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깊숙이 자리한 '부사'

<부사가 없는, 삶은 없다>를 읽고...

by 피오마


책 제목에서 풍기는 심오함에 이끌려 책장을 넘기기 전부터 범상치 않은 에세이임을 짐작했지만, 막상 마주한 내용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깊었다.


그동안 인지하지 못하고 무심코 사용했던 '부사'가 삶 깊숙이 자리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


저자는 삶의 이면에 수많은 부사가 숨어 있고, 우연히 만난 부사로부터 삶에 대한 작은 실마리라도 찾길 바라며 글을 지었다고 한다. 수많은 부사 속에서 찾으려고 한 것은 결국 '나'라는 존재에 가까이 다가가기 위한 것이었다고, 삶은 살아지는 게 아니라 살아가는 것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한다.


나도 책을 읽는 동안 수많은 부사를 떠올려봤다.


조용히, 가만히, 아득히, 깊숙이, 흐릿하게, 아련히, 은은히, 쓸쓸히, 나른하게, 서서히, 간절히, 몽롱하게, 고요히, 찬란히, 영원히, 우아하게, 희미하게, 그윽이, 아련히, 은은히, 처량하게, 쓸쓸히, 고독하게, 다정하게, 따뜻하게, 포근하게, 나직이, 살며시, 슬그머니



대체로 조용히 생각에 잠기게 하는 부사들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다. 그 선택들이 모여 현재의 나를 만들고, 미처 살아보지 못한 삶에 대한 궁금증과 아쉬움을 남기기도 한다.


만약에 원가족을 벗어나 새로운 가족을 꾸리지 않았다면 지금의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무작정 서울로 올라오지 않았다면 아직도 그곳에서 살고 있었을까. 과연 지금의 삶보다 더 나았을까. 살아보지 않은 삶이라 궁금하지만 지금이 더 나았을 거라고 생각하는 편이 낫겠지.


마냥 아이일 것만 같았는데 어느덧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결혼을 하고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아직도 가끔 내가 '어른'이 된 것이 어색할 때가 있다. 여전히 내면에 '어린아이'가 살고 있어서 그런가 보다.


어린아이는 엄마에게 충분하게 받지 못한 사랑에 목말라 있다. 하지만 충분한 사랑이란 게 있긴 한 걸까? 받아도 받아도 모자라다 느끼는 게 사랑 아닐까. 사랑은 정량적으로 측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언제나 더 갈망하게 되는 인간의 본능 아닐까.


아이들에게 '충분한 사랑'을 주기 위해 나름 노력하지만 아이들이 느끼기에는 부족할 수도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엄마보다 낫다'라고 생각했는데 정말일까. 어느 면은 낫지만 다른 면은 그렇다고 단정하지 못하겠다.


그저 아이들이 힘들 때 언제든 기댈 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은 마음뿐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정서적 지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세상에 당연한 것은 없다. 엄마가 당연히 나에게 사랑을 듬뿍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당연히'가 항상 문제였다. 당연하다는 것은 어떤 것을 기본값으로 보고 그 값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이상값으로 여겨 버리는 것이다. 엄마는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을 주었을 텐데 애초에 내가 기본값을 너무 높게 설정한 것일 수도 있다. 그래서 늘 부족하게 느껴졌고 혼자 서운해하고 원망하고 아파하고 그랬을지도 모른다.


이렇게 엄마를 지키고, 또 나를 구원한다. 허무맹랑한 말로라도 그냥 그렇게 하고 싶다. 그래야 내가 사니까. 과거의 경험을 재해석하고, 그로부터 스스로를 해방시키는 자기 구원의 여정은 힘들지만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저자의 말처럼 누구에게나 '부사'처럼 따라붙는 서사와 감정이 있다. 글로 써보니 정말 그렇다. 여러 부사들을 통해 삶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고, 나를 구원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조금은 알 것 같다.


쓰지 않고는 도저히 참을 수 없어서 쓰기 시작했다는 저자처럼 나도 쓰고 싶었다. 어쩌면 내 치부일지도 모르는 부분을 드러내는 건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하지만 그럼에도 쓰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소설이나 대단한 글을 써야겠다는 욕심은 없다. 그저 스스로를 구원하기 위해 쓴다.


시시때때로 갑자기 마주하고 싶지 않은, 떠올리기 싫은 기억이 떠오를 때마다 쓰고 싶다. 기억이 떠오르는 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지만 글로 써서 풀어내는 건 할 수 있는 일이다.


과거는 삶의 일부이다. 없애고 싶다고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연신 마음을 어둡게 만드는 과거가 떠올라도 어떻게든 지금을 살아가야 한다. 그렇게 해서라도 삶은 계속되어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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