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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은 채우고 몸은 비우고

by 온혈동물

우와! 한참 쓰던 글이 다 날아갔다.

키보드를 어떻게 눌렀는지 모르겠는데 다 날아갔다.


담배를 끊은 지 십 개월이 넘어간다. 그로 인한 군것질로 뽀록뽀록 살이 붙어 몸을 구부리는 것도 힘이 든다는 느낌이 드니 정신이 번쩍 났다. 일하고 피곤하다고 운동을 우리 집 강아지와 아침저녁 걷는 걸로 안이하게 생각한 것도 문제였다.

건강검진을 위해 병원에 가서 억지로 몸무게를 재고 나니 정말 살이 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래서 다시 시작한 운동으로 조금이 몸이 재자리로 돌아가긴 했지만 이미 불어난 체중이 쉽게 줄지는 않았다. 적당히 배부리기 전에 멈춰야지 마음으로는 생각하지만, 막상 먹기 시작하면 좀처럼 숟가락을 내려놓지 못한다.

병원에서 같이 일하는 삼십 대 초반의 한 직원은 고등학교 때부터 살을 빼려고 노력했지만-몸을 움직이는 걸 아주 싫어해서 안 먹고 빼려고 했다고 한다- 잘 되지 않아 최근에는 병원에서 약을 받아 오기도 했다. 그래서 그 친구가 선택한 방법은 '위절제술'이다. 위의 90프로 정도를 복강경으로 잘라내는 시술을 받기로 선택했다. 자신이 생각하기에 가장 쉬운 살 빼는 방법이라고 말한다.


점심을 먹고 자리에 앉아있지 않고 50번 정도 스쿼트를 하고 잠시 몸을 더 움직이고, 저녁 먹고도 스쿼트를 하기 시작했다. 식사의 양도 줄였다. 아침은 먹지 않지만, 점심을 먹고는 바로 낮잠을 자고, 저녁은 아주 많이 먹는 건 아니지만 잘 때까지 소화가 잘 되지 않는 불쾌감을 느낀다.


밥을 먹을 때는 행복하지만 포만감이 생기면 불쾌해진다. 그래서 안 먹어 배고픔이 느껴지는 순간을 즐기기로 했다. 육체가 비워지면 비로소 정신이 행복해진다.


고명환 저자의 '고전이 답했다 마땅히 살아야 할 삶에 대하여'과 '나는 어떻게 삶을 해답을 찾는가'를 읽으며 예전에 책을 읽으며 느꼈던 희열감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다음에 한국에 가면 도서관과 책방 순례를 해야겠다는 목적이 생겼다.

나는 어렸을 때 읽을 책이 있을 때가 가장 행복했다. 지금도 읽을 책이 있으면 뿌듯한 마음이 들면서도 책을 손에 잡지 않고 핸드폰에만 손이 간다. 유튜브의 쇼츠를 보는 것은 중독성이 매우 강하다. 한두 개 쇼츠를 보다 보면 삼십 분이 훌쩍 지나가고 그 후엔 머리가 멍해진다. 이제 영화난 드라마를 쭉 이어 보기보다는 유튜브에 나오는 요약본을 더 찾아보는 나쁜 습관이 생겼다.

결국 나의 머리는 짧고 강렬한 영상이 주는 도파민에 중독이 되어가고 있었다.

담배 역시 니코틴이 뇌로 전달되어 도파민이 분비되어 이에 중독되는 것이라고 한다.

이런 연쇄작용을 깨려면 비워는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동안 일을 하고 나면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나 자신에게 보상을 해 주었다. 그러다 보니 무언가를 하고 나면 이런 보상을 바라는 상태가 되고, 이것이 충족되지 않으면 괴로워졌다.

일을 하는 것 자체가 보상이 되어야 하고, 하루에 잠깐이라도 위를 비우고 자극적인 영상 없이도 시간을 즐길 수 있어야 함을 깨닫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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