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Jin Apr 10. 2023

인생 잠금 해제...

고등학교 때 진로를 정하기 전에 내가 생각했던 미래는 소설가였다. 나는 미치도록 책과 영화를 좋아했고, 당연히 그와 관련된 일을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러다 문과와 이과를 정해야 하는 고등학교 1학년말 들은 엄마의 한마디 말로 나의 진로는 완전히 달라졌다.

"문과를 나와서 뭘 해서 돈을 벌고 살 건데?"

나는 순간 암담해졌다. 글을 쓰고 싶었지만, 내가 베스트셀러 작가가 될 거라는 자신은 없었다. 물론 가능할 수도 있지만, 불투명한 미래였다. 연극이나 영화를 하는 배우도 되고 싶기도 했고, 심리상담을 하는 상담사가 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그역 시도 꼭 재정적으로 보상받을 거라는 자신이 없었다. 결국 나는 이과를 지망했고, 의사가 되고 싶었다. 그게 내가 생각했던 가장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을 것 같았던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또한 못 미치는 학업성적으로 가능하지 않았고, 그때까지 있었는지도 몰랐던 수의학과라는 전공을 선택하게 되었다. 그리고 한국에 이어 미국에까지 와서 수의사로 일을 하고 있다. 삶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 우리는 예측하지 못한다. 다만 한 올 한 올 엮어갈 뿐이다. 최근 읽은 '마지막 몰입'의 저자 짐퀵의 얘기를 보면서 나의 삶의 방향성은 무엇이었는지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짐 퀵은 책에서 '제한적 신념'에 대해 얘기한다. 제한적 신념의 자신이 스스로에게 갖고 있는 자기 한계와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고 있는 초능력(?)을 발휘할 수 없게 하는 목줄과도 같다. 초능력이라는 말은 이상하지만, 짐퀵은 사람은 누구나 초능력과 같은 천재적인 능력이 있다고 말한다. 다만 주변의 평가나 가족들은 만들어놓은 제한적 신념으로 인해 좌절된다고 말이다. 그것은 사실 누군가의 의견일 뿐이지 진실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나에게도 제한적 신념이 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는 '머리가 나쁘다'라는 말이다. 어린 시절, 늘 학교에서 전교우등생을 놓치지 않았던 한 살 어린 여동생에 비추어 반에서 겨우 10등 안에 드는 나는 집안에서 머리가 나쁜 아이였다. 당연히 지능지수도 동생에 비해 떨어진다고 얘기를 들었다. 나는 지독히도 내성적인 아이여서 적당히 성적이 나오고 있으니 크게 문제 되지 않았고, 아무도 나에게 관심 갖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서 아마도 이런 상태를 내심 좋아했을 수도 있다. 두 번째는 '얼굴이 예뻐서 팔자가 사나울 거라는 말이다'. 웃긴 얘기지만, 어려서는 많은 사람들이 내 외모를 칭찬했고, 길을 지나가다 젊은 여자들이 갑자기 팔의 잡아끌어 '너무 예쁘다'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일단 나는 나의 생김새를 좋아하지 않았기에 이 말들에 대해 전혀 동의하지 않아 상관이 없었고, 누군가의 시선을 받는걸 극도로 싫었했었기에 이런 관심이 너무나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나를 키워주신 할머니는 내가 커서 인생이 험난할까 걱정하셨다. 아마도 이것이 내가 소설가나 배우가 되지 못하게 한 이유일 수도 있다. 한국전쟁당시 평야에서 나의 엄마를 데려오신 외할머니는 평생 가난과 싸우면 고운 외모로 험난한 인생을 사셨기에, 친할머니는 내가 외로운 외할머니의 팔자를 따라갈까 봐 더욱 엄하게 나를 교육하시곤 했다. 세 번째는 아마도 '사주가 나빠 부유해지지 못할 것이다'라는 말일 것이다. 


