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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Jan 30. 2022

당신의 동굴은?

나는 국어국문과를 졸업하고 학생들에게 국어를 가르치는 일을 계속해왔다. 어느 날 미국 중학교에 다니는 딸아이가 학교에서 소설의 구성 단계를 배운다는 얘기를 꺼내길래 “이건 엄마가 또 선수지. 종이하고 연필 가져와봐.”하며 이에 대해 신나게 설명을 해줬다. 중등교육을 받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공식처럼 쏟아져 나오는 “소설의 3요소 – 주구문(주제, 구성, 문체)”, “구성의 3요소 – 인사배(인물, 사건 배경)”, “구성의 5단계 – 발전위절결(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 이러면서 도표를 그리려는 순간 딸아이가 의아해하는 표정을 짓더니 그게 아니란다. 학교에서 배운 것과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이야 딸아이가 이런 말을 하면 “그래? 다른가보네.” 이렇게 받아들일 테지만 그때는 “그럴 리가 있나. 어차피 이론이라는 게 대부분 서구에서 들여온 거라 똑같은 건데. 다를 수가 없지. 엄마가 커뮤니티 칼리지(Community Colleage)에서 영어 수업 받아보니 이론은 다 똑같던데.” 그러면서 의견을 굽히지 않았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책 가져와봐 누가 맞는지 확인해보게!” 100% 맞는다는 확신에 넘쳐 딸에게 엄마가 맞다는 걸 보여줄 준비를 하고 말이다. 그런데 웬걸! 딸아이가 가져온 자료에는 정말 소설의 구성 단계가 ‘발단- 전개- 절정- 하강- 결말’ 이 순서로 피라미드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 뒤로 아이 학교에서 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아이의 의견을 더 많이 존중하게 되었다. 내가 미국 교육을 받지 못했기에 정보가 부족하다는 걸 인정하고 행여 정보를 가지고 있더라도 그것이 틀릴 수도 있는 것임을 인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기준이 표준이라고 쉽게 믿는다. 이를 ‘소박한 실재론(naive realism)이라고도 하는데 자신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 정확히 바라본다고 여기고 여기에는 그 어떤 왜곡도 없다고 믿는다. 그래서 본인의 기준과 의견이 일반적이고 보편타당하다며 자신과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배타적은 태도를 취한다. 자신의 기준에 맞아야 선(善)이고 진리가 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역사를 통해 학습한 바와 같이 기준이라는 것은 시대별로 달라지기도 한다. 한때는 신이 만든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기 때문에 모든 행성들이 지구를 중심으로 돈다는 천동설이 여겨졌던 시대가 있었다. 그때는 지동설을 주장하면 감옥에 가야하기도 하고 심지어 목숨을 잃기까지 했었다. 지동설이 맞다는 걸 알면서도 차마 입밖에 내뱉지 못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나 지금 천동설을 주장하는 사람은 없다. 정신분석학의 창시자 프로이트는 리비도(Libido) 즉, 인간의 성욕, 성충동 같은 내용을 새롭게 발표를 했다가 세상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척당했다. 이로 인해 프로이트는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20세기를 열었다고 평가를 받고 있다. 그뿐인가? 세계 4대 성인 중 하나인 소크라테스는 당대 아테네 시민들에 의해 고소를 당하고 사형에 처해졌다. 


이러한 인간의 습성을 간파했던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동굴 안의 한 무리의 죄수들이 있고 모두 동굴 벽만 쳐다보도록 묶여 있다. 그 뒤로는 불이 피어 있고 그들이 볼 수 있는 것이라곤 벽에 비친 그림자뿐이다. 그런데 그들은 그림자를 진짜라고 우긴다. 이는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우연히 쇠사슬을 끊고 밖에 있는 진짜 세상을 만나게 된다. 그제서야 그는 자신이 경험했던 세상은 진짜가 아니라 한낱 그림자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이러한 진실을 알게 된 죄수는 다시 동굴로 돌아간다. 그리고 동굴 안에 있는 친구들에게 사실은 우리가 직접 경험한 이 세계는 가짜라고 말한다. 진짜 세상은 동굴 밖에 존재하고 있다고 그곳으로 나아가야한다고.. 그런데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거짓을 말하는 이상한 사람 취급하고 그에게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심지어 죽이려고까지 할 것이다.


이는 매 시대 진보와 혁신 변화 앞에 놓인 인류의 모습을 단면적으로 보여주는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우리는 역사를 통해 숱하게 학습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다음 세상을 포문을 여는 사람들을 일제히 죄수처럼 대하기도 한다. 자신이 경험하지 못했다고 혹은 알지 못하는 일이라고 해서 그것이 ’거짓‘이라고 간주할 수도 없고 ’틀렸다‘고 단정지어서도 안되는데... 이러한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아는 것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듯 내가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만의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을 한다면 어떨까? 그렇게 열린 마음과 태도로 세상에 서서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다원적인 시각과 좀 더 깊이 있는 통찰력을 갖춰야 진실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고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간다면 갈등과 마찰은 줄이고 좀 더 발전된 미래로 보다 쉽게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편협한 생각에서 벗어나 더 많은 경험을 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인식의 틀을 넓혀야 하는 이유다. 


*생각해볼문제   

의식적으로 깨어있는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 쓰시오.


내가 갇혀 있는 동굴은 무엇일지 생각해보고 그 동굴 밖에는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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