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묻지 않았다

by 이선남

“네, 어머니. 지금 갈게요.”

당직 끝나고 막 누웠던 남편이 다시 방문을 열고 나왔다. 시어머니 휴대폰이 또 안 된다고 했다. 며칠 전에도 같은 일로 다녀왔었다. 그 전화기는 내가 5년 전에 해 드린 것이었다. 폴더폰 쓰시던 어머니는 스마트폰을 받아 들고 한참을 들여다보며 웃었다.

현관을 나서던 남편이 말했다.
“이참에 새 걸로 사드릴까?”

나는 웃으며 말했다.
“어머님께 물어보고 사드려요. 내 꼴 나지 말고.”

그 말을 하는데, 문득 아버지가 떠올랐다.


5년 전, 삼례에 갔을 때였다. 아버지가 전화기가 안 된다고 했다. 낡고 오래된 아버지의 폴더폰을 보니, 스마트폰을 쓰며 세상 참 좋아졌다고 하던 시어머님 말이 떠올랐다. 나는 스마트폰을 꺼내 보였다.

“아부지, 이게 요즘 쓰는 건데요. 이렇게 터치해서 써요.”

아버지는 말없이 화면을 들여다봤다. 아버지는 뇌경색 이후 말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대신 손짓과 몸짓으로 마음을 전했다. 나는 큰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아부지, 이거 봐요. 얼굴 보면서도 통화가 돼요.”

아버지는 화면을 보더니,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폴더폰과 스마트폰을 함께 들고 물었다.

“아부지, 어떤 거로 하실래요?”

아버지는 말없이 스마트폰을 가리켰다. 나는 그것을 대답이라고 믿었다. 그날 읍내로 나가 스마트폰을 사드렸다. 아버지는 웃으며 내 어깨를 토닥였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괜히 휴대폰 매장을 한 번 더 바라봤다. 엄마 생각이 문득 스쳤다.


일주일 뒤였다. 큰언니가 내게 전화했다.

“선남아.”
“응?”
“아부지 얼굴은 안 나오고, 귀만 나오더라.”

나는 웃었다. 한참 웃었다. 그게 왜 웃긴지, 그때는 몰랐다.


다시 가 보니, 아버지는 화면을 몇 번이고 눌러 보고 있었다. 같은 자리만, 계속 눌렀다, 나는 아버지 손을 잡고 화면을 함께 밀어봤다. 화면은 잘 움직이지 않았다. 아버지는 손을 떼었다가, 다시 눌렀다. 또 눌렀다. 나는 옆에서 보고만 있었다.


그다음 주에는 아버지는 전화기가 어디 있는지 몰랐다. 늘 꺼져 있었다. 결국 여동생이 폴더폰으로 바꿨다.

“언니, 아부지는 경증 치매라 이거 못 써.”


어느 날, 병원 다녀오는 길이었다. 아버지가 창밖을 가리켰다.

“삼례역이요?”
“어.”

나는 차를 돌렸다. 아버지가 뒷좌석의 내 책을 툭 쳤다.

“책이요?”
“어.”
“사 오라고요?”
“어.”

나는 잠시 멈췄다. 삼례역은 자리를 옮겨, 계단을 올라가야 했다. 휠체어를 밀고 올라가기에는 복잡해 보였다. 아버지를 한 번 보고, 다시 계단을 봤다.

“아부지, 인터넷으로 사서 보내 드릴게요.”

아버지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것을 또 대답이라고 믿었다.

집에 와서 화면을 한참 넘기다가, 예전에 아버지가 사 오던 책이 떠올랐다. 비슷한 걸 골라 장바구니에 담았다.


달 뒤였다. 요양보호사가 그만두겠다고 했다. 이유는 잘 말해주지 않았다. 결국 동네 이장각시 언니에게 아버지를 부탁했다. 삼례집에 갔을 때였다.

“선남아, 여기 좀 봐라.”

언니가 책을 펼쳐 보였다. 나는 눈을 못 뗐다. 낯 뜨거운 사진들이 가득했다.

“아부지 왜 이러시냐.”

“언니, 이게 제가 인터넷으로 사서 보낸 거예요.”

말해놓고 나서야, 잘못됐다는 걸 알았다.

“니가 이런 걸 왜 사서 보내?”

언니는 내 말을 믿지 않았다. 언니가 가고, 나는 다시 그 책을 펼쳐 보았다. 낯 뜨거운 사진들이 계속 이어졌다. 나는 책을 다시 덮었다. 그제야 요양보호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아버지가 자꾸 스킨십을 해서요.”


아버지는 말을 못 했다. 대신 손으로 마음을 전했다. 나는 그걸 다 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좋을 것 같은 걸 골라 드렸다. 아버지는 또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것을 대답이라고 믿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었던 것인지도 모른다.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