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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Jul 03. 2023

부모는 자식의 안전만을 생각한다.

엄마에게 바치는 글!

우리 가족이 미국으로 온 순간부터 엄마는 내가 혹시나 너무 무리해서 힘들어지지 않을까 걱정을 하셨다. 미국에 들어오는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나는 학생비자를 택했다. 물론 사십에 넘은 나이에 가족을 데리고 영어학원을 등록해 들어오는 것은, 미국 대사관 인터뷰를 통과할 가능성이 적었기에, 미국 수의과 대학의 임상과정을 등록해 비자를 받았다. 비자를 받기 위해 받은 학생 비자지만, 미국 수의과 학생들의 마지막 학기에 해당하는 임상과정은 만만한 과정이 아니었다. 학비도 비싸고, 이왕 하는데 배울 수 있는 건 배워야지 하는 생각에 소동물 임상에 해당되는 거의 모든 과정을 7개월간 빡빡하게 채워갔다. 하지만, 미국 수의사 임상시험에 세 번이나 도전해 붙은 마취 과목은 지긋지긋해서 하지 않았지만, 내과, 외과, 종양과, 피부과, 응급의학과, intergrative medicine(한방, 침술, 허브 등의 한의학), community service(일반 진료)의 로테이션을 거의 2주 간격으로 빠짐없이 들었다. 오후 4시에 출근해 새벽 2시에 퇴근하는 응급의학과는 어설프게 연말에 끼어서 거의 4주를 들었는데, 거의 새벽 5시나 6시에 들어오기도 일쑤였다. 외과는 온콜이 잡히면, 밤에 아무 때나 연락이 와도 수술장에 들어가기 위해 튀어가야 했다. 수술로테이션이 끝나고 같이 일한 나보다 한참 어린 레지던트는 나한테 수고했다고 인사치레를 해주기도 했으니, 나름 열심히 했다 생각한다. 

물론, 가뜩이나 영어로 생활을 해야 하는 첫해에 루이지애나라는 미국 남부 사투리를 반도 못 알아들으면서 일을 하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십 년 넘게 병원에 갇혀 살다가 남의 나라에서 어린 학생들과 수업을 듣는 것이 신선하기도 했다. 과에 따라 아침에 6시에 일어나는 일은 다반사고, 새벽 5시나 4시에 일어나서 가야 하는 날도 간간히 있었기에 아침잠이 많은 나에게 고역이기도 했다. 


처음 미국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카톡으로 엄마와 시댁에 매주 전화를 드리게 되었는데, 엄마는 늙은 딸이 외국 나가 고생할까 하는 생각에 눈물을 흘리셨고, 나의 새로운 도전으로 준비 없이 덩달아 따라온 남편을 둔 시어머니는 내가 본인 아들 눈치 줄까 전전긍긍해하셨다. 두 분의 입장이야 이해는 가지만, 고생을 하더라도 내가 시작한 일이고, 남편도 와이프가 3년간 미국 수의사준비를 하는 동안 옆에서 잘 지켜봐 주면서도 영어 공부 한번 하지 않아 외국생활이 고생스러워지는 것도 본인 탓인 것을, 왜 안타까워하시는 걸까 답답한 마음이 드는 것 어쩔 수가 없었다. 


올해 초에 우리 집을 다녀가신 엄마는, 내가 무리해서 일할까 노심초사하시면, 전화하실 때마다 '인생 살아보니 짧다, 편하게 살아라'하신다. 내가 외벌이로 혼자 고생한다 생각하셔서 하는 말씀이라 일면 이해는 하지만, 일이 단순히 돈벌이 수단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중년의 나이에 무언가 도전해서 이루어냈고, 살면서 외국에서 일 년간 놀면서 언어연수한 게 전부인 내가, 영어로 진료를 하고 사람들의 인정을 받는 건 가슴 벅찬 일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공부한 잘 나가는 미국수의사들 사이에서 손님들이 나를 찾아 진료를 받으러 오고, 너 때문에 멀어도 여기를 온다고 말하기도 한다. 최근에는 전에 일하던 로케이션에서 같이 일했던 테크니션이 결혼식 청첩장을 보내서 주변에 물어보니, 수의사 중에 초대를 받은 것은 내가 유일했다. 물론 혼자 가서 뻘쭘히 있다오 긴 했지만 말이다. 


저번주에 미국 남부 미시시피에서 온 한 손님에게 병력을 듣고 온 네이티브 테크니션이 손님의 악센트가 너무 심해 몬말인지 반밖에 못 알아들었다고 불평을 했는데, 가서 얘기하면서 그 말을 알아듣고 있는 내가 스스로 대견해지기도 했다. 


