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뭐든 좋기만 한 것은 없구나
나는 어릴 때 진정한 공감을 받아본 적이 별로 없다.
엄마는 늘 바빴고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그냥 흘려듣기만 했다. 그런 엄마를 보고 생각한 건 '나는 나중에 아이를 낳으면 정말 공감을 잘해줘야지.'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진심으로 공감해 주려고 부단히 애를 썼고 그래서인지 공감 잘해주는 엄마라는 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뭐든 좋기만 한 것은 없나 보다. 이제는 아이들이 좀 컸기 때문에 공감보다는 상황에 걸맞은 얘기를 해줘야 할 것 같은 때가 있다. 그래서 공감을 빼고 무슨 말을 하면 아이 표정이 시무룩해지며 눈물을 글썽일 때가 있다.
어제도 학교에서 선생님이 무슨 말씀을 하셨는데 아이는 그게 좀 기분이 나빴나 보다. 그래서 집에 오자마자 나에게 얘길 했는데 공감의 말없이 조언을 했더니 왜 공감 안 해주냐며 화를 냈다.
그래서 공감을 해줄 게 따로 있는 건데 무슨 사사건건 공감을 바라냐고, 지금까지 공감 많이 해주지 않았냐고 나도 화를 내버렸다.
그렇게 '공감'에 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아이가 바라는 건 '선 공감, 후 조언'이고 지금껏 잘해왔다. 하지만 아이가 청소년기에 접어들었는데도 어린애 취급하며 무조건 공감해 주는 것 같다는 생각에 조언부터 꺼낸 것이 화근이었다.
집에서 너무 많은 공감을 해 주니, 밖에서 누가 조금만 기분 나쁜 소리를 해도 쉽게 상처받는 건 아닐까 걱정이다.
공감은 얼마든지 해줄 수 있지만 아이는 계속 성장할 거고, 그때마다 어릴 때 해주던 방식대로 공감해 줄 수는 없으니 조금씩 바꿔나가야 하지 않을까.
일단은 '선 공감, 후 조언'의 원칙은 그대로 하되, 조언을 구체적으로 하는 식으로 해봐야겠다. 그런데 선공감이 생각보다 꽤 어렵다. 이건 아닌데 싶은 순간도 있기에.
하지만 법과 윤리에 어긋나는 것만 아니라면 꾹 참고 일단은 선공감 하기로 마음먹는다.
아이를 키우며 부모도 함께 커간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이 아닌가 보다. 아이가 자라는 만큼 나도 계속 성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