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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방황해볼게요 Aug 19. 2024

채워내는 거

Day10 Camino de Santiago

 저녁 7시에 잠들었다. 새벽 4시에 눈을 뜬다. 혹시나 하고서 별을 보려 창밖을 보는데 하늘이 잔뜩 찌푸리고 있다. 불 꺼둔 채 테이블에 앉아 글을 쓰다 6시가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일어나 길을 나설 채비를 한다. 누나를 깨워 짐을 챙기고 사과와 또르티야를 먹고 우리도 길을 나선다.


 찌푸리고 있던 하늘이 이내 울음을 터트린다. 이미 젖어버린 상황에 판초 우의를 꺼내 입고서 찝찝함을 느끼고 싶지 않다며 판초 우의를 말리는 게 더 번거로울 거라며 꺼내 입지 않는다.


 길을 걷다 마을을 만나면 어떤 차들이 있는지 보곤 한다. 한국에서 가장 흔한 세단은 이곳에서 만나기 어려운 차종이다. 소형 해치백이 가장 많고 종종 오래되고 희귀한 차들을 마주하기도 한다. 오늘은 빨간 올드카와 G바겐 2도어를 마주쳤다. 자연스레 시선이 머무르면서 어떤 생각들이 떠오른다. 저들은 저 차에 어떤 기억과 의미를 담고 있을까, 왜 한국에선 새것, 신차를 좋아하는 거지, 한국 사람들은 왜 실용성과 거리가 먼 세단만을 추구하지, 하는 것들.


 비가 더 많이 오기 시작할 때쯤 배도 고파오기 시작하기에 비를 피할 수 있는 천막 아래 테이블에 자리 잡고 앉았다. 어제 미리 사둔 빵과 하몽, 양상추를 꺼내든다. 순례길을 걸으며 외식을 자주 하지 않는다. 빵과 햄을 베이스로 두고 요거트나 채소, 치즈 같은 것들을 곁들인다. 그 안에서 바꿔낼 수 있는 종류들이 무지 많다는 게 내겐 큰 즐거움이다.


 1시쯤 알베르게에 도착해 가방을 내려두고 마을에 있는 카페로 발걸음을 향한다. 맥주 두 잔을 주문해서 마시다 배가 고파오기에 어떤 메뉴를 주문해 본다. 번역기에 갈비라고 나오는 무엇을 주문해 보았다. 바게트 한 조각 위에 등갈비가 통으로 튀겨져 올라가 있었다. 소금 간이 강하게 되어 있었고 독특하게 큐민을 듬뿍 뿌려두었다. 갓 튀겨져 나와 매우 뜨거웠다.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더라도 바로 조리해서 받아들 수 있는 음식을 좋아한다. 바삭한 식감과 큐민의 향이 대단히 맛있었다.


 햄버거도 하나 주문해 보았다. 꽤 기다렸지만 역시 맛있었다. 미디엄웰던 정도로 구워낸 패티에 어우러지는 피클의 향이 좋았다. 작은 마을에 자리 잡은 가게에서 신선한 재료를 사용하는 게 느껴지는 음식을 받아들 수 있다는 건 기분 좋은 일이었다.


 알베르게 호스트의 인상이 푸근했다. 여유롭고 친절한 그는 마치 시골에 사는 삼촌의 바이브를 느낄 수 있게 해주었다. 저녁식사를 준비하는 냄새가 배고픈 우리를 기대하게 만들었다. 압력밥솥의 추가 마구 흔들리는 소리에 고기 냄새가 나는 게 오늘의 저녁을 궁금하게 했다.


저녁식사는 기대만큼 훌륭했다. 전채로 나온 스프는 깨끗한 야채스프였다. 자극적이지 않고 향이 좋은 스프를 바게트와 함께 먹었다. 메인 요리는 밥과 양념에 오래 조리한 고기였다. 요리에 대한 특별한 설명은 없었으므로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지만 카레 같은 비주얼의 그것은 그레이비소스 같았고, 소고기 우둔 같은 부위를 오랫동안 조리해 충분히 부드럽게 만든 것 같았다. 마늘이 종종 모습을 비추는 밥과 곁들이기에 훌륭했다. 누나는 밥을 먹을 수 있는 게 만족도가 높다고 했다.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순례자들, 프랑스에서 온 대가족과 함께 했다. 부부와 5명의 아이가 여행하고 있다는 그 가족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 중 가장 어린 여자아이는 다른 이들이 식사하는 동안 핸드폰을 들고 다니며 사진을 찍고 귀여움을 뿜어내곤 했다. 아이의 순수한 행동이 느끼게 해주는 귀여움은 그 자체로 갖는 아름다움이 있다. 그 공간을 밝게 채워낼 수 있는 것.


10일차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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