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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Nov 21. 2022

이민자의 언어

미국에 온 지 어느덧 5년이 넘어간다. 미국 영주권을 위해 미국 수의사 자격증을 준비한 시기를 따진다면 거의 십 년의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영어 준비 1년, 필기시험 일 년 반, 그리고 실기 시험 일 년, 그리고 다시 영주권을 위해 알아보던 시기 일 년 정도 준비기간이 있었다. 비영어권 국가의 수의사는 무조건 어느 이상의 영어 점수를 받아야 하기에 서너 달 학원도 다니고, 따로 스피킹 전화영어 수업도 했다. 시험을 계속 치다 보면, 대부분의 과목의 점수는 시험의 능숙도와 함께 따라 느는데, 스피킹만은 제자리여서 많이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다. 아무리 영어를 생활화하자 결심해도, 매일 한국에서 한국말만 쓰는 생활에서 따로 미드를 보며 듣는 연습을 하는 것 외에는 다른 뾰족한 수가 없기도 했다. 그리고, 한국말에 굳어진 나의 억양이 갑자기 원어민처럼 말을 할 수 있을 수는 없기도 했다. 


이십 대 후반에 한 일 년 놀자는 생각으로 뉴질랜드에 언어연수를 8개월간 한 적이 있다. 대부분의 해외 언어연수를 한 사람들은 알겠지만, 단기간의 언어연수가 영어를 원어민 수준으로 올려주지는 않는다. 영어라는 언어에 좀 익숙해지고, 버벅대면서 어떻게든 말을 하려는 연습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다만 언어 연수 후의 가장 큰 소득이라면 영어 원서의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전에 영어로 된 책을 보면, 아주 큰 맘을 먹어야 읽기 시작할 수 있고, 읽는 동안 무지하게 엄청난 인내가 필요했었다. 그런데, 뉴질랜드에 있는 동안 소설책을 저녁마다 읽기 시작했고-외국에서는 밤에 별로 할 일이 없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계속 읽는 습관을 키워나갔다. 물론 영어 문법에 무지한 나는, 책의 난이도 혹의 저자의 표현 정도에 따라 읽기 아주 편한 책이 있고, 도저히 읽어지지가 않는 지루하거나 난해한 책들도 있었다. 그런 면에서 유명한 '다빈치 코드'의 저자 댄 브라운의 글은 복잡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이해하기 쉬운 담백한 표현들이라 아주 편하게 즐겁게 읽은 기억이 난다. 


처음 미국에 들어와서 간 곳은 미국 남부 루이지애나의 시골마을이었다. 이미 캘리포니아 샌디에이고에 소재한 한인 병원에서 스폰서를 받아 영주권이 들어간 상황이었지만, 미국에 들어와 있어야 이후 진행이 수월하다고 알고 있어서, 어떤 비자를 받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차에 미국 수의과대학의 임상과정을 수료하는데 외국인 수의사를 받는 대학 두 곳 중 루이지애나 주립대에 지원하게 된 것이다. 가뜩이나 영어도 서툰데, 사투리가 심하고 빨리 말하는 남부 영어는 정말 알아듣기 힘들었다. 학교에서 임상 로테이션을 돌면서, '내가 이렇게 영어를 못했었나' 싶을 정도로 알아듣기 힘들었고, 말하기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사십 대 중반의 나이에 학교를 다니고 샌디에이고로 들어와 살기 시작했다. 


나름 어렵게 공부해서 수의사 자격증까지 땄지만, 과연 이렇게 버벅거리는 영어로 일을 하게 되면, 내가 청소부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명색이 수의사인데 누가 내 말을 듣고 따라올까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리고, 머릿속에서 생각은 뱅뱅 돌지만, 막상 말로 나오는 게 힘드니 나 혼자 속으로는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내 얘기를 듣고도 대부분의 보호자들이  장내 이물 수술이나 방광결석 수술도 나에게 맡겨 주었다. 물론 어쩌면, 한인이 원장으로 있는 병원에서 일을 하는 터라, 거기에 오는 사람들도 일하는 수의사가 영어가 아주 유창하지 않아도 일단 어느 정도 이해하는 면도 있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국에서 한국인들과 한국말만 하던 생활을 했던 터라 이런 상황이 낯설기도 했다. 


길게만 느껴졌던 일 년 반의 영주권 승인 기간이 끝나고, 나와 가족들은 무사히 영주권을 받을 수 있었고, 그런 뒤 나는 한인병원이 아니 새로운 병원에서 일을 시작했다. 처음에 어색한 건 영어뿐만은 아니었다. 한인 병원에서 일을 할 때는, 같이 일하는 스텝들이 한국인은 아니어도, 약간은 상하관계 같은 느낌이 좀 있었는데, 새로 시작한 병원에서는 나를 도와주는 테크니션들도 대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었다. 한국에서는 수의사가 오더를 내리면 무조건 따르는 시스템이라면, 여기는 테크니션들도 나름 한국의 간호사들만큼 각자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고, 그중에서는 수의사가 되려고 준비하는 사람들도 종종 있어서 본인들 생각에 수의사의 결정이 의문스럽다면, 위에 보고를 하거나 혹은 직접적으로 그 오더에 대한 의문을 나타내는 사람들도 있었다. 처음엔 당황스러웠고, 불쾌하기도 한 부분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니, 내가 진료를 하고 그 외 적인 부분을 그들이 해결해 주는 게 고맙고 편하기도 했고, 가끔 내가 깜박한 것들을 알려주는 것도 감사하게까지 생각되었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평등에 가까운 인간관계가 시간이 지나면서 편해지기도 했다. 


