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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Aug 21. 2023

비 오는 날의 이바구 저바구

어릴 때 집에 굴러다니던 '이바구 저바구'라는 책이 있었다. 언제부터 있었는지 누가 샀었는지도 모르지만, 가끔 집에서 할 일이 없을 때 읽던 책이었다. 그게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니 이미 삼십 년도 넘은 일인데 아직도 책내용을 기억하는 건, 내용이 재미있었기 때문이다. 그중 한 내용을 '똥 얘기'였다. '똥'에 관한 심오한(?) 고찰을 담고 있었는데, 과거 조선시대의 임금의 똥에 관한 내용은 특히나 감명 깊어 가끔 친구들에게 얘기한 기억도 있다.

과거에는 임금의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긴 터라 임금의 똥조차도 특별한 예를 갖추어 다루었다 한다. 임금이 변을 보는 항아리에 파리를 잡아 날개를 하나하나 떼어 수북이 쌓아놓아 그가 변을 보게 되면, 파리의 날개가 날아올라 살포시 똥을 덮는 것이다. 

암튼 이런 내용들이 들어 있었고 나는 틈나는 대로 그 내용에 감탄하며 읽었다. 그래서 그런지 어릴 때 나는 똥에 관한 얘기를 무척이나 좋아했고, 특히 밥 먹을 때 하다 어른들께 혼이 난적도 있다. 그 책의 똥에 대한 나름의 철학은 나를 무척이나 감동시킨 탓이 아닐까 생각한다. 가끔은 그 책이 보고 싶기도 했는데 오늘 문득 생각이나 검색해 보았더니 1970년에 발행한 책으로 수필 형식으로 발간된 책이라 한다. 

가끔 '이바구 저바구'라는 이름이 떠오를 때마다, 그리고 똥얘기가 생각날 때, 아주 오랜 시간이 흐른 관계로 기억이 희미해져 과연 그런 책이 진짜 있었던 건지 스스로 의구심이 생기기도 했는데, 다행히 실제로 존재하는 책이라는 것에 안도했다. 미국에서는 살 수 없으니 나중에 누군가에게 부탁을 해 보아야겠다. 


오늘은 아주 흔치 않게 하루종일 남부 캘리포니아에 비가 오는 날이다. 며칠 전부터 허리케인이 캘리포니아 쪽으로 몰려돈다며 사람들이 법석을 떨었다. 심지어 어제는 같이 일하는 직원 중 하나가 자기 오빠가 마트에 갔더니 생수가 동이 났다면, 혹시 우리 집에는 먹을 물이 있는지 혹은 음식이 충분한지 걱정을 해주기도 했다. 병원에 온 손님들은 혹시 태풍이 몰려와 천둥번개가 치면 강아지가 불안증이 심해질 수 있다면 진정제를 처방받기 원하기도 했다. 

전에 코로나가 창궐(?)하던 시절, 미국 사람들은 뜬금없이 휴지를 사재기하기 시작했다. 마트에 휴지가 동이 난 것이다. 장을 보고 온 남편은 여기 사람들은 재난이 닥치면 맨날 똥만 누는 거냐며 농담을 하기도 했다. 

문자로도 허리케인으로 인해 전기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는 재난 문자가 전송되기도 했다. 

그런데, 막상 온다는 허리케인은 하루종일 예쁘게 비가 오고 있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에 살면서 나름 큰 차이라 느끼는 부분 중 하나가 약물의 의존도이다. 물론 한국도 점점 바뀌어 가고 있는 듯 하지만, 아직은 주변에서 정신과 약물을 복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다 생각되는데, 미국에서는 같이 일하는 사람의 1/3 정도는 항우울증제와 같은 약을 복용하는 것 같다. 최근에 같이 일하게 된 한 이십 대의 직원이 거의 매일 상습적으로 지각을 해서 이제는 거의 해고위기에 처해 있는데, 겉으로 보기에는 밝고 명랑해서 많은 사람들이 좋아할 수밖에 없는 사람인데 항우울제를 두 가지나 복용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어떤 부분이 힘든 거냐 물었더니, 하루종일 너무 긴장이 되고 신경이 곤두서서 밤에도 잠을 자기 힘들고, 새벽 네시나 되어서야 잠을 잔다고 말했다. 그런 그 친구는 커피를 하루에 다섯 잔씩 마신다. 그래서 커피를 좀 줄여보는 건 어떻겠냐고 넌지시 얘기를 하긴 했지만, 어떻게든 약으로만 상황을 해결하는 자세를 계속 유지한다면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때론 우울하고, 스트레스를 받고 긴장을 한다. 사람으로 사람과 어울리며 삶을 이루는데 아마도 어쩔 수 없는 일일수밖에 없다. 적당한 긴장과 스트레스를 넘어 수면에 영향을 준다면 아마 어떠한 개입이 필요한 상황이 될 것이다. 그렇지만, 적당한 식이와 휴식 그리고 운동이 보충되지 않는다면, 약물만으로 조절될 수 있기는 힘들하고 생각된다. 여기서는 모든 곳을 차로 이동하기 때문에, 내가 눈곱만큼도 운동을 하려고 생각하지 않으면 정말 하루에 삼십 분조차 걸을 일이 없다. 한국에서는 대중교통도 많이 이용하고, 동네에서 걸어서 여기저기를 가는 일이 많아서 내가 굳이 운동이라 생각하지 않아도 최소한의 걷기는 보충이 된 것 같다. 가끔 버스를 잡기 위해 뛰기도 하고, 빨리 걷기도 해야 했으니까 말이다. 

그래서, 여기선 나름 조깅을 하거나 산책을 정기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눈에 띈다. 우리 강아지가 집에 온 이후로 아침 출근 전에 꼭 강아지와 산책을 하는데, 아침에 걷다 보면 항상 보이는 사람들만 보인다. 

최근에는 배가 점점 나오기 시작해서, 산책을 하루 두 번으로 늘렸다. 저녁 먹고 다시 강아지와 남편과 산책을 한다. 한국에는 거리에 사람들이 많지만, 여기는 한 시간을 걸어도 한두 사람 만나기도 힘들다. 


가끔 자기 계발서에 나오는 얘기들 중에 '하루를 이기며 시작한다'라는 얘기가 있다. 매일 허덕허덕 출근시간 직전에 일어나 부랴부랴 출근을 한다면, 하루종일 쫓기는 마음으로 하루를 시작하게 된다. 물론 나도 최근까지 그중 하나였던 듯하다. 그런데 본의 아니게 강아지를 입양하고, 아침에 똥오줌을 누이기도 해야 하고, 나름 일정한 운동도 시켜야 하니 아침 산책만 한 것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고등학교 때조차 7시 전에 일어난 적이 없었는데, 6시 삼십 분에 일어나 강아지 산책을 시킨다. 아침의 거리는 싸늘하지만 상쾌하다. 그리고 늘 해가 쨍쨍 나는 캘리포니아에서 아침만큼은 내가 좋아하는 안개가 끼어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삶의 주도권을 나에게로 오게 하는 아주 단순한 방법이 아닐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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