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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14. 2024

흥미로운 게

Day 8 Camino de Santiago

 쾌청한 하늘이 눈에 들어온다. 어제 빵을 구매했던 베이커리에 다시 들렀다. 바게트를 하나 구매하고서 슈퍼마켓이 열리길 기다린다. 채 열기가 다 가시지 않은 바게트를 베어먹으며 연신 미간을 찌푸린다. 한국에서도 이런 바게트 파는 곳을 발견하면 삶의 질이 올라갈 거라고 말했다. 빵을 싫어한다고 말했었는데 나의 섣부른 오산이었나 보다. 거의 매일 먹어도 맛있고 질리지 않는 바게트에 애정이 생긴다. 의외인 건 프랑스에서보다 스페인에서 먹은 바게트가 대체로 더 맛있다. 내가 좋아하는 바게트는 겉이 딱딱파삭하면서 고소한 향이 나고 속은 쫀득하다. 프랑스에서 먹은 바게트 중 가장 맛있었던 건 보르도에서 마지막 끼니로 먹은 바게트였다. 스페인에 와서 여러 작은 도시를 옮겨 다니며 그에 충분히 비견할 수 있는 맛있는 바게트를 여러 번 만났다. 예상치 못하게 고마운 순간들이었다.

 실망했다. 마트가 9시에 연다고 했는데 열리지 않길래 확인해 보니 일요일엔 영업을 하지 않는다. 아쉬운 대로 아침을 해결하려 다시 베이커리로 발걸음을 옮긴다. 어제 먹었던 씨앗이 들어있는 바게트를 하나 더 구매하고 햄도 구매한다. 베이커리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햄을 뜯는다. 바게트를 찢어서 햄과 아침으로 먹는다. 유럽에 와서 햄이 너무 저렴하고 구하기 쉽고 맛있다. 한국에선 터무니없이 비싸던 햄들도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종류도 무지하게 많아서 골라 먹고 조합해 보는 재미가 있다.


 옆에 있는 슈퍼가 오픈 준비하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다행이라 말하며 슈퍼에 가서 점심으로 먹을 초리조와 살라미를 구매한다. 내일 아침으로 먹을 사과도 두 개 담는다. 빵과 햄과 사과로 다시 가방을 가득 채워내고서 길을 걷기 시작한다. 오늘 낮 기온이 37도까지 올라간다기에 수영해 볼 요량으로 5km 거리에 숙소를 예약해뒀다. 허나 수영은 하지 않기로 했다. 어제 수영해 보니 바닷물에 들어갔다 제대로 씻지 못하고 걸어야 하는 게 영 찝찝할 것만 같아서 수영은 하지 않기로 했다.


 한 걸음씩 꼭꼭 내딛는다. 평소에는 잘 신경 쓰지 않지만 종종 나의 걸음에 나의 발에 집중해서 걷다 보면 꼭꼭 걷는다는 게 참 기분 좋은 일이구나를 깨닫곤 한다. 누나가 북쪽길의 고도를 보고서 걱정스러워하기에, 프랑스 길로 돌아가는 게 좋을까 고민하기에 무슨 말을 뱉어야 하나 고민한다. 스스로에게 욕심이 있고 쉬운 길만을 찾아 포기하는 걸 좋아하지 않을 사람이라는 걸 알기에 조심스럽다. 고민함으로써 바뀔 수 있는 문제이고 그런 고민은 좋아 보인다, 어디까지나 장단점을 두고 비교하면 될 문제이고 선택하고서 옳게 만들면 된다고 말하며 내가 생각하는 두 길의 장점에 대해 늘어놓았다. 누나는 그래도 여기에 왔으니 계속해 보고 싶다고 했다. 다만 그 표정이 밝아 보이지는 않았다. 자신의 웃음으로 주변을 밝혀줄 수 있는 사람이 지쳐 보일 때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은 생각에 어렵다.


 1시간 남짓 걸어서 오늘 머물 알베르게에 도착했다. 고작 11시였다. 야외 테이블에 앉은 직원에게 물으니 3시부터 들어갈 수 있다고 한다. 뒤로 가면 앉을 공간이 있다며 안내해 준다. 오늘 유독 쨍한 볕 아래 빛나는 초록 잎들을 가득 눈에 담을 수 있는 공간이었다. 못다 마른 빨래를 널어내고 키보드를 펴들고 자리를 잡는다. 어젯밤 다 마시지 못한 맥주 한 캔을 나초와 곁들인다.


  누나의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 것 같아 옆에 다가가 이런저런 말을 뱉어냈다. 산책 가자고 졸라내서 짧게 길을 나서다 풍경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앉았다. 누나가 안고 있는 힘듦은 체력적 힘듦인 것처럼 보이기에, 나의 비슷한 기억들을 이야기해주었다. 누나의 표정이 조금 나아진다. 누나는 본인에게 필요한 것이 장단점 비교가 아니라 이런 이야기라며 말해주었다. 관계 속에서 조금씩 더 알아가고 하나씩 깨닫게 되는 것들이 재미있다.


 지독하게 더웠다. 내가 경험한 스페인의 여름은 한국과 달리 습하지 않았다. 장렬하는 해만 피해 내면 시원했다. 다만 오늘은 그렇지 못하다는 게 문제였다. 바깥 기온이 36도였다. 9시 30분은 넘겨야 어두워지는 이곳에선 5시가 가장 더운 시간이었다. 처마 밑에 숨어들어도 불어오는 바람이 뜨거웠다. 후텁지근하지 않았다. 그런 단어로 표현해낼 수 없었다. 건조하고 뜨거운 바람이 불어오며 몸을 데워오는 게 가히 고통스러웠다. 체크인을 마치고서 더위에 지친 몸을 씻어내고 앉아서 글을 쓴다. 7시엔 저녁을 먹으러 걸음을 옮긴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뒤로는 산맥이 춤을 추는 절경이 눈에 담긴다.


 체크인을 마치고서 더위에 지친 몸을 씻어내고 앉아서 글을 쓴다. 7시엔 저녁을 먹으러 걸음을 옮긴다.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는다. 뒤로는 산맥이 춤을 추는 절경이 눈에 담긴다. 올리브유와 소금, 식초로만 간을 한 샐러드로 식사를 시작한다. 이곳에서 직접 만드신 건지 함께 서빙된 와인에 알베르게의 이름이 새겨져있다.

덴마크, 미국에서 온 친구들과 주로 대화하며 식사했다. 덴마크 불닭볶음면 사건, 덴마크 내 이념에 대한 이야기, 한국 재벌 이야기, 미국 생활 이야기 같이 어쩌다 피어오른지 모를 주제들을 나누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미국과 덴마크에서 온 친구가 '재벌'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다는 게 신기했다. 무릇 수다가 그러하듯 어디서 시작해 어디로 흘러갈지 모른다는 게 흥미로웠다. 각자 다른 배경을 가지고 시간을 보내온 이들이 길을 걷겠다고 한 군데 모여 그런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소중했다.


 8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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