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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12. 2024

부럽다는 건

 컵 두 개에 달걀 두 개씩을 깨 넣는다. 소금을 넣고 물도 적당히 넣는다. 잘 풀고서 레인지에 2분 조리한다. 순례길 우리의 소중한 단백질 보충원 완성. 사과도 씻고 요플레도 함께 테이블에 올린다.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서 길을 나선다. 첫 행선지는 세련된 파란 간판 앞. 9시에 오픈하는 바스크 치즈케익 가게다. 5분 전 도착해 바스크 치즈케익 오픈런. 가벼운 마음으로 발걸음도 가벼워지길, 내 가방도 가벼워지길 바라며 순례길을 걷는다.


 손에 들린 바스크 치즈케익이 북쪽길의 시작을 함께한다. 북쪽길의 시작은 해변을 거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고도가 춤추기 시작한다. 그리 극심하지는 않은 그러나 끝나지 않는 오르막과 내리막을 반복하며 누나는 지쳐 보였다.


 독일에서 온 순례자를 만났다. 일주일정도 순례길을 걸을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그녀는 커다란 가방을 가지고 있었다. 우리에게 가방이 작다며 진짜 순례자에 가까워 보인다고 했다. 트래킹을 좋아한다고 했고, 워홀 비자로 뉴질랜드에서 7개월가량 생활했다고 한다. 아시아 국가에 가본 적 있냐는 물음에 인천공항에서 경유하며 머문 호텔이 좋았다고 했다. 그녀는 네팔에 가고 싶다고 했다.

 트래킹 하러? 하고 물었다. 그렇다고 한다. 나도 네팔에 다녀왔다고 하니 모든 걸 이야기해 달라 하기에 지난 기억들을 더듬어 본다. 그녀는 곧 가게 될 거라며 흥미로워하는 듯 보였다. 내가 하는 경험은 대부분 나의 선택으로서 만들어진다. 그 선택들이 모여 인생이 되고 그 인생에서 풀어낼 이야기들이 생겨난다. 그 이야기가 언제 어디에서 누굴 만나 빛을 바라게 될지 모른다는 게 신기했다. 지금 내가 걷고 있는 이 길이 나에게 앞으로 다가오게 될 시간들에 좋은 에너지와 이야깃거리가 되어주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오리오라는 작은 마을에 잠시 머물렀다. 벤치에 자리를 잡고 가방에서 갈색 종이봉투를 꺼내든다. 어제 구매한 바게트에 햄과 치즈를 넣은 우리의 점심이다. 간단한 레시피에 간단한 맛이었다. 순례길을 걸으며 쉴 기회가 생기면 신발과 양말을 벗고 발에게도 휴식을 준다. 습기 찬 등산화를 벗고 양말까지 벗어낼 때의 해방감과 같은 그것을 좋아한다. 작은 마을에 적지 않은 유동인구가 있었다. 제각기 다른 목적을 갖고서 걷는 듯한 사람들. 차가 지나다니기에 충분하지 않은 그 길을 걸어내는 사람들을 마주하는 재미가 있었다. 한국에서 장보기의 상징이 장바구니에 꽂힌 대파라면 이곳에선 단연코 바게트이다. 장바구니를 든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장바구니 없이도 바게트만 손에 들고 어딘가로 걷는 사람들이 있다. 강아지의 목줄을 손에 쥐고 함께 산책하는 이도 있고, 노인과 중년과 아이가 한 방향으로 걷는 왜인지 모를 따듯한 모습도, 커다란 가방을 메고 물을 입으로 쏟아 넣으며 길을 걷는 누가 봐도 순례자도 있었다. 오래된 그 건물을 무너뜨리지 않고 지켜내는 그들의 문화, 그 사이 자리한 길을 걸어내는 이들이 주는 좋은 감정 그 속에 존재하는 나의 행복이 있었다. 순례길 걷길 잘했다.


 독일에서 온 할아버지와 덴마크에서 온 청년을 만났다. 각자의 이유로 이곳에 왔을 그들은 친구처럼 보였다. 할아버지는 산티아고까지 청년은 일주일만 걷고 있다고 했다. 둘은 영어로 대화했고 유쾌해 보였다. 그들 사이에 격이란 건 존재하지 않았다. 내가 한국에서 격 없이 대화할 수 있는 어른은 누가 있지를 떠올렸다. 마음 한편에서 부러움이 피어올랐다. 그들의 문화가 소통이 자유롭다는 걸 추상적으로 알고 있었다. 노인과 젊은 이가 그렇게 대화하고 있는 모습을 자주 마주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의 모습을 마주하고서 그 속에서 함께 대화하면서 부럽고 아련했다. 한국에서 나보다 나이가 한참 많은 이들과 소통하다 보면 그들은 내게 어떤 가르침 내지 깨달음을 주어야만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관계의 본질은, 대화 속에서의 깨달음은 그렇게 이루어지는 게 아닌데 말이다. 나는, 최소한 나만큼은, 그 누구도 아닌 나는 격 없이 소통할 수 있는 할아버지가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싸라우츠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길을 계속 걷는다. 독특한 포장을 가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길을 걷는다. 프린팅이 아무것도 새겨지지 않은 은박에 쌓인 아이스크림. 유럽 마트에서 과일을 담기 위해 비치되어 있는 비닐은 하늘하늘하다. 그들의 의도는 알 수 없지만 환경을 위했을 것만 같은 그들의 선택을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아이스크림은 초코와 바닐라가 섞여있는 듯했다. 탄탄한 생크림의 질감을 가진 바닐라 파트가 맛있었다. 초코는 평범하다는 표현이 어울렸다.


 싸라우츠를 지나 헤타리아로 향하면서 좌측엔 절벽을 우측엔 수평선과 맞닿은 해안을 두고 걸었다. 가히 장관이었다. 짧은 바지를 입고서 상의를 탈의하고 달려오는 남자가 있었다. 나의 많은 로망 속 한 장면에는 그가 존재했다. 주먹을 내밀었다. 입꼬리를 올리며 주먹을 쥐고 부딪히는 그에게 멋있다고 외쳤다.


 5일 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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