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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과 빛

by 온혈동물

예전에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을 읽으면서-중학교 때 시도했다가 무슨 얘긴지 도저히 이해가 안돼서 고등학교 때 다시 도전했다- 어둠과 빛의 세계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의 부모님이 감싸고 있는 나의 현재 생활이 빛이라면 내 마음속에 드는 욕망과 미움은 어둠의 세계로 생각했다.

시간이 지나 어른이 되면서, 이 세상에 절대적인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깨달았다.


가끔 드라마나 영화에서 나오는 범죄자들이 자신들은 피해자들을 가혹하게 괴롭히거나 죽이면서도 자신의 고통이나 자신이 소중히 여기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아주 슬퍼하는 모습들은 보면서 그런 사람들의 마음속에 있는 선과 악의 기준은 무엇일까 궁금하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파트타임으로 일했던 병원에서 같이 일한 한 테크니션이 있었다. 얼마 전 동부 쪽에서 이직한 사람이었는데, 우버기사로 용돈벌이나 하는 남편과 두 어린아이들과 함께 트레일러에서 생활하고 있었다. 내가 사는 샌디에이고는 월세가 아주 비싸다. 혼자 벌어서는 웬만한 억대 연봉이 아닌 이상 아파트 월세를 감당하기가 힘들다.

암튼 그 사람은 일한 첫날부터 말이 아주 많았다. 여기서는 대체로 사람들이 말이 많아서 웬만히 말이 많지 않으면 그러려니 하는데, 주변에 있는 사람들조차 너무 말이 많다고 할 정도니 굉장히 심한 수준이었다.

가끔은 일을 하는데 방해가 될 정도로 말이 많았다.

그 테크니션은 자신이 매니저 자리를 원했는데, 다른 사람이 매니저가 되자 점점 툴툴대기 시작했다.

어느 토요일 나와 같이 일하는 날, 일은 바쁜데 말을 많고 일이 진행되지 않았고 그 테크니션의 불만 섞인 행동은 모두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다.

그리고 얼마 후, 그 친구에 대한 성희롱 이메일이 회사로 접수되어 그 친구는 해고되었다. 나이 지긋한 한 백인 인턴에게 그녀가 성적인 멘트를 한 것이 화근이 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회사에 새로운 매니저와 나에 대한 비방성 이메일을 보냈지만, 회사에서는 그의 얘기를 무시했다.

그리고 얼마 후 나는 페이스북에 그녀가 나에게 친구 신청을 한 것을 거부했다.


웃긴 일은 그렇게 해고된 이후에도, 그녀가 일하던 병원에 자신의 개를 데리고 와 치료를 받으려고 하거나 같이 일하던 사람들에게 연락을 간혹 취했다는 것이다.

아마 그게 일 년 반 정도 일이었던 것 같다.

이번 주에 알바로 간 한 동물병원에서 그녀를 막닺뜨리기 전까지 그녀에 대해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녀는 나를 오래된 절친인양 병원에서 호들갑을 떨며 반가워했다.

처음 간 병원이었지만, 병원의 부부 수의사들은 매우 좋은 사람들이었고, 같이 일하던 스태프들도 아주 친절해서 종종 또 일하러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때의 그 테크니션과 다시 일하고 싶지는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물론 그녀가 그 병원에서 얼마나 버틸지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하루 일하는 동안에도 그녀가 말로만 일을 하고 있는 걸 알 수 있었다.


미국에 이민을 와서 다행히 내가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도 행운이고, 수의사라는 직업이 사람들에게 신뢰받는 일이기에 말이 서툰 내가 존중받을 수 있어 늘 감사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로 인해 목적을 갖고 다가오는 사람들도 가끔 있다.

그들이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들과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인 인간관계를 원하는 게 아니기에 완전히 관계를 끊기 전에는 지속적으로 연락을 취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내가 어린 시절 생각하던 절대적인 선과 악으로 규정할 수 없는 사람들이 어우러져 있다. 대체로 좋은 사람들과 대체적으로 나쁜 사람들로 말이다.

그런 사람들에게서 나에게 휴식을 주는 것은 조용하게 하루를 같이 보낼 수 있는 우리 집 검정개다.

그런 우리 강아지를 끌어안고 있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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