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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May 28. 2023

세상에는 배울 게 너무 많다.

요즘 들어 점점 늘어나는 뱃살이 부담스러워 병원에서 일하며 틈틈이 먹는 간식도 가능한 하지 않고, 점심이나 저녁도 가급적 배부르지 않게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잘 되지가 않는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예전보다 움직임이 적어서인지, 먹고 나면 너무 배부르고, 소화되는데도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래서, 내가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양에 반이 좀 넘으면 배가 부른데, 머리는 더 먹을 수 있다 생각해 더 먹고는 항상 후회한다. 

새로운 책 '세이노의 가르침'을 시작했다. 지독히도 가난했던 시절을 보낸 저자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공부하고 일을 해 경제적 부를 이루었다고 한다. 그의 젊은 시절 얘기를 들어보면, 배가 부르면 졸리고 집중이 안되니, 라면도 끓이지 않고 부셔서 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도 아까워 옆에 페트병을 두고 공부했다 한다. 그의 책 부제가 '피보다 진하게 살아라'이다. 그의 책은 현실비판에 대해 심하게 적나라해서 글을 읽으면서 삶이 얼마나 힘들었으면 이런 글을 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서늘한 기분이 들기도 한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나는 지독한 가난을 겪은 적은 없다-내가 이렇게 얘기하는 이유는, 세이노의 책이나 자청의 역행자를 보면, 어린 시절의 가난이 부를 이루는 촉진제가 된 것 같아 하는 말이다-. 그래서, 살면서 돈을 벌기 위해 기를 쓰고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었던 것 같다.  

친구들 중에 병원을 하면 정말 주 6일 이상 병원에만 몰두하여 돈을 버는 친구들이 있다. 물론 다른 친구들보다 더 잘 벌고, 스스로 집도 장만하며 부모님을 포함한 가족들을 부양하며 살고 있다. 본인 한 몸을 희생해 주변 전부를 돌본다는 생각이 든다. 전에 저자 너나위님의 '월급쟁이 부자로 은퇴하라'는 책을 보고-그는 대기업에 다니며 젊은 나이에 회사에서 밀려나는 선배를 보고 경제적인 자립을 개인적으로 찾아야겠다 생각하고 부동산 투자로 성공한 사람이다- 열심히 병원만 하고 있는 그 친구에게 넌지시 '너도 한번 읽어보면 좋을 책이 있는데'라고 운을 뗐더니, 본인은 책 읽기가 세상에서 제일 싫다며 내 말을 끊어버렸다. 


나는 요즘 들어 수의사라는 전문직이 기본적인 경제적 쿠션이 되어주는 대신 큰 부를 이루는 데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위 안전하다거나 경제적으로 우위에 있다고 생각되는 직군들- 의사, 변호사와 같은 전문직이나, 평생직장이라고 추앙받는 교사, 공기업 직원 혹은 상대적으로 큰 월급을 받는 대기업 직원-은 자신의 직장이 자신들을 책임져 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내가 2000년 초반에 서울에서 개업을 하기 전에 내가 선배들에게 들은 얘기는 '개업하면 먹고사는데 문제없다'였다. 하지만, 막상 개업을 하고 보니, 월세부담에 앞에 뒤에 옆에 건물하나 건너뛰면 있는 병원들 사이에서 마케팅이나 세일즈와 같은 개념도 없이 경쟁에서 살아남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내가 제일 실력 있는 수의사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실력이 눈으로 보이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2017년 병원을 다른 수의사에게 인계하고 나서 그동안 낸 월세를 계산해 보니 5억 정도 되는 것 같았다. 




지금 돌이켜보면 왜 나는 한 번도 나의 경제적인 미래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을까 의문이 든다. 아마도 첫 번째는 수의사라는 전문직이 정년퇴직이 있는 것도 아니고, 필요하다면 죽을 때까지 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컸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그렇지만, 젊고 능력 있는 새로운 후배들이 매년 나오는 상황에서 상대적으로 늙고 신기술에 뒤쳐지는 수의사를 좋아할 사람은 없다. 


그나마 나는 다행히 미국으로 올 수 있었서, 상대적으로 한국보다 경쟁이 덜하고, 나이 들어 일하기도 덜 눈치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하루에 볼 수 있는 케이스가 더 많아서 점점 내가 하는 일에 숙련도를 높이는 느낌이 든다. 한국에서 십 년 이상 일한 거보다, 미국에서 5년간 일해서 본 케이스가 더 많은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한국과 달리 미국은 수의사도 전문의 과정이 있어서, 내가 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경계가 더 분명하다. 어느 이상은 전문의가 담당하는 것이니,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만 최선을 다하면 된다. 

다만, 힘들다면 덩치가 큰 개들이 많다 보니, 체력적으로 힘들 때도 있다. 그래서, 일주일에 가능하면 주 5일 이상은 체력단련을 하려고 노력한다. 그러다 보니, 같이 일하는 테크니션 사이에서, '닥터리는 체격이 작은데 힘은 세다'라는 말을 듣기도 한다. 

미국이라는 나라 특성상 소송이 많다 보니, 수의사들 중에 조금이라도 위험성이 있는 수술이나 시술은 안 하려는 경향이 있다. 임상경험이 10년이 넘는데도, 아예 수술을 안하는 수의사들도 있다. 그래서, 한국에서 뒤늦게 와 핸디캡(?)이 있는 나는 닥치는 대로 하려고 한다. 가능하면 GP(general practitioner)가 할 수 있는 범위에서는 다 하려고 한다. 맨날 하던 일만 하거나, 리스크가 전혀 없는 일은 사실 재미가 없다. 나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스트레스를 받으면서도 일단 무조건 하고 본다는 것일 수 있다. 


나의 발전과 가능성을 위해 내가 지금 할 수 있는 건 책을 읽는 것과 글을 쓰는 것 밖에는 없다. 그런데, 명색이 '저는 책을 좋아했어요'라고 말을 했지만, 정규적으로 책을 읽지 않은 건 오래된 것 같다. 물론, 시간이 많이 나거나 눈에 띄는 책이 있으면 읽긴 하지만, 일주일에 한 권 혹은 한 달에 한 권처럼 정기적인 것은 아니었다. 특히나, 내가 좋아하는 류의 소설이 아닌 이상은 별로 읽어본 적도 없다. 그런데, 다시 시작한 책 읽기는 소설도 아니고 대부분 자기 계발서나 투자책이다. 이걸 읽는 건 정말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다시 책 읽기의 근력을 키우는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책 하나를 잡고 한 달을 끌기는 정말 쉬운 일이다. 일단 조금씩이라도 매일 읽기 시작하니 조금씩 진전이 생긴다. 다시 근육이 하나씩 발달하는 느낌이 든다. 

지금 사둔 책들을 끝내고 나면, 역사나 투자 혹은 심리학 서적을 읽어보려고 한다. 마케팅에 관한 책도 읽어보고 싶다. '역행자'를 쓴 저자는 본인이 어떤 일에 문제가 생기거나 걱정거리가 생기면 현재 문제와 완전히 다른 분야에 대한 책을 읽고 아이디어를 얻는다고 한다. 


다시 책을 읽기 시작해서 가장 큰 좋은 점은, 내가 알고 있는 좁은 세상을 벗어났다는 것이다. 누군가 나에게 엄청나게 공을 들여 이런 개념을 집어넣으려 했다고 한들 지금 내가 느끼는 감정을 만들 수는 없었을 것 같다. 나를 바꾸는 힘은 사실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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