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아들이 내게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빠, 나 여자친구 생겼어.”
순간 귀를 의심했다. 아직 겨우 초등학교 3학년,
열 살밖에 안 된 아이가 벌써 연애라니.
장난삼아 하는 말이겠지 싶어 웃어넘기려다가,
아들의 얼굴이 진지하다는 걸 깨달았다.
순간 마음속에서 무언가가 울컥 올라왔다.
나도 어린 시절에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막연한 동경이었고,
제대로 이름 붙일 수도 없는 감정이었다.
그런데 내 아들은 당당히 "여자친구"라는 단어를 꺼내놓았다. 그 한마디가 아이를
더 이상 애기로만 볼 수 없게 만들었다.
아직 손을 꼭 잡고 길을 걸어도 어색하지 않은 아들이, 이제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내어주고 있다니.
순간
'아, 이 아이가 정말 자라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여전히 일요일마다 목욕탕을 다니고
시간이 날때아다 숙제를 봐주며 아이를 돌보고 있는데, 정작 아들은 나보다 한 발 앞서
세상을 경험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돌아보면, 나 열 살 때는 참 서툴고 순진했다.
이성에 대해 알듯 말듯하면서도, 그저 공터에서 친구들과 뛰노는 게 세상의 전부였다.
그런데 아들은 내 나이 때보다 훨씬 솔직하고,
훨씬 당당하다.
아마도 세상이 달라진 탓일까, 아니면 내가 아들의 마음을 너무 아이로만 가둬두었던 걸까.
한편으로는 조금 서운하기도 했다.
아빠보다 먼저 비밀을 나누는 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이. 하지만 곧 미소가 번졌다. 내가 준 사랑과 보살핌 속에서 아들이 누군가에게 따뜻한 마음을 내어줄 만큼 자라났다는 게 고맙고 대견했다.
아들의 첫사랑은, 어쩌면 오래 가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마음이 진심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충분하다. 나는 그 순간을 기억해주고 싶다.
아이의 인생에서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설렘을 느낀 그때를.
그리고 나 역시 배운다.
부모가 아이를 키운다고 생각했는데,
사실은 아이가 부모를 성장시킨다는 것을.
아들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아빠로서 또 한 발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