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위해
아이를 키우다 보면 성질대로 하면 안 되는 경우가 부지기수로 생긴다. 성질대로 하면 내 속은 시원해질지 몰라도 문제는 오히려 더 커질 수 있다.
둘째 아이가 5학년까지는 큰 문제 없이 잘 지내왔는데 6학년에 갑자기 모든 상황이 좋지 않아졌다. 아이 기준에 담임 선생님도 별로인 것 같고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지 않다.
선생님이야 그렇다 쳐도 친구와의 문제가 많이 힘들어 보인다. 딱 지금의 상황만 두고 봤을 때에는 학폭으로 신고하고 싶을 만한 것들이 있지만 일단 지켜보고 있다.
아이는 다른 친구의 엄마가 비슷한 문제로 학폭 신고를 했고 결국 전학 가는 걸 봤다. 친구들이 그 엄마를 안 좋게 얘기하는 걸 몸소 지켜봐서 그런지 나보다 오히려 아이가 더 신중하다.
모든 게 그렇지만 특히나 아이와 관련한 문제는 객관적으로 바라보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최대한 객관적으로 지금의 상황을 바라보려고 하니, 내 아이에게도 그동안 친구들에게 해온 좋지 못한 행동들이 있다.
그래서 학폭 신고를 한다고 해도 백 프로 피해자가 아닌, 쌍방이 가해자가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도 아마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예전에는 폭력, 왕따, 괴롭힘 등 명확한 것들만 학폭 신고를 했다면 요즘은 뭐든 걸기만 하면 다 걸린다고 한다.
내가 아이였다면 내 잘못은 생각 못하고 그냥 엄마한테 해결해 달라고 떼를 썼을 것 같은데 아이가 나보다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자기 객관화를 마친 아이는 어떻게든 현 상황 속에서 잘 버텨내려고 노력 중이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엄마의 마음은 타들어가지만 계속 함께 버티고 있다.
얘기를 들어주고 함께 산책하며 힘든 마음을 조금이나마 떨쳐 내려고 하는 중이다. 아이도 나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지만 결국은 다 지나갈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지금의 친구들과 함께 다닐 일 없는 전혀 새로운 곳에 있는 중학교로 갈 거라는 점이다. 그게 아이에게는 큰 위안이 되는 것 같다.
중학교에 가서도 그런 일이 생기지 않으리란 법은 없지만 지금의 경험이 어떻게든 도움이 되리라 믿는다. 경험은 언제 어디서든 빛을 발하는 법이니까.
부모는 아이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 적절한 도움을 줄 수 있어야 한다. 아이는 원하지 않는데 부모가 나서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건 아이를 위한 게 아니다.
나는 어떻게든 문제를 해결하고 싶지만 아이는 그저 자기 얘기만 잘 들어주면 된다고 말한다.
얘기를 들어주는 건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달라지는 게 없는 현실이 너무 답답하다.
그 답답함과 조급함을 참아내는 것도 부모의 역할 아닐까. 부모도 힘들지만 제일 힘든 건 아이일 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