던 돈을 그대로 내민 것이었다.


시장 입구에 차를 세웠다. 포대를 내려 주고 수레를 펴 드렸다.

“건강하세요. 딸한테는 엄마가 뒷심이더라고요.”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고, 근디 느그 엄마는 죽어라 고생만 허다가 죽었어야.”

나는 핸들을 잡은 채 어르신을 바라봤다.

“근디, 전조증상이 있었을 텐디.”

그 말을 듣는 순간 막내이모의 말이 떠올랐다.

“느그 엄마가 수술해서 일찍 죽었는지 몰라야.”


7년 전, 엄마 수술을 밀어붙인 건 나였다. 그때 나는 전조증상 같은 것을 생각해 보지도 않았다. 뇌압이 오르면 엄마는 베개에 머리를 박고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했다. 어릴 적 이야기와 딸들 이름, 동네 사람들 이름이 뒤섞였다. 나는 언니들과 동생들에게 전화를 돌렸다.


수술 뒤, 엄마는 몇 달 만에 식물인간이 되었다. 나는 엄마 침대에 엎드려 몇 날 며칠을 울었다. 옆 침대 보호자가 간병인을 통해 말을 전했다.

“환자가 우는 소리를 듣고 힘들어한다네요.”

나는 커튼을 더 당겼다.


며칠 뒤 간병인이 전화를 했다.

“옆 침대 환자가 기침을 자꾸 해서요. 어머님 머리카락이 목에 들어가서 그런 것 같다고 머리를 좀 밀어 달라하셨어요.”

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러지 마세요.”

퇴근하고 병실에 갔을 때 엄마 머리는 이미 밀려 있었다. 두피가 그대로 드러나 있었다. 나는 화가 나 간병인에게 말했다.

“제가 밀지 말라고 했잖아요.”

간병인이 나를 복도로 불러냈다.

“옆 침대 환자, 스물일곱 살 아가씨래요.”

사방이 커튼으로 가려진 침대였다. 미술을 전공했다고 했다. 학원을 열어 주겠다고 했다가 새벽에 뺑소니를 당해 삼 년째 누워 있다고 했다. 간병인이 말했다.

“그 엄마가 맨날 그러더라고요.”

잠시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내가 학원만 안 차려 줬어도….”


그날 나는 병원 밖으로 나왔다. 근처 상점에서 모자 두 개를 샀다. 햇반과 반찬을 들고 병실로 돌아왔다. 그리고 엄마 머리에 모자를 씌웠다. 모자가 자꾸 돌아갔다. 나는 다시 고쳐 씌웠다. 손을 떼면 모자는 다시 돌아갔다. 나는 고쳐 씌웠다.


몇 달이 지나도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전조증상을 나는 큰아들에게 꺼내 놓았다. 전조증상을 알아차리지 못한 일과 엄마의 수술, 그리고 병실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했다. 가만히 듣고 있던 큰아들이 말했다.

“저라도 수술을 선택했을 거예요.”

잠시 후 나를 바라보며 큰아들이 물었다.

“그럼 엄마는 저를 원망하실 건가요?”

나는 그 질문 앞에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까지도 그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고 있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