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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19. 2024

하루하루 행복한 거

Day12 Camino de Santiago

 아침으로 사과와 토르티야를 먹는다. 내가 알던 토르티야와는 다르게 스페인에서의 그것은 달걀에 다른 재료를 넣어 구워낸 거다. 내가 주로 먹는 건 감자를 넣은 것인데 포만감이 좋아서 아침식사로 괜찮다.


 하루를 시작하는 발걸음이 가볍다. 푸른 하늘을 보며 기분이 좋다며 폴짝거려 본다. 오늘 유독 아름다운 길이 많다. 길 양옆으로 높은 나무가 줄지어있고 그 사이로 보이는 푸른 하늘에 입꼬리를 올려본다. 어제 비가 온 터라 오늘은 자전거길을 따라 걸었다. 공휴일이라 그런지 아침부터 자전거 타는 이들을 많이 지나쳤다. 마주치는 이들마다 웃으며 인사하는 데서 에너지를 나눈다.


 아주 작은 달팽이를 만났다. 새끼손가락 한 마디쯤 되는 달팽이. 작다는 말이 무색하지 않을 만큼 충분히 작은 달팽이. 길을 걷다 우연히 시선이 머문 곳에 그것이 있었다. 생각보다 빨라서 놀랐다.


 지나는 마을에서 베이커리에 들러 빵을 구매했다. 어제 알디에서 먹고 누나가 맛있다고 했던 빵이 빛깔 좋게 올려져 있어 하나 골라본다. 처음 보는 자그마한 피스타치오 페스츄리도 고르고 초리조가 들어간 빵도 구매한다. 페스츄리부터 한입 먹어본다. 갓 나온 것도 아닌데 결이 살아있고 콰작하며 부서지는 식감이 인상적이었다. 안에 든 피스타치오 크림도 달지 않고 괜찮았다. 한 입 먹고 확신했다. 그 베이커리는 바게트를 잘 할 거라는 거. 곧장 다시 가게로 들어갔다. 내 앞에 있던 분이 바게트를 주문하니 오븐에서 바로 꺼내주신다. 나도 곧장 외친다. 같은 거 주세요.


 유럽에 와서 종종 따듯한 바게트를 먹어볼 기회가 있었는데 이리 뜨거운 것은 처음이었다. 손으로 들고 있는 게 버거울 만큼 뜨거웠다. 속을 가르니 연기가 피어오른다. 곧장 한입 베어 문다. 갓 구운 빵은 잘 지은 밥과 대적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최고였다. 식으면 맛이 덜해질 듯한 평범한 바게트였다. 비주얼만 보고 고르라면 그 가게에 있는 다른 것을 고르고 싶었으나 이걸 고른 덴 다 이유가 있지. 속에서 김이 펄펄 나는 바게트를 호호 불어가며 먹는 건 가히 새로운 경험이었다. 게다가 그 바게트의 가장 마음에 드는 포인트는 겉면이었다. 나는 잘 구워진 바게트의 딱딱 파삭한 식감을 좋아한다. 지금까지 먹어본 바게트 중 맛있는 것들이 그런 식감을 냈다. 다만 그 식감을 모든 면에서 고루 내는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다. 초리조가 들어간 빵은 처음 한입 베어 물면서 김치만두 맛을 느꼈다. 향이 강한 돼지고기에 매운 파우더로 양념했고 그것이 구워지면서 고추기름이 빵에 배어들어 있었다. 맛있었지만 김이 펄펄 나는 바게트 앞에서 맥을 추지 못했다.


 어제 같은 숙소에서 머물렀던 독일 친구 중 한 명을 만났다. 바게트 먹겠냐 물으니 너무 반가워하기에 큼지막하게 뜯어 건넸다. 지구 반대편에서 어제 만난 지구 반대편 사람과 같은 빵을 손에 쥐고 길을 걷고 대화하는 건 특별한 기분이었다. 그와 자동차에 대해, 인생의 목표에 대해 대화했다. 그는 꽤 진중한 사람인 듯했다.


 공장지대가 시작되는 곳에서 버스를 타고 빌바오로 들어왔다. 자동차를 탈 일이 잘 없어서인지 버스를 타고서 멀미를 했다. 내리니 약간 불편한 느낌이 들고 덥기도 해서 맥주를 한 캔 사들고 한입에 들이켰다. 상쾌한 기분이 들었다. 예약해 둔 숙소로 향하는 길에 아프리칸 음식점을 많이 마주했다. 누나의 친구분이 유럽에서 아프리카 음식을 맛있게 드셨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국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음식이라 유럽을 떠나기 전에 먹어보려 한다.


 숙소에 짐을 두고 나가서 저녁으로 먹을 것들을 구매했다. 오늘이 스페인의 공휴일이라 큰 마트들은 영업을 하지 않는다. 덕분에 시간이 더 걸리기는 했지만 다양한 아시안 마켓과 과일가게를 들러볼 수 있어서 좋았다. 한식이 그리웠던 탓에 중국마트에서 사 온 컵라면 두 개에 물을 붓는다. 바게트를 가로로 반 갈라 토스터에 구워낸다. 하몽을 그릇에 옮기고 치즈와 올리브 오일도 준비한다. 와인까지 곁들이면 근사한 우리의 저녁이다. 유럽을 여행하며 바게트를 많이 먹고 있다. 바게트가 좋은 건 그것만 먹어도 맛있다는 거다. 간식으로도 식사로도 좋다. 끼니를 준비할 때 바게트가 있으면 햄이나 치즈만 준비해서 먹기에 좋다. 오늘 먹은 하몽이 짠맛이 강한 편이었는데 치즈의 염도가 낮아서 같이 먹으니 잘 어울렸다. 어느 정도 포만감이 들 때쯤, 멜론을 잘라낸다. 하몽을 얹으면 썩 괜찮은 와인 안주가 된다. 매 끼니 공들여 먹으려 노력한다. 나의 가장 큰 즐거움이기도 하다. 원하는 음식들을 고르는 순간부터 입에 넣고 맛을 음미하기까지 하나하나 과정들이 즐겁다. 내가 즐거워하는 것을 지지해 주는 누나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12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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