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Feb 07. 2023

밥 하지 않는 여자

나의 부모님은 초등학교 교사였다. 어린 시절 부모님을 따라 강원도의 외진 산골의 관사에서 생활하며 나름 시골생활을 마음껏 만끽하고 전교생이 60명밖에 없는 작은 학교에서는 전교생을 가르치는 부모님 덕분에 학교의 셀럽(?)이 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어린 시절 부모님은 월급날마다 무척이나 크게 다투시곤 했고, 나중에 엄마에게 들은 얘기론, 아빠가 본인의 월급을 혼자 쓰셨기 때문이라 한다. 엄마는 세 아들 중 장남과 결혼을 하셨고, 딸 둘을 낳은 죄인으로 아들을 낳아야 하는 압박감을 많이 받으셨을 것이다. 월급을 주지 않는 남편과 아들을 낳으라 압박하시는 할머니 사이에서, 일하면 살림도 해야 하는 엄마를 보면서, 나는 아주 어린 나이에도 사람들이 왜 결혼이라는 걸 해서 저렇게 힘들게 사는가 의아스러웠다. 그래서 내 인생에 한 번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는 것이 희망이었던 적이 없다. 오히려 왜 결혼을 하면 안 되는지, 남자를 믿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 나의 확신을 쌓아나갔다. 


중학교 때 본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과 입센의 '인형의 집'은 여성이 남성중심적 사회에서 얼마나 수동적인 존재로 살아가는지에 대한 나의 신념을 확인시켜 주었다. 그래서 토론시간에 '인형의 집'의 주인공이 남편으로 벗어나고자 하는 행동에 과격한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아마도 나는 '여성은 피해자다'라는 생각을 암암리에 갖고 있었던 듯도 했다. 가정에 무심하고 밖으로 나돌아 다니던 무책임한 아빠를 보며, 아빠가 없었으면 좋겠다고 막연히 생각한 적도 있었다. 엄마와 동생이 있을 때 행복하고 평온하던 집이, 술을 마시고 사나운 눈빛으로 들어오는 아빠가 등장하는 순간 불안과 공포로 변하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런 나에게 대학이라는 곳은 집을 탈출해야 하는 생명줄 같은 것이기도 했다. 어떻게든 집을 벗어나 다른 도시로 가야 하는 절대적인 이유가 있었다. 아빠는 내게 진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지만, '너에게 재수란 없다. 시험에서 떨어지면 그냥 시집이나 가라'는 말로 나를 격려(?)하시곤 했다. 그렇지만, 수험생이 있는 집에서, 새벽까지 공포영화를 보시면 소음을 내시던 아빠가 있는 우리 집을 보며,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정은-모든 식구들이 발소리를 줄여가며 수험생 치를 보는- 나에게 터무니없는 허구에 불과했다. 


그 사이 세상은 많이 변했고, 나처럼 여자가 가장이 되어 돈을 벌고, 남편은 집에서 가정일과 아이들을 돌보는 집들도 간간히 있다. 나는 미국에 온 이후로 더 이상 밥을 하지 않게 되었다. 한국에 있을 때만 해도, 남편도 일을 했기에, 나는 저녁에 일찍 들어가 아이들의 식사를 챙기고 아침에는 집안정리를 한 이후에 출근을 하곤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어쩌다 시부모님이 우리 집에 오시거나, 우리가 한국에 나가도, 나는 시부모님 눈치를 보며 아침에 일어나 식사를 준비하지 않는다. 내가 자고 싶은 만큼 자고 일어나고, 나가고 싶을 때 나가서 친구들을 만나기도 했다. 집에서 경제적인 책임을 부담한다는 것은, 상대적으로 삶에 대해 그만큼의 자율성을 갖는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엄마는 일을 하면서도 가사에 대한 부담이 있었지만, 나는 이제 그에 대한 의무가 없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여주인공의 마지막 대사는 유명하다. 

"내일은 내일의 태양이 뜬다"

기드 모파상의 '여자의 일생'에서의 여주인공의 "우리 삶이 늘 아름다운 건 아니지만 그래도 살만한 가치는 있다"는 마지막 대사와 비교될 수 있다. 

적어도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칼렛은 아집을 사랑으로 고집하며 고난을 겪지만, 적어도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 노력을 했다면, '여자의 일생'의 로잘리는 고달픈 운명도 순응하며 견뎌나간다. 

토마스 하디의 '테스'는 이 두 여자와 비교할 수도 없는 참혹한 운명의 결과로 희생되고 만다. 그녀가 사랑했던 남자는 마지막 그녀의 동생과 손을 잡고 미래를 설계한다.

가끔 조선시대에 태어나지 않아서, 이슬람 국가에서 태어나지 않아서 감사할 때가 있다. 나의 인생을 스스로 만들어 나갈 수 있다는 건 아마도 삶에서 가장 큰 축복이 아닐까 싶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 안티-네거티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