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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Feb 01. 2022

한 명을 위해 싸우는 것? 모두를 위해 싸우는 것!

영화 ‘세인트 주디’는 미국 이민 변호사인 주디 우드(Judith L Wood)의 실화를 기반을 한 작품인데 주디가 미국 정부로부터 망명 거부를 당해 수감 생활을 하고 있는 한 여성을 변론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그려냈다. 아프가니스탄 여성 ‘아세파 아슈와리’는 90년대 초 탈레반에 의해 모진 구타를 당하게 된다. 그녀가 어린 소녀들에게 교육을 했다는 이유 때문이다. 어쩌면 이럴 수 있나 싶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느 한 곳에서는 우리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여성의 인권이 처참한 상태로 유지되는 그런 곳들이 있다는 건 현실이다. 그저 여자로, 본의의 의사와 상관없이 그런 지역과 공간에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그런 처지에 놓여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열악한 환경을 벗어나기 위해 그녀는 미국으로 건너가 망명 신청을 한다. 그러나 문제는 미국 정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망명의 기준에 ‘정치, 종교, 인종, 국적, 특장 사회 집단’ 이들 중 ‘여성’에 관한 것은 없다는 이유였다. 결국 그녀는 수감생활을 하게 된다. 주디는 아세파가 명예살인이 자행되고 있는 본국으로 추방당할 경우 그녀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뿐이라고 판단하고 그야말로 ‘인권의 존엄성’을 위한 기나긴 싸움을 시작한다.  


이 싸움의 과정 중에서 주디 아들이 학교에서 누명을 쓴 사건이 발생한다. 어쩌다 보니 아들은 해당 사건의 가해자가 되어 있었고 주디는 이에 대해 학교 교장에게 항의를 하러 간다. 그리고 학교가 보호해 줘야 할 무고한 학생을 오히려 가해자로 만드는데 동조를 한 것에 관해 일침을 날린다. 그렇게 교장실에서 나온 주디는 아들한테 누명을 받을 때까지 일을 내버려 뒀느냐 이유를 묻는다. 그러자 아들이 속상해하면서 “제 말을 아무도 믿어주지 않았어요.”라고 울먹인다. 이에 주디는 아들을 위로해주기는커녕 그를 붙잡고 단호한 눈빛으로 “이런 결과로 귀결된 건 네가 도중에 단념해버렸기 때문이야.”라고 말한다. 우리가 부당함에 맞서고 있을 때 필요한 것은 입속의 혀 같은 부드러운 위로와 이해의 말이 아닐지 모른다. 불의가 만연된 사회 속에서 약자들이 자기 목소리를 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하는 것이 더 실질적일 테니 말이다. 모든 부당함에 눈을 감고 입을 다물면 상황이 나아지리라 믿을 수도 있다. ‘나만 참으면 모든 것이 괜찮을 거야. 어차피 시간은 흘러가게 되어 있어.’하는 순간 인생과 나를 둘러싼 우리 사회는 퇴보한다. 인권을 억압하는 나쁜 사회가 힘을 얻는다면 나 혼자만의 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 사회 구성원의 인권과 존엄성이 함께 위협받는다. 따라서 약자들의 목소리를 키우는데 힘과 지혜를 모으는 것은 사회 정의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다. “어쩔 수 없다.”라고 뿌리 깊은 차별과 억압의 문화를 내버려 두고 그 사회 속에서 여성을 하찮고 보잘것없는 존재로 취급한다면 그 사회는 모두가 존엄한 건강한 사회가 이미 아닌 것이다. ‘어쩔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다고 믿는 사람 그 자신뿐이다.


주디는 몇 천 건 이상의 이민 사건을 처리하는 변호사인데 영화는 아세파 사건 하나만을 끈질기게 다룬다. 주디가 다룬 많은 사건들을 처리해나가며 빠른 진행으로 영화를 끌고 나갈 수도 있을 법하다고 생각했는데, 그러지 않았다. 그야말로 중요하고 강력한 주제를 다루고 있으면서도 약한 전개라는 아쉬움을 남긴 채 말이다. 그런데 나는 나중에 영화 포스터를 보고서 그 이유를 깨닫게 됐다. “하나를 위해 싸우는 것이 모두를 위해 싸우는 것이다. -The fight for one is a fight for all.-” 


이를 보다 못한 변호사 사무소장은 그녀에게 “당신이 이런다고 해서 세상이 바뀌지는 않아.”라는 뼈 때리는 조언을 해준다. 이에 주디는 주저하지 않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나도 안다. 내가 이런다고 세상이 변하지 않다는 걸. 그렇지만 노력할 수는 있는 거다.” 그녀의 브레이크 없는 이 노력이 폭력적 상황 속에서 여성을 침묵하게 만든 이슬람법과 싸워 이겨낸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부서진 영혼의 아세파를 위해 자신이 싸우고 있다는 주디의 말처럼 9번의 항소를 거듭하며 끝까지 싸웠고 결국 이 소송을 승리를 이끌어낸다. 그리고 아세파는 미국 정부로부터 망명을 허가받고 미국에서 교사가 된다. 그야말로 ‘망명’이 곧 ‘기여’로 이어진 것이다. 


