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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an 31. 2023

안티-네거티브

나의 기억 속의 어린 시절은 항상 즐겁게 뭔가 하고 있었던 듯한데, 어른이 된 어느 시점부터는 매일이 무거운 짐을 안고 살아가는 느낌이 든다. 정확이 왜인지 혹은 언제부터인지 기억이 나지는 않는다. 아마도 결혼을 하고 현실적인 삶에 찌들기 시작하면서일 것 같다. 학교에 다닐 때는 학교 성적이나 친구들 관계 외에는 다른 어떤 책임감도 없었으니 삶에 부담감이 별로 없었을 수 있다. 보도 섀퍼의 '돈'에서는 '책임감(responsibility)'이 '어떤 일에 반응하는 능력: response+ability'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점점 더 많은 책임감을 느끼고 살기 때문에, 그에 대한 대처가 어떠하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는 모든 일에 책임지는 사람이 되라고 말한다. 그렇게 해야 스스로 상황을 주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어른이 되는 것은 재미있지 않다. 그렇다고 해도 주변에 휘둘려도 스스로를 돌볼 수 없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도 않다. 중학교 때 읽고 도저히 이해가 안 돼 고등학교 때 다시 읽은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서 밝고 어두운 두 세계에 대해서 얘기한다. 부모님과 사는 밝고 따뜻한 세계와 친구들로 인해 생긴 어두운 세계를 나타낸 것이다. 그 안에서 미스터리 한 데미안이라는 친구를 만나면서 주인공은 그 어두운 세계에서 탈출할 수 있게 된다. 점점 어른이 되어가면서 더 이상 우리에겐 밝고 어두운 세계의 뚜렷한 경계가 없어진다. 우리를 지켜주던 부모님도 데미안 같은 친구도 없다. 스스로 세상과 부딪혀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어쩌면 '데미안'에 나오는 내용으로 이해되기도 한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누구든지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여야 한다.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 그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이다.'


뉴스에 나오는 대부분의 내용은 부정적인 내용들뿐이다. 이는 사람의 기본적인 성향이 부정적인 얘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사람들이 쉽게 듣고 재밌어하는 것도 누군가에 대한 불평이나 불만일 것이다. 내가 어린 시절 읽기 좋아했던 얘기는 학교 선생님이었던 부모님에게 배달되던 교육잡지의 내용 중 하나가 '위인의 뒷이야기'였다. 누가 그 이야기를 썼는지는 기억이 나지도 않지만, 어린 시절 읽던 위인전에 나오는 이들의 사생활이나 비하인드 스토리 같은 거였다. 그중 생각나는 것은, 근대교육의 아버지라 불리던 '페스탈로치'가 자신의 아이들을 고아원에 보냈다는 얘기 같은 거였다. 왜 그런 얘기가 재미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간의 가십에 대한 내 얕은 욕구를 채워준 것이 아닐까 싶다. 


나는 내가 바라던 미국 수의사가 되었고 결국 미국에서 일을 하고 있다. 가끔 사람들이 내 발음을 이해하기 어려워하거나 내가 버벅거릴 때도 있지만, 대체로 일하는데 큰 문제도 없고, 아이들도 생각보다 잘 적응해 주었고, 이제 매달 금전적으로 크게 쪼달리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아침에 일어나서 혹은 출근길에 아주 행복하거나 즐겁지는 않다. 지금은 나의 단기, 장기 목표가 명확히 생겼고, 그를 위해 나름 지속적으로 노력하며 채워나가고 있다. 그런데, 아침마다 혹은 문득문득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들을 통제할 수가 아니 없앨 수가 없다. 전날 열심히 운동하고 목표를 되새기고 밝은 미래를 꿈꾸며 잠이 들어도, 눈을 뜨는 순간 부정적인 생각이 밀려 들어온다. 그런데 최근에 들은 책소개 유튜브에서 그에 대한 해답을 어느 정도 찾은 것도 같다. 그 내용은 '인간은 누구나 부정적인 생각이 기본에 장착되어 있고, 그것을 없애기 가장 좋은 방법이 개인적인 시간이 나거나 짬이 생길 때 긍정적인 오디오를 듣는 것이다'라는 얘기였다. 나는 평범한 인간이고, 결국 나의 기본 장착 프로그램은 '부정에너지'인 것이다. 내가 너무 부정적이거나 우울한 사람이어서가 아니라는 사실에 나름 안도하기도 했고, 그 해결책을 찾은 것 같아 기쁘기도 했다. 


과거 학교에서 배운 맹자의 '성선설-인간은 모두 태어날 때 선한 존재이다'이나 순자의 '성악설-인간은 악하게 태어난다'과 같이, 가끔 인간이 그렇게 쉽게 정의 내려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싶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소시오패스'가 뇌에 문제가 있는 유전적인 인자를 갖고 태어났는지, 환경에 의해 자신만 아는 병적인 인간이 되었는지도 결정지을 수 없다. 다만 MRI 같은 뇌 사진을 찍어보면, 뇌의 감정을 통제하는 부분이 축소되어 있다는 것을 결과적으로 알 뿐이다. 

다만 우리가 아는 것은 우리의 생각이 우리를 만들어간다는 것뿐일 것이다. 그럼 화초에 물을 주듯, 좋은 물과 양분을 주고 잡초가 자라지 않게 노력할 뿐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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