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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pr 24. 2023

외롭다고 느낀다면 할 수 있는 일

나는 영화든 소설이든 대체로 한번 이상은 보지 않는데, 넷플렉스에서 내가 계속 여러 번 보는 영화가 세편 있다. 'The old guard', 'Peppermint' 그리고 '6 underground'이다. 세편의 공통점이 있다면, 크게 모두 정의를 위해 싸우며 자신의 생활이 없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영화의 주인공들의 피지컬이 아주 훌륭하니 보기에 좋고, 개인의 사생활이 없어 사적인 관계가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살면서 생활에서 느끼는 피로감을 잊을 수 있어 좋아하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기도 한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들은 간혹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외적인 부분도 출중하지만 혼자 사는 경우들이 허다하게 나온다. 현실에서는 아마도 그런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고 생각되는데 말이다. 그리고, 그런 콘셉트의 사람들은 아주 멋져 보이고 근사하다. 그렇지만 현실세계에서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면 얼마나 외로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내가 이십 년 전쯤 처음 동물병원에서 임상을 시작했을 때, 병원 원장은 진료를 할 때 사람들의 개인적인 부분에 대해 질문을 많이 하곤 했다. 나이도 어렸고 개인적인 성향이 강했던 나는 그런 원장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리고 더 이상하다고 느꼈던 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부분을 오히려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그때 원장이 인턴이었던 우리들을 모아서 가르치려고 했던 것들은 임상적인 지식이 아니라 비즈니스와 사람 간의 관계에 대한 것이었고, 주요 개념은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만 관심이 있어서 누군가 자신에게 관심을 주는 것을 좋아한다'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이해도 가지 않았고, 그걸 따르고 싶지도 않았다. 나는 처음 본 누군가에게 개인적인 질문을 하는 것이 실례라고 생각했고, 병원에서의 내 일은 진료를 해서 동물들의 질병을 고치거나 도와주는 것이지 그런 사적인 얘기를 하는 것 잘못된 일이라고 생각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모든 일의 기본은 서로에 대한 관심과 배려하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인간관계의 기본서라고 할 수 있는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나온다. 사람은 자기 자신밖에 사실 관심이 없다는 것 말이다. 어떤 설문조사에서 통신판매의 대화내용 중 가장 많이 나온 단어가 '나'라는 말이다. 그리고 관심을 받고 싶으면 관심을 가지라고 말이다. 


미국에서 수의사로 일을 하면서, 원어민도 아니고 어릴 때 이민을 와서 영어가 능통하지도 않은 나의 진료를 잘 따라와 주고 좋아해 주는 사람들을 보면서 가끔 '왜'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었다. 물론 내가 딱 면허만 따서 미국에서 일을 시작한 것이 아니고 한국에서 십 년 넘는 진료 경험이 있기에, 내 지식이나 기술이 미국의 다른 수의사들에 비해 뒤처지지 않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환자가 아닌 환자의 보호자와의 소통과 협의 과정을 통해 진행이 되고, 진료에 대한 그 협의 과정은 보호자가 내가 하는 말을 이해하고 충분이 납득이 되어야 이루어진다. 내가 다니는 병원의 테크니션들은 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같이 일하는 다른 수의사들에 비해 보호자의 동의를 잘 얻어내고, 설득력이 강하다고 한다. 나는 '내가 영어를 잘 못해서 불쌍해서 사람들이 해주는 거야'라고 웃으며 넘어갔지만, 나도 그 이유를 잘 모른다. 다만 나는 내가 영어에 능통하지 않기에 다른 수의사들이 일하는 것보다 두 배 더 잘하고 더 노력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부분도 있고, 보호자들과 진료 외의 잡다한 얘기들을 더 많이 하기도 한다. 사람들은 관심받고 배려받기를 원하고, 그걸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은 대화를 통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친한 수의사 중에 학부과정을 하버드에서 나온 친구가 있다. 당연히 굉장히 똑똑하고 활동적인 친구인데, 테크니션들은 그가 잘난척한다고 말하고, 손님들은 자신의 개에 대해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내가 보기엔 그 친구나 나나 똑같이 우리가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한다고 생각하지만, 유일한 차이는 그 친구가 사람들에 대한 인내심이 나보다 적다는 것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보통 사람들의 느린 이해력을 이해하지 못하고 답답해하기 때문이다.


나는 어린 시절 아주 총명한 아이도 아니었고, 눈치가 없다는 말을 아주 많이 들어서 후천적으로 눈치를 보는 방법을 터득했다. 그 방법은 사람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서 그 사람이 그 말은 하는 이유와 의도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는 것이다. 그러려면 사람들과 얘기할 때 생각을 많이 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긴 하지만, 말하는 사람의 의도에 맞게 얘기를 이끌어갈 수 있기에 나와 얘기하는 사람의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특히 일을 하는 경우에는 이 방법이 아주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 우리가 흔히 하는 말 중에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고 말한다. 그 말의 뜻은 똑같은 내용을 이끌어 가더라도 어떻게 표현하는 가가 굉장히 중요하다는 말이다. 암튼 이런 식으로 사람들과 얘기를 하다 보면 상대방의 만족도는 높아지지만, 나는 그 대화에 굉장치 집중해서 곧 지치게 된다는 문제가 있다. 그래서 그 집중도가 흐트러져서 그냥 말을 하다 보면 상대방을 불쾌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래서 가끔은 사람과 대화를 하는 것이 나에겐 일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살면서 심심하다고 느낀 적은 많지만, 외롭다고 느낀 적은 별로 없다.  나의 사람에 대한 기대도가 정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관심을 받는 걸 즐기지 않아서가 이유라고 생각했다. 심지어는 대학 때 읽었던 '좀머 씨 이야기'의 좀머 씨처럼 누군가와도 관계를 맺지 않고 살아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다. 그렇지만 이런 배부른 투정도 사실은 내 곁에는 사랑하는 가족이 있고, 나를 반겨주고 나와 즐겁게 시간을 보내는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걸 깨닫기 시작했다.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 단지 진료를 받기 위해 병원을 찾아와서 이런저런 사는 얘기를 하는 걸 들어주는 건 어렵지도 힘들지도 않은 일이다. 나의 조그만 시간 할애와 배려로 그 사람이 잠시라도 자신의 얘기를 하면서 위로받을 수 있다면 나에게도 감사한 일이 된다.

나는 이제 사람들에게 물어보는 사람이 되는 것을 즐긴다. 사람들은 자신에게 관심을 주고 자신의 얘기를 들어주는 나에게 호감을 갖는다. 주변의 외로운 사람들을 보면 자신의 얘기를 꺼내고 싶어만 하지, 주변 사람에게는 관심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의 얘기만 하는 그 외로운 사람들을 꺼려하게 되고, 그 외로운 사람들은 점점 더 외로워져 간다. 남에게 한 발짝 더 가가가 귀 기울이면, 나의 외로움도 줄어든다는 걸 아직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강아지나 고양이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사람들의 곁을 지킨다. 그런데 그로 인해 사람들은 기쁨을 느끼며 그들의 외로움을 달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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