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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심하게 살 수 있는 능력!

by 온혈동물

대학에 들어가고 나서 놀면서 술을 마시고 흥을 내는 분위기에 익숙해졌다. 그래도 결혼 전까지는 나는 '반주'라는 말을 싫어했다. 밥은 밥이고 술은 술대로 따로 마시는 걸 좋아했다.

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내 식대로 밥과 술을 따로 나눠먹는 사치가 없어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을 징하게 한 후에는 술한자 하는 것이 어느 순간부터 보상이 되었다.

담배를 끊기 전에는, 술을 마시고 흐트러지는 걸 할 수 없는 바쁜 상황에서는 흡연이 보상이 되었다.


미국에서 일을 시작하면서 장시간 오래 여유있게 일을 하는 대신 바쁘게 짧게 일하는 생활로 바뀌었다. 일하는 날에는 너무 바빠서 화장실을 갈 시간조차 없는 날도 많다. 어느날은 '아 오늘 화장실을 한번도 못갔네!'라고 생각하는 날도 있었다.

그 상태로 집에 오면 처음에는 전혀 피곤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한 삼십분 정도 몸안의 아드레날린이 빠져나가고 나면 녹초가 된다. 한국에서는 9시에 일을 마쳐도 밤에 술을 마실수 있는 체력이 있었지만, 여기서는 5시나 6시에 끝나도 소주 반병을 마실 체력이 남아있지 않기도 하다. 담배를 끊기 전에도 일할때는 당연히 흡연을 할 수 없기에 나의 흡연 갯수도 확연이 줄어들어 한국에서 피던 담배의 반만 피워도 머리가 아프고 몸이 아파왔다.

담배를 피는 것은 스스로를 학대하는 행위와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흡연으로 인한 잠깐의 도파민의 쾌락을 느끼지만, 대체적으로 몸은 점점 피폐해져 간다.


한국에서 하던 일과 후 음주 흡연을 더이상 즐길 수 없는 상황이 되어가자 머리는 과거의 즐거움을 추구하지만 현실과의 괴리가 생기기 시작했다.


법륜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있다.

'담배를 어떻게 끊어야 할까요? 살을 빼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어요.' 라고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결국 "뜨거운 주전자를 들고 "너무 뜨거워요."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스님은 '그냥 놓아라.'하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그걸 어떻게 놓냐고 말하는 것은 결국 놓고 싶지 않다는 말과 같은 말이라고.

아침에 침대에 누워서 '일어나야 되는데'라는 생각을 하는 것은 '일어나고 싶지 않다'는 말이고, 일어나고 싶으면 그냥 일어나면 된다고 말씀하시다.


금연을 한지 일년이 되어가면서 나 자신을 과신했다. 스트레스를 핑계로 담배를 산 것이다.

한갑을 피고 두갑을 피웠다.

그리고 다시 깨달았다. 내 자신의 카르마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시 금연을 시작하고 이틀째 머릿속에서 강한 충동이 일어났다. 도저히 자제할 수 없을 것같은 욕구. 진료 차트를 정리하면서 머리속에서는 담배를 사러가는 나와 저지하려는 내가 팽행히 맞서고 있었다. 그런데 절대 억누를 수 없을 것 같던 그 욕구가 차트정리가 끝나가는 순간쯤 잦아들기 시작했다.

'아 충동이 들어도 잠깐만 참으면 되는 구나.'

고요해지는 나를 바라볼수 있게 되었다.


심심하다.

우리집 개는 유난히도 조용하고 말이 없다. 가끔은 좀 상호작용을 많이 하는 강아지로 바꾸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나란 인간이 주변 사람이던 동물이던 간에 치대는 걸 매우 싫어함으로 결국 나한테 꼭 맞는 개라는 걸 깨닫는 데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줄넘기를 시작했다.

전신운동이 되는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는데, 어딘가를 가서 운동을 하기에는 게으르고 추가 근무를 많이 하는 내 스케쥴과 맞지 않아 집에 있던 줄넘기를 집어 들었다.

첫날 백번을 하면서 숨이 끊어질 것 같았다.

하루에 50번씩을 늘리면서 천번을 목표로 가고 있다. 줄넘기로 심폐기능이 강화된다는 둥의 얘기는 별로 의미가 없다. 다만 줄넘기를 하면서 느끼는 '더이상 못하겠다. 발이 아파 죽겠다' 등의 생각을 넘기며 오늘의 목표를 채우면서 받는 만족감이 제일 크다.


그리고 다시 혼자서 조용한 저녁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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