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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13. 2024

쉬어가는 거

Day6 Camino de Santiago

 많이 지쳐 보이는 누나의 모습에, 이 길을 즐기지는 못하고 있다는 말에 오늘은 쉬어가기로 했다. 모두가 길을 떠난 아침에 느지막이 일어나 아침을 먹고 길을 나선다. 오늘 걸어야 하는 길은 3km가 채 되지 않는다. 여유가 생긴 덕에 마을을 잠시 둘러본다.


 고개를 돌리다 눈에 들어오는 펜스, 그 뒤로 새파란 하늘. 누나를 멈춰세우고서 손을 이끌고 그곳으로 향한다. 다가갈수록 푸른 바다가 조금씩 모습을 드러낸다. 바다마을에 왔구나, 평범한 길의 그 뒤로 드넓은 바다를 마주할 수 있구나, 북쪽 길 오길 잘 했다며 감탄한다. 순례길을 걷기로 마음먹고서 우리가 향할 곳이 정해져 있어도 바쁘더라도 그 속에서 마주할 수 있는 아름다움은 놓치지 말자고 얘기했다. 종종 그 말을 지켜나가는 우리가 기특하다.


 카페에 잠시 앉았다 장을 보러 나선다. 어젯밤 마을에 작은 페스티벌이 있었다. 그 흔적을 지워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쓰레기를 치우고 물청소를 하는 이들. 오래된 도시가 너저분해 보이지 않으려면 그런 노력이 필요하구나를 직접 눈으로 마주하고 있음이 주는 느낌이 신선했다.


 마트에 들러 장을 보고서 길을 나선다. 30분쯤 걸어 오늘 머물게 될 마을에 도착했다. 숙소 체크인까지 두어 시간이 남았다. 점심으로 먹으려 사 온 바게트와 햄, 와인을 꺼낸다. 테이블은 없다. 길에 앉아 포장을 뜯어내고 보르도에서 구매한 오프너로 와인도 열어낸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종종 길에 앉아 무언갈 먹곤 한다. 제각기 열심히 발걸음을 옮기는 이들에게 시선을 두곤 하는 게 즐겁다.


 오늘 구매한 햄은 살치존과 초리조 팜플로나. 살치존은 지방의 옅은 산미가 느껴지고 고소한 맛이 좋았다. 초리조 팜플로나는 말린 고추의 향이 매력적이었다. 사실 초리조 팜플로나는 그 자체가 흥미로웠다기보다 포장지에 새겨진 팜플로나라는 이름이 흥미를 끌었다. 팜플로나라는 도시에 하루 머물렀다는 이유로 손이 향했다. 햄의 이름에 어떤 도시가 새겨진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여수 갓김치 같은 건가.


 숙소는 아기자기하고 이쁜 꽃들로 꾸며져 있었다. 그 마을엔 바다를 배경으로 두고 있는 이쁜 집들이 있었다. 낮잠을 청하고서 6시쯤 스페인에서는 조금 이른 저녁을 먹으러 나왔다. 레터스를 한 통 씻어내고 마트에서 사 온 빠에야를 레인지에 조리한다. 남은 햄까지 한자리 차지하고 나면 우리의 간단한 저녁이 된다.


6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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