아마 대부분의 나의 이런 제한적인 신념은 깨졌다고 생각한다. 머리가 나쁘다기에는 내가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한 문제가 없을 만큼 이루어냈다고 생각하고, 미국 수의사시험을 볼 때는 커트라인보다 100점 이상 높은 점수를 받기도 했다. 그리고, 외모 때문에 오해를 받는 일을 만들지 않고자 나름 노력했고, 술자리에서도 술에 취해 태도가 흩트려지는 경우나 끼를 부리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다. 따라서 이성이 나를 만만하게 보는 일도 없었고, 오히려 어려워하기까지 했다. 마지막은 아직 현재 진행 중이라고 말할 수 있겠지만, 충분히 부서질 수 있는 것이라 생각된다. 


인생의 또 다른 갈림길은 '책임'이 누구에게 있는가 일거라 생각된다. 짐 퀵은 그가 존경하는 히어로계의 거장 '스탠 리'를 만났을 때 그가 '위대한 능력에는 큰 책임이 따르죠'라는 말을 듣고, '큰 책임을 맡으면 막강한 힘이 생기죠'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책임감은 인생에서 때론 커다란 부담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상대적으로 커다란 상황을 통제할 수 있는 힘이 되기도 한다. 결혼을 하고 나서 경제적인 책임이 어느 순간 나에게로 넘어왔을 때 나는 이상할 정도로 당연하게 상황을 받아들였다. 어쩌면 상황에 대한 통제권이 나에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 막강한 힘을 다른 사람에게 넘겨주고 싶지 않았던 것을 수도 있다. 최근에 병원에서 흔히 하지 않던 수술을 하게 되었는데, 그달은 다른 수의사와 같이 일하는 날이어서 상황이 여차하면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막상 내가 수술이 내가 예상했던 방향과 달라졌고, 나는 그 수의사가 나에게 도움을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지만 아무 도움도 받지 못했다. 정말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그 수의사에게 정말 화가 났다. 내 수술이었고 당연히 내가 책임을 지는 게 당연했는데, 그 친구가 나에게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이유로 나는 화가 난 것이다. 나는 이것이 책임의 기본 원리라고 생각되었다. 모든 것을 내가 책임지는 상황이라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전가하거나 결과에 대해 원망하지 않아야 한다. 하지만 그 책임을 누군가에게 돌리는 순간 그 결과를 내가 받아들이는 게 아니고 남의 탓이 되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는 어떠한 좋은 결과물도 내 것이 될 수 없는 것이다. 

나는 요즘 '오늘 하루도 무사히 지나가게 해 주세요'대신 '내가 겪는 어떠한 문제보다 더 큰 사람이 되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한다. 내가 능력이 아주 큰 사람이 된다면 내가 겪는 어떠한 문제도 내가 해결하지 못할 일은 없으니까 말이다. 


긍정의 힘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의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는 삶의 목표가 즐겁게 사는 것이다. 일을 할 때도, 가족과 있을 때도 말이다. 즐거워야 모든 일이 잘 풀린다. 

처음 병원을 하고 아이가 생겼을 때 나는 직원이나 아이를 봐주시는 이모님에 대한 부족함을 느꼈을 때 어찌해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처음에 내가 그들의 부족함을 얘기해 주면 달라질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계속계속 부탁과 조언을 했는데,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고 무력함을 느꼈다. 어른들은 아니 어쩌면 아이들도 누군가에 의해 바뀌지 않는다. 물론 강제성을 띄면 달라지겠지만 그것도 한두 번이다. 그래서 내가 바꾼 전략은 그들을 즐겁게 해 주자였다. 병원에서도 최대한 재밌는 얘기를 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들이 즐거워야지 변화가 생겼다. 아이들도 고생스럽게 뭔가 더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주거나 깨끗한 옷을 입히면서 피곤해 죽을상을 하는 것보다, 조금 덜먹고 조금 더럽더라도 즐겁고 행복한 엄마가 되어주는 것이 더 좋다고 생각한다. 나는 나의 평화를 깨뜨리는 것들을 최대한 들여놓지 않으려 한다. 우울하거나 절망적으로 살기엔 인생은 짧으니까 말이다. 

작가의 이전글 스토리가 전부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