가끔 아시아계 이민 2세대의 사람들은 본인의 부모들이 영어 때문에 고생하는 걸 보았을 것 같고 혹은 이민자들의 영어 수준이 어느 이상이 되기 힘들다는 걸 알아서인지 내가 여기 온 지 1년 혹은 3년이라고 말하면 깜짝 놀라기도 했다. 내게 부족하게 느껴지는 영어라도, 상대방이 보기에 이곳에 온 지 몇 년 만에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건 대단하다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어 감격스럽기도 했다. 물론 이곳에서 태어나 자란 백인들은 그런 생각 따위는 없지만 말이다. 이번에 집을 구매할 때도 사실 내가 집 구매 사이트를 통해, 원어민 중개인을 통해 집을 구매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전에 일하던 한인 병원의 원장도 미국에 온 지 십 년이 넘었고 나름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었는데도, 집을 살 때는 한인 중개인을 찾아 구매했다고 들었고, 나도 본격적으로 집을 구매하게 되면 한인 중개인을 끼어 혹시나 생길 오해의 소지나 혹인 내가 다 이해하기 못해 생길 수 있는 불이익을 방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온라인 사이트에서 집을 보고, 오픈하우스를 보고 일주일 만에 그 사이트의 중개인을 통해 그 집에 오퍼를 넣고 막상 일이 너무 급작스럽게 진행되다 보니, 한국인 중개인을 구하는 일 따위에 신경을 쓸 여력이 없었다. 또한 모기지 대출을 받는 일도 주거래 은행과 부동산 중개업자가 추천하는 대출회사에 각자 견적을 받아 비교하면서 전화와 이메일로 대출금과 이자율을 조정하는 것까지, 일을 하는 도중에 틈틈이 점심시간 쉬는 시간에 정신없이 해결하느라 초인적인 힘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아직도 영어가 백 프로 편하지는 않다. 그렇지만 내 상황을 설명하지 못하거나 의사소통이 되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다만 그냥 말 그대로 제2 외국어인 것이다. 한국인이 한국인의 악센트를 갖고 가끔 문법이 틀리거나 이상한 표현으로 말을 하는 것이다. 전에 뉴질랜드에 살 때 홈스테이를 하던 백인 남자와 결혼한 인도네시아에서 온 인도 여자분이 내게 했던 말이 있다. 그도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고, 인도네시아에서 좋은 대학을 나와 뉴질랜드에서도 랭귀지 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치던 분이었는데, 나에게 '너는 한국에서 태어나 자란 한국인이라 아무리 영어를 잘해도 너의 한국인 악센트를 없애긴 어렵다. '라고 말이다. 솔직히 그때는 그게 무슨 말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이제는 조금 알 것도 같다. 여기서 말하는 '악센트가 있다'는 우리나라의 경우로 보자면, '경상도, 전라도, 강원도 사투리가 있다'는 말과 비슷하다. 의사소통이 되고 안되고 와 상관없이 그냥, 너의 배경이 니 말투에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아직 내가 100프로 의사소통이 된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같이 일하는 테크니션의 묻는 말도 가끔 무슨 말인지 모르는 경우도 있고, 내가 말하는 걸 상대방이 잘 이해하지 못할 때도 있다. 티브에 나오는 말은 더더구나 더 알아듣기 힘든 경우가 많다. 나는 라이언 레이놀즈의 영화 '데드풀'을 좋아한다. 그런데 자막 없이 너무 알아듣기 힘들어서 자막을 틀고 보고 다 시들어도 잘 안 들려 짜증이 나기도 했다. 


다만 다행이라 생각하는 건, 미국에는 너무나 다양한 배경 언어를 가진 이민자들이 살고 있어서, 대화가 통하는 한 악센트가 있는 것은 사는데 별 문제가 없다는 것이다. 그걸로 된 거 아닐까 생각하는 건 오늘도 내일도 즐겁게 살기에 딱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이제 초등하고 4학년이 된 우리 둘째 딸이 한국말을 자꾸 영어처럼 해서 좀 걱정이긴 하지만 말이다. 영어에서는 '~할 뻔했다"라는 말이 "almost"이다. 그래서 우리 딸의 "넘어질 뻔했어."는 곧 "거의 넘어졌어"로 해석된다. 하지만, 우리 딸은 한국말로도 악센트가 없고, 영어도 악센트가 없으니, 너무나 부러운 황홀한 조합이지 않은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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