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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14. 2024

완벽한

Day7 Camino de Santiago

 가방을 챙겨들고 사과를 씻어 밖으로 나왔다. 한쪽이 붉게 물든 하늘이 눈에 들어왔다. 바빠도 여행에서 즐길 수 있는 낭만은 포기하지 말자는 약속을 지키려 일출이 잘 보이는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잠시 서서 그 풍경을 보며 크게 호흡해 본다. 잡생각들이 머릿속을 채워내지 않게 만들어주는 아름다운 풍경이 좋았다.


 길의 초반부터 독특한 지형과 함께 절경이 눈에 담긴다.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아름다운 풍경 앞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맑은 날씨가 감동을 더 해주었다. 누나가 오르막에서 힘들어하며 이 길을 왜 걷는가에 대해 생각한다고 했다. 나는 길을 걸으며 심박수가 오르기 시작하고 몸에 열이 오르고 땀이 나기 시작하면 느낄 수 있는 상쾌함과 같은 그것이 좋다. 내 안을 어떤 부정이 채워내지 못하게 튼튼한 벽을 세워두고 내게 집중해 볼 수 있는 그 시간이 좋다.


 오늘의 목적지는 데바라는 작은 마을이다. 걸어서 10분 정도면 한 바퀴를 둘러볼 수 있는, 작다는 말이 잘 어울릴 만큼 충분히 작은 마을이었다. 해변을 품고 있었고 그 작은 마을에 사는 이들은 온통 해변으로 모인 것만 같이 해변은 붐볐다. 우리는 베이커리에 들러 바게트를 샀다. 건네받은 바게트가 따듯하기에 한입 베어 물어본다. 딱딱파삭한 식감, 내가 좋아하는 그것을 완벽하게 표현해낸다. 바게트에 씨앗이 가득 들었다. 해바라기씨, 치아씨드, 호박씨 같은 것들. 원래부터 잘 만들어진 바게트의 고소함을 좋아하지만 부재료가 더해주는 은은한 고소함도 완벽하게 마음에 들었다.


 내가 정육점 흥미로워하지 않겠냐 묻는 누나의 물음얼른 고개를 끄덕인다. 하몽과 라콘, 그리고 파테같이 생긴 처음 보는 햄을 구매했다. 작은 슈퍼에 들러 맥주와 음료를 사서 해변으로 향한다.


 벤치에 앉아 우리가 사 온 것들을 펼쳐두고 점심을 먹는다. 정육점에서 직접 고른, 그 자리에서 썰어주시는 햄을 스페인에 와서 먹어보는 경험이 특별했다. 처음 먹은 건 하몽, 여태껏 먹은 것 중, 가장 비싼 하몽이었다. 실온에 진열되어 있는 그것의 비주얼이 흥미를 끌었고 가격대가 높아짐에 따라 맛이 어떻게 변하는가 하는 것이 궁금했다. 살코기 부분의 맛은 여느 그것과 비슷했으나 지방의 향이 깨끗하고 풍미가 좋았다. 두 번째로는 라콘이라는 햄을 먹었다. 넓적한 햄이었는데 처음 보는 이름이었고, 넓은 햄 중에도 많이 먹던 것과는 다른 비주얼이라 구매해 보았다. 기억에 남을 만한 특장점은 없었지만 충분히 맛있었다. 마지막으로는 Txarri Burua라는 이름의 햄이었다. 틀에 넣고 굳힌 듯 각진 모양을 가지고 있었고, 자세히 보니 머릿고기 같았다. 돼지의 코와 귀가 포함되어 있었다. 누나에게 어떤 고기로 만들어진 것인지 알리지 않은 채 맛을 물었다. 누나는 순댓국 맛이 난다고 했다. 세 가지 햄 중 가장 기억에 남고 또 먹고 싶은 것을 고르라면 단연코 그것이다. 머릿고기가 내는 녹진한 지방의 맛에 로즈메리의 향이 났다. 특장점과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게 좋았다. 지나치게 완벽한 식사였다.



 여운을 가지고 바다로 향했다. 맨발로 디딘 해변의 모래는 들끓고 있었다. 우리는 해변의 가운데에 가방을 놓아두고 바다로 뛰어들었다. 수심이 키를 넘지 않는 곳에서 쉬지 않고 일하는 파도에 기대어 찰랑대고 있었다. 그 순간이 주는 평화로움, 자유로움, 편안함이 좋았다. 고개를 돌리다 보면 절벽이 있었고 그 위로 푸르른 초록색 무엇들이 바람에 흔들리고 있었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과 파도에 흔들리는 나의 몸은 그 순간에 그곳에 존재함으로써 그리 다르지 않았다.


 마트에 들러 수박과 맥주를 사들고 나무그늘 아래 앉았다. 물이 채워주지 못하는 갈증을 완벽하게 채워주는 무엇이었다. 오랜만에 먹는 수박에 입꼬리를 올린다. 무더운 날에 운동하고서 수박을 먹는 걸 즐기곤 했다. 그때도 오늘도 내가 든 수박의 조각은 커다랬다. 한 입 가득 먹는 걸 좋아한다. 같은 음식도 입안 가득 차게 먹었을 때 더 맛있다고 느낀다. 특히 수박은 그러하다. 수분감을 잔뜩 머금고 있는 그것은 먹음과 동시에 마셔야 하는 음식이다. 달콤 시원한 수분이 주는 만족감을, 특히 무더운 여름에 시원한 수박이 선물해 주는 행복감을 좋아한다.


 7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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