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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남과 이별사이

by 온혈동물

번화한 신촌 사거리에 위치한 천장이 높은 커피숍 안으로 들어가자 안쪽에 눈에 띄는 남자가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다. 하빈이 안쪽으로 걸어 들어가자 옆을 스쳐가는 두 명의 어린 여자들이 소곤거리며 지나갔다.

"저쪽에 있는 남자 진짜 잘생겼다. 혹시 연예인 아닐까?"

하빈이 보검이 앉아있는 테이블로 다가가자 그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다 고개를 들고 그 특유의 매력적인 미소를 지었다.

"반가워."

말없이 자리에 앉은 하빈이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여러 가지 생각이 맴돌고 있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외모는 여전히 매력적이었지만, 외모와 상반대는 그의 내면을 알고 있는 하빈은 그의 외모가 신의 저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그랬어?"

하빈의 툭 던진 질문에 보검은 재미있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그녀를 지긋이 바라보았다. 한동안 그들은 말없이 앉아있었다. 잠시 후 보검이 손을 내밀었다.

"폰 꺼내봐. "

하빈의 그의 의도를 파악하고 핸드폰을 켜서 어떤 녹음앱도 실행되고 있지 않다는 걸 보여주었다.

"난 그저 모든 사람들처럼 마음속 밑바닥에 숨기고 있는 욕망을 끄집어내어 줬을 뿐이다. 사람들은 겉으로 착해 보여도 속에 추잡한 마음 하나쯤은 다 갖고 있거든. 오석이도 그렇고."

"아니. 오석이는 자신의 존재를 세상의 눈으로 인정받지 못해 상처를 받은 거지 너 같은 살인자는 아니야."

나지막하지만 강한 하빈의 말에 보검은 당황한 듯 잠시 말을 하지 않고 그녀를 노려보았다.

"잘난 척 하지마. 넌 네가 오석이를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오석이는 니 옆에 있으면서 항상 너를 질투했고, 너처럼 살아갈 수 없는 걸 괴로워했어. "

"그래서 걔를 너의 살인게임에 끌어들였니? 너를 좋아하는 마음을 이용해서?"

"그는 잠시라도 내 옆에서 행복했었어. 그럼 된 거 아냐?"

보검은 오히려 자신이 오석에게 도움이 됐다고 진심으로 믿는 듯했다. 전형적인 나르시시스트 소시오패스인 그에게 그런 생각은 당연한 일인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네가 아니었으면 오석이 내 일에 참여할 일은 애초에 생기지 않았겠지. 네가 나에게 그런 실망을 남겨주지 않았었다면. "

"넌 아직도 과자 뺏긴 어린아이처럼 징징대고 있네. 이 세상이 다 너만을 위해 돌아가진 않아. 그렇게 잘난 너라도 모든 사람이 다 널 좋아할 순 없는 거거든. 그리고 악한 마음만 가득 차 있는 너란 사람은 나에게 역겹기만 한 존재야. 잠시라도 널 내 옆에 두었다는 게 소름 끼쳐. 내가 어떻게 해서든 오석이가 네가 한 짓들 때문에 고통받지 않게 할 거야!"

하빈의 말에 오석의 눈이 분노에 차서 번들거리며 그녀에 대한 솟구치는 적개심을 드러냈다.

그들이 만난 공간이 사람이 이렇게 많은 곳이 아니었다면, 보검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그는 분노에 차서 말했다. 그리고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나기 전에 그녀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오석은 빼도 박도 못하는 증거가 피해자 몸에서 나올 거고, 걔가 피해자들과 알고 지냈던 걸 아는 증인들도 많아. 그니깐 네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마 없을 거야. 그리고 너란 존재도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일이지."



하빈은 그날밤 지훈의 집 거실 소파에 앉아 있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지이잉' 전화기가 울리는 소리에 깜짝 놀라 일어나 보니 지훈이였다.

"여보세요?"

"자는데 깨웠나 보네. 미안. 저 근데 안 좋은 일이 있어"

지훈의 어두운 목소리에 하빈은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분명 오석에 관한 일임이 분명했다.

"무슨 일 있어요? 오석이한테?"

잠시 정적이 흐른 후 지훈이 말을 이었다.

"권오석 씨가 조사받는 도중에 조사관을 볼펜을 뺏어서 자기 목을 찔렀어. 피가 많이 나서 병원으로 즉시 옮기긴 했는데, 수술도중에 심정지가 왔어."

하빈은 지훈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그럼 오석이는 어떻게 된 거예요?"

지훈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리고 다시 말을 이었다.

"수술실에서 사망처리 됐어. 미안해. 하빈아"

하빈은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아무 생각이 들지 않았다.




오석의 일이 있은 얼마 후 보검은 조용히 사라졌다. 그가 근무하던 병원에 갑작스런 사직서를 내고 나오지 않았고, 그가 살던 집도 비어 있었다. 외국으로 떠났다는 사람도 있고, 지방으로 근무지를 바꿨다는 소문도 있었지만, 확인되지 않은 추측들에 불과했다.

하빈이 오석의 일로 인한 충격에서 어느 정도 벗어난 몇달후 마침내 그에게 전화를 걸수 있는 용기가 생겼을 때는 이미 그의 번호는 없는 번호였다.

그가 정말 멀리 떠난 것인지, 아니면 어딘가 숨어서 하빈을 노리고 있는 것인지는 알수 없었지만 이제 하빈은 그를 다시 만난다면 그를 죽일 수 있을만큼의 용기가 있을 정도로 그를 증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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