전에 법륜 스님이 이런 말씀을 하시는 걸 들은 적이 있다.

'이 세상에 부모말을 잘 들었으면, 독립운동을 한 유관순 같은 사람이나, 도시락 폭탄은 터트린 윤봉길 같은 독립투사는 나올수가 없었다고 말이다'


'번 아웃' 

'워라밸'

요즘 우리가 흔히 듣는 말이다. 

이런 말들이 어쩌면 우리를 더 힘들게 하는지도 모른다. 누구는 똑같이 일하면서 인생을 더 즐기며 사는 것 같다 생각하게 되기도 하고, 페이스북이나 인스타 그램에 자신이 얼마나 재밌게 사는지 보여주고자 애를 쓰기도 한다. 최근 읽은 '세이노의 가르침'이라는 책에서, 주 5일제가 시행되면서, 직장인의 실력차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현저히 벌어진다고 얘기한다. 누군가는 쉬는 이틀을 미래를 위한 성장으로 쓰고, 누군가는 더 많은 시간을 무의미한 소비로 쓴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누군가는 하루를 이틀로 쪼개서 쓴다는 말까지 한다. 

테슬라의 CEO인 일론 머스크는 사람들이 자신이 돈이 많다고 부러워하지만, 자신이 일주일에 100시간을 일하는 건 모른다로 말한다. 일을 일로만 생각하고, 단순히 돈을 벌기 위한 수단만으로 생각한다면, 당연히 그 일을 하는 게 힘들기만 하고, 그 시간이 지나가기만을 바랄 것이다. 문제는 그렇게 일하는 것인 '번아웃'이라는 악순환을 불러일으키고, '워라밸'을 찾으며 시간을 허비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 


나는 요즘 아침에 출근할 때 일하러 간다고 생각하지 않으려 한다. 내 시간이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고, 그로 인해 내가 하나씩 경험이 쌓이면서 더 나은 진료를 할 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더 많은 환자를 볼수록 더 많은 경험과 실력이 쌓인다. 드디어 내가 프로페셔널이라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쁘기도 하다 


'Badass'

나는 현재 두 개의 병원에서 한 곳을 풀타임으로 한 곳은 일주에 한번 가는 파트타임으로 일한다. 돈을 더 벌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어쩌다 계약이 꼬여서 그렇게 됐을 뿐이긴 한데, 그것도 일 년 가까이하다 보니 할만하기도 하다. 그 두 곳 중 한 곳에서 내가 듣는 말이 'bad ass'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말인가 의아했는데, 같이 일하는 테크니션들이 못하는 걸 내가 할 때나 보호자들한테 필요한 걸 하게 만들 때 듣는 말이라 나쁜 말은 아니겠구나 생각했다. 남편에게 한번 얘기했더니 '그거 나쁜 말 아니야?'라고 물어보기에,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라고 얘기했지만 정확히 뜻은 알지 못했는데 오늘에야 찾아본 구글 해석이 이렇게 나온다. 

'a formidably impressive person'


미국에서는 테크니션들이 한국의 인의 병원 간호사들처럼 주사를 놓거나 혈관을 잡는 등의 일들을 한다. 그래서 내가 주사를 놓거나 채혈하는 경우보다 그들이 하는 경우가 더 많아 당연히 그 친구들이 잘해야겠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않다. 그래서 테크니션들이 혈관을 잡다 안되거나 방광천자를 못하면 대부분 내가 해결해줘야 하는 경우들이 많다. 그래서 붙여진 애칭(?)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번은 치과 스케일링을 하러 온 강아지가 있었는데, 보호자가 은퇴한 수의사라고 테크니션이 말해주면서 추가적인 걸 절대 안 하는 사람이라 전해주었다. 그리고 전화를 했더니, 내가 얘기하는 와이프는 결정권이 없고, 옆에서 스피커 폰으로 얘기를 듣기만 하던 은퇴 수의사인 남편이 '안돼!' 하면 다 끝나는 일이었다. 강아지가 나이가 있는 애라서 신부전 초기 진단을 하는 혈액검사를 추가하자 했더니, 그 단어의 '풀 네임이 뭐냐?' '그런 건 할 필요 없다'등등의 이유로 거절을 했다. 그리고 스케일링의 하는 사이에 발치가 필요한 썩은 이를 보고 전화를 했는데, 와이프랑 얘기를 하게 되었고, 전혀 생각지 않게 추가금이 꽤 드는 발치를 덥석 하겠다고 해서 적잖이 당황을 했다. 그리고 또다시 "DR Lee is a badass' 말을 들었다. 물론, 발치를 하는 도중에 남편에서 한소리 들은 와이프가 다시 전화해서 못하겠다고 얘기했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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