도종환 시인의 ‘담쟁이’란 시에서처럼 모두가 어쩔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 담쟁이는 말없이 그 벽을 오르고 나아가 결국 그 벽을 넘는 것처럼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포기하지 나아간다. 미국의 윌슨 대통령은 ‘정의’가 ‘평화’보다 중요하다고 말한 바 있다. ‘정의’로 나아가는 싸움은 행복한 것일 수 있다. 좌절과 절망으로 가득한 현실을 눈부시게 아름다운 풍경화로 바꿔가는 과정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것을 보면서 1979년 10. 26 사태인 대통령 시해 사건을 행한 김재규(1926~1980)를 변론했었던 인권 변호사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서 야수의 심정으로 유신의 심장을 쐈다는 김재규에 대한 군사재판이 진행되고 있을 때 이돈명 변호사를 비롯한 이른바 1세대 인권 변호사들은 김재규 구명에 투정처럼 나서서 꼭 김재규를 살려야 한다고 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 그 당시로서는 박정희 전두환의 모든 음모가 밝혀질 유일한 길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그렇지만 이 소송의 결말은 해피 엔딩이 아니었다. 그렇지만 인생이 꼭 해피엔딩이어야만 할까? 중요한 건 이야기 그 자체인데... 유신의 서슬이 시퍼렇던 시절 민주주의를 되돌려 놓기 위해 10. 26 혁명을 행했다는 김재규의 말은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였다. 그런데 현실은 영화와 달리 결과가 참혹할 수 있다. 한국의 민주주의를 20~30년 앞당기기 위한 유신의 핵심을 제거했지만 그 뒤를 유신의 나부랭이가 이어갈지 누가 알았단 말인가? 박정희가 국군병원으로 옮겨지고 이 사실을 가장 먼저 전두환이 알게 되면서 군대를 동원, 국회와 사법부를 무력화시키고 무고한 광주 시민들을 죽이면서 신군부 정권을 세워버린 것이다.  


우리는 만화영화 속에 나오는 영웅들처럼 세상을 구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누구나 노력은 해볼 수는 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데 힘을 보탤 수는 있다. 세상이 한꺼번에 격변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씩 진일보하는 역사를 더 많이 가지고 있다. 독립운동가 윤봉길 의사 역시 거사를 행하기 전에 “나도 알고 있다. 내가 일본 장교 몇 명 죽인다고 해서 독립이 될 수 없다는 것을.. 나는 한국인의 독립의지를 전 세계에 알리기 위해 나의 목숨을 바친다.”라고 했다. 이는 그의 말처럼 그의 의거가 독립을 가져온 것은 아니었지만 독립으로 나아가는데 힘을 보태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의 희생이 중국 장제스를 움직였기 때문이다. 장제스는 윤봉길을 두고 “중국의 30만 대군도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의 한 청년이 해냈다.”며 한국 독립군을 시작한 것이다. 이로써 임시정부는 독립운동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하게 된다. 중국 육군 중앙군 학교에 한인 특별반을 설치하는 등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을 적극 지원했다. 이것이 사회 정의를 구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우리 사회에 그리고 시대에 필요한 이유인 것이다. 세상을 바꾸는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다.


“비명을 질러라. 그러면 백 년 뒤 어느 날에는 다른 여성이 역사 속에서 ‘언제 내가 목소리를 잃었나’ 생각하며 눈물을 닦을 필요가 없게 될 것이다.” 재스민 코르의 말이다. 의지를 갖고 싸움을 계속해 나가면 더 이상 말도 안 되는 이유로 부당한 대우를 받는 세상의 시간을 끝낼 수 있다. 그런 여정 속에 우리의 노력이 있었다면 그것으로도 이미 충분한 것이리라. 그 자체로 어둠 속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싸움은 한 것이고 길이 끝나는 곳에서도 길이 되는 사람이 된 것일 테니까. 


*생각해볼 문제   

한 명을 위해 싸우는 것이 곧 모두를 위해 싸우는 게 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불가능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을 바꿔놓는 사람들을 볼 때 어떤 생각이 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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