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위해 산 만화로 보는 인문학을 다시 읽기 시작했다. 이제는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이 편한 큰딸과 한글책은 더듬거리며 잘 읽지 못하는 둘째는 관심도 두지 않는 책들이지만 나를 위해 읽어보리는 생각으로 토마스 모어의 '유토피아'를 집어 들었다.
명색이 대학과 대학원까지 나온 나는 내일에 관련된 일 외외는 정말 무식하다는 생각이 다시 들 정도로 상식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유토피아'란 말은 흔히 사용되고, 여러 영화나 책에서도 나오는 말이지만, 오래전 영국의 철학자이자 정치인이었던 토마스 모어가 지은 책의 허구의 나라로 이상적인 세계를 나타낸다는 것도 이제야 알게 되었다.
노예제도가 존재하고 소작농이 있던 시절 영국에서는 배고픔에 허덕이다 빵을 훔친 자에게도 절도죄로 인한 사형이 선고되곤 했다. 양털 가격이 올라가자 지주들은 소작을 주었던 땅을 뺏고 양을 기르면서 많은 서민들이 거리로 쫓겨 나와 배고픔에 굶주리던 시절에 고위 관직에 있던 토마스 모어는 그런 현실을 어떻게 바꿀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모두에게 평등하고 행복한 나라를 상상하며 그의 책에 유토피아라는 나라를 표현했다.
사유재산이 없고 모두가 일을 하며 굶주리지 않고 평화롭게 사는 세상, 종교의 자유이 존재하고, 인간의 존엄사조차 허용하는, 밀레니얼이 지난 챗 지피티와 인공지능을 말하는 현대사회에서조차 혁신적인 사상을 말한다.
그런 토마스 모어는 영국 국왕에 반한다는 이유로 반역죄로 결국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내가 살고 있는 캘리포니아는 미국 내에서도 유난히 여러 면에서 개방적인 곳이다. 곳곳에서 LGBTQ(성적 취향에 대한 다양성을 대표하는 말)를 주장한다. 가끔 한국인들 중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은 일반학교에서 이런 부분에 대해 지나치게 관대하다 못해 이를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며 아이들을 사립학교에 보내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에서도 많은 아이들이 동성애를 표방하기도 하는데, 또래에서 그런 추세가 유행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자신이 사는 곳에서 소수의 무리에 들어있다면 여전히 그들은 사회에서 취약하다.
아마도 소수와 약자가 더 잘 보호되는 곳이 있다면 그곳이 유토피아에 가까운 곳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사실 인문학 책과 역사책을 좀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진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웃기게도 주식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주식투자 아니 어쩌면 전반적인 투자시장을 이해하려면 사람의 심리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많은 주식의 고수들이 기업을 분석하고 경제의 흐름을 파악하면서 자신만의 계산으로 주식의 동향을 파악하며 투자를 했다. 물론 많은 부분들은 도표와 계산으로 커버되지만 항상 변수로 작용하는 것은 사람들의 심리작용이었다.
하다못해 주식의 가격조차 사람들의 심리에 의해 변동된다는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물론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가치와 경제의 흐름에 의해 제자리를 찾아가지만 사람들의 예측불가능한 행동은 시장을 뒤흔들기 때문이다.
인간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진다면 세상 사조는 것도 좀 쉬워질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어쩌면 법륜스님처럼 세상에 대한 통찰이 좀 생각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