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의정부의 신축 아파트 현장으로 갔다. 이제 막 콘크리트 구조물이 완성되어 내부 공사가 한창이다. 오늘 내 작업은 '세대청소'였다. 용역회사를 통해 현장에 가면 가장 많이 하는 작업이 '세대청소'이다. 타일, 도배, 석고, 전기, 배관 등등 '기공(기술 있는 작업자)'들이 작업 후 어질러진 내부를 청소하는 일이다. 이것은 한 번 했다고 끝나지 않는다. 각 공정마다 나오는 쓰레기들을 치워야 하기 때문에 몇 번을 청소해야만 한다.
오늘은 보일러를 깔기 위해 바닥을 청소하는 일이었다. 빗자루로 벽을 따라 자잘한 쓰레기들을 가운데로 밀어놓으면 밀대로 한 곳에 모아 마대에 담는 작업이다. 눈 뜨기 어려울 정도로 먼지가 많이 난다. 방진 마스크를 써도 코와 입으로 들어가는 먼지가 많다. 마스크를 벗으면 콧등에 먼지가 하얗다. 당장 죽지 않으니 눈 감고 코 막고 일을 한다.
'노가다'를 하러 나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이 작업을 좋아하지 않는다. 힘들고 더러운 작업을 좋아할 사람은 많지 않다. 사람들마다 이유는 각각이다. 직장을 잃어서, 이직하기 전 쉬는 짬에, 방학 기간 용돈 벌이로, 번듯한 직장이 있지만 주말이나 휴일을 이용해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나오는 사람... '노다가'를 직업으로 여기며 매일 일하는 사람도 꽤 많다. 일하러 나오는 이유는 다르지만 모두가 원하는 바는 같다. 쉬운 작업을 만나 일찍 끝나는 것이다. 같은 현장이라도 어떤 일을 하느냐에 따라, 어떤 날이냐에 따라 노동의 강도는 다르다. 뼈 빠지게 힘들 날도 있고, 설렁설렁 거저먹는 날도 있다. 가급적 '짱 박혀서' '농땡이'치다가 하루 일이 끝나기를 원한다.
왜 그러하지 않겠는가. 심하게 힘든 일을 하고 나서 집에 가면 꼼짝하기도 어려울 때가 있다. 샤워로 먼지를 씻어내고 허기진 배를 채우고 나면 움직일 수가 없다. 잠도 쏟아지고 온몸이 아프기 때문이다. 힘든 작업을 만나 며칠하고 나면 버텨내기 어렵다. 주 6일 일을 할 수 있는데 5일 만에 나가떨어지는 경우도 생긴다. '노가다'는 일당제이니, 하루 빠지면 하루치의 수입이 줄어든다. 때문에 힘든 작업을 한다는 것은 몸만 힘든 것이 아니라 수입도 줄어드는 것이다. 인부들이 몸을 사리는 것은 꾀를 부리는 게 아니라 생존을 위한 것이다. 주 5일과 6일의 작업에서 나오는 수입의 차이는 눈물 날 만큼 큰 것이다.
'노가다'는 자신의 몸을 팔아 돈을 버는 일이다. 몸이 쇠약해져 더 이상 팔아먹을 몸이 남아있지 않으면 수입이 끊긴다. 심한 노동을 지속적으로 한다는 것은 가지고 있는 자원이 빨리 줄어든다는 의미이다. 내가 팔아먹을 수 있는 노동의 양이 줄어들어 수입이 끊어지는 날도 앞당겨진다는 것이다. 하루벌이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재앙 같은 일이다. 아직 젊다면, 하룻밤으로 재충전이 되지만 뼈에 바람 들어간 늙은 노동자에게는 노동의 피로가 온몸으로 스며든다.
그래서 조급하다. 가진 노동이 다 소진되기 전에 돈을 벌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은 삶을 지탱할 수 있는 밑천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매일 일을 해도 돈은 쌓이질 않는다. 졸졸 흐르는 물을 양동이에 담지만 한 두 바가지 퍼내고 나면 남는 물이 없다. 다시 한참을 기다려 겨우 받아낸 물을 또 퍼 쓰고 나면 물이 없다. '노가다'로 돈을 번다는 것은 이와 같다. 하루 일당 13만 원이 찍히지만, 지난주부터 쌓인 통장 잔고는 어느 순간 바닥으로 내려와 있다. 자동이체라는 괴물은 내 통장에 돈이 쌓이는 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다시 다음 달 자동이체에게 받쳐야 할 제물을 모으기 위해 이른 새벽 집을 나서야 하는 일이 반복해야 한다.
물이 펑펑 쏟아진다면, 퍼내는 물보다 쏟아지는 물이 많이 맘껏 퍼 쓸 수 있다면 좋겠다. 기다림도, 간절함도 없이 쓰고 싶을 때, 쓰고 싶을 만큼 쓸 수 있는 물과 탱크가 있다면 목욕도 하고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시원하게 할 수 있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