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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an 09. 2023

나는 이상형과 결혼했다!

누구나 한 번쯤 이상형에 대해 생각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나의 이상형은 고등학교 때 읽은 에릭 시걸의 '닥터스'라는 소설로 인해 결정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인 남녀는 어린 시절부터 친구였고, 의대에 같이 진학해 여러 가지 일들을 겪고 서로의 연애사를 보면서 지내다, 결국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깨닫고 결혼까지 골인하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 소설을 보면서 너무 감동받았던 나는 나의 사랑도 그런 식으로 하고 싶다고 막연히 생각했던 것 같다.  그런데 막상 현실의 연애는 그렇게 소설처럼 아름답거나 낭만적이지는 않았다. 


대학교 1학년때 처음 사귄 남자친구는 질투심과 소유욕이 아주 강한 전형적인 한국 남자였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해 다 알고 싶어 했다. 대학생이 되면 하고 싶었던 일이 많았던 나는 그런 그의 지나친 관심이 부담스러웠고, 그래서 한 번은 같이 쇼핑을 해서 예쁜 티셔츠를 입혀 그 친구를 소개팅에 내보내기도 했다. '나는 나의 인생을 살고 너도 너의 인생을 살면서, 서로 따로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만나고, 우리는 어리니깐 많은 경험이 필요하다. 그러나 우리가 정말 진정한 인연이라면 결국 같이하게 될 것이다'라는 나의 인생관을 그에게 주입시키고자 노력하기도 했지만, 스무 살의 남자에겐 나의 얘기는 나에게 더 집착하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 같았다. 


두 번째와 세 번째 남자친구들은 스토커와 지질한 폭력남으로 정리할 수 있다. 그 이후 나는 남자에게 질려버렸고, 이젠 정말 성년이 된 후 처음으로 혼자가 된 시간을 즐기자 결심했다. 그래서, 혼자 유럽여행도 다녀오고-사실 이게 나의 첫 혼자 여행이자 해외여행이었던 터라 출발 전날은 무서워서 잠도 오지 않았다- 취직도 하여 싱글의 삶을 즐기고 있던 차에, 대학동기인 지금의 남편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원래부터 알던 사이였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았던 동기가 같은 병원에서 일을 하게 되어 처음에는 나름 반갑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이상한 건, 별로 친하지도 않고, 군대도 일찍 갔던 남편과 학교생활도 별로 같이하지 않아 부딪힐 일도 별로 없었는데, 항상 내가 힘들어 도움이 필요하면 도움을 구할 동기목록에 들어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원래 착한 사람이기도 했지만, 내가 갑자기 도움을 요청하면 아무 조건 없이 나를 도와줄 것 같은 사람으로 나에게 인식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골치 아픈 연애를 끝냈던 나는, 그 당시 내가 만나고 싶었던 사람으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을 기대하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다 우리는 직장 내 연애를 시작했고, 결혼까지 하게 되었다. 어쩌면 멋모르는 십 대 시절 꿈꾸던 나의 연애관이 실현된 것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어린 시절 읽었던 동화처럼 '그 후로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습니다'가 현실의 결혼생활에서 끝이 될 수는 없었다. 너무 착한 남편뒤에는 착한 아들을 마음대로 휘두르고 싶은 어머니가 버티고 있었으니 말이다. 고부갈등에 이어, 착하지만 경제적 관념이 별로 없는 남편은 나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었고, 그 이후 나의 주도적인 결혼생활이 이어지게 되었다.  


미국으로 온후 나는 직장에 다니면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이 되었고, 남편은 집에서 가사와 육아를 전담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몇 년 그러다 남편이 알아서 뭔가 하겠지 생각했지만, 5년이 넘어가도록 우리의 상황에 변화는 없다. 여러 방법으로 틈틈이 자극을 주려고 했지만, 사실 세상 모든 일이 본인의 의지 없이 되는 일은 없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세상에서 가장 좋은 사람이고, 나에게 너무나 헌신적이다. 다. 그가 자기 본위이거나 자신의 성취에 몰두하는 사람이었다면, 아마 내가 지금처럼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할 수 없었을지 모른다. 그러니 나는 아직도 남편이 나의 이상형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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