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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Feb 06. 2022

사람잡는 확증편향

수단의 굶주린 소녀

 남아공 출신의 사진 기자 케빈 카터는 흔히 중산층 이상의 백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자랐기 때문에 ‘가난’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다. 그런 그가 찍은 <수단의 굶주린 소녀>는 마치 썩은 고기를 갈망하는 포식자의 모습을 한 독수리가 아사 직전의 아이를 바라보고 있다. 제3세계의 기근 참상을 한 장의 사진으로 함축해놓은 이 사진은 곧 전 세계로 퍼져 나갔다. 그 결과 수단 문제에 대한 국제적 관심과 여론을 불러 일으켰다. 그리고 이 아프리카 고뇌의 아이콘이 된 사진은 퓰리처상을 거머쥐게 된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사람들은 아이에 대한 안부를 묻는 편지를 쓰고 사진의 판권자인 뉴욕타임즈에 전화를 걸어댔다. 그리고 사람들은 굶주린 아이를 구해줄 생각은 안 하고 사진부터 찍었다고 카터를 맹비난하기 시작했다.  “생명 보다 상이 먼저냐?”, “인간성 대신 명성을 택했다.”며 그의 도덕성을 문제 삼은 것이다. 그리고 그는 자살로 생을 마감한다.


이것이 널리 알려진 <수단의 굶주린 소녀> 사진에 얽힌 이야기다. 그런데 사실 알려진 바와 달리 카터는 생활고에 시달렸다. ‘가난’을 모르고 자라 ‘가난’에 대한 연민이 없다는 세상의 오해와는 정 반대다. 이는 그가 죽기 직전에 남긴 유서에서도 확인할 수가 있다. 집세, 자녀 양육을 위한 돈, 빚을 갚을 돈에 대한 압박이 있었다는 것이 내용이 여실이 드러난다. 그가 기근에 시달리는 수단에서 반군 운동을 촬영하기 위해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도 항공료를 빌린 돈으로 지불했다고 하니 ‘가난’에 대한 몰이해로 작품을 남겼던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수단 지역의 생지옥과도 같은 참혹함 속에서 셔터를 누르기 시작한 그는 아요드(Ayod)지역의 식량 배급소로 향하다가 길 위에 엎드린 소녀를 발견한다. 그리고 독수리가 시야안에 들어오자 그걸 카메라 안에 함께 담은 것이다. 사진을 촬영하고 난 뒤 카터는 독수리를 쫓아냈다고 한다. 다만 그녀에게 적극적인 도움은 주지는 못했다. 당시 아프리카는 전염병의 확산을 막기 위해 난민촌에 와 있는 외국인들에게 난민과의 신체 접촉을 엄격히 금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외국인 포토저널리스트들 또한 기근 희생자들을 만지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소녀를 돕지 못한 것에 대해 종종 유감을 표시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실제 이 아이는 소녀가 아니라 소년이었다. 유엔 식량 지원소에서 보살핌을 받았으며 가족에 따르면 2007년에 열병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이 사진을 찍었던 것은 1993년이었다. 


누군가 폭격과 방화로 얼룩진 전쟁터에 뛰어들어 그 기록을 남기고자 한다면 우리는 이를 알리고자 하는 그의 의지를 읽어내야 한다. 인류의 역사가 그러했듯 자구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반인륜적인 참상을 해결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를 모두에게 폭로하는 것이다. 지옥과 같은 참상도 전 세계가 알게 되면 더 이상 혼자가 아닌 게 되니까. 정말 카터가 묵도했던 수단은 지옥을 방불케 했다. 총알이 쏟아지고 죽음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내전은 수백만 명의 민간인 희생을 낳았다. 그 뿐만이 아니라 기근, 풍토병, 의료시설 부족 등으로 사람들은 죽어나가고 군인들을 마을을 습격 살인, 식량 약탈 등의 잔혹한 만행을 저질렀다. 굶어죽는 아이들을 마주하는 것은 일상이었고 난민촌을 떠도는 헤매는 아이들의 대부분은 부모가 죽어 고아가 된 아이들이 많았다. 소설 <아프리카 수단 소년의 꿈>을 보면 주인공 스티븐이 소년병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도망쳤다가 다시 마을로 돌아오는 장면이 나온다. 이미 마을은 폐허가 되어 있고 가까스로 찾아간 집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들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상황에서 스티븐은 ‘혹시 엄마가 큰 부상을 입고 살아있으면 어떡하지?’ 걱정이 엄마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우선한다. 이 대목을 읽으면서 가슴 아프게 이해했던 것이 있다. 아프리카 아이들은 심지어 부모가 죽어도 울지 않는다고 한다는 말이었다.   


카터의 자살은 사진으로 인해 받았던 비난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가 아프리카에서 지켜봤던 모든 불행이 트라우마가 되어 그의 삶을 아프게 했다. 아이들이 기근에 허덕이고 있는 것뿐만이 아니라 그는 사람이 죽는 현장을 찍었고 취재 현장에서 동료가 죽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 남아프리카에서 공개 처형을 당하는 사람, 선거 전에 백인 우익 자경단의 보푸타츠와나 침공에 실패한 사람들이 총에 맞아 죽는 모습 이 모든 현장이 그의 사진에 고스란히 담여 있다. 이런 악몽 같은 현실을 얼굴을 돌려 외면하지 못하고 사진으로 저장을 해둬야 하는 일을 했던 그로서는 고통의 딜레마를 겪었을 것이다. 더욱이 폭력사태 현장을 담기 위해 함께 나섰던 동료 켄 오스터브의 죽음은 것은 그에게 큰 충격이었을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그는 자신이 총알을 맞았어야 했다며 괴로워했다. 이는 카터가 퓰리처상을 수상한 지 6일 뒤의 일이었다. 


“살인과 시체, 분노와 고통, 굶주리거나 다친 아이들, 방아쇠를 당기는 정신 나간 사람, 종종 경찰, 살인자, 처형자들에 대한 생생한 기억에 사로 잡혀 있다.” 카터가 마지막 남긴 말이다. 카터가 경험한 모든 것들은 그의 삶을 기쁨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고통스럽게 만들어버렸다. 이런 것들을 종합해 봤을 때 그가 단지 죽어가는 수단 소녀를 돕지 않았다는 비난 하나 때문에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은 아닌듯하다. 하지만 여전히 <수단의 굶주린 소녀>에 대한 내용을 검색하면 굶주림으로 생사의 갈림길에 놓인 소녀를 도와주지 않고 사진에 담은 작가가 사람들의 비난에 못 견뎌 자살했다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호도된 사실을 제대로 되돌리기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삼인성호(三人成虎)란 말이 있다. 사람 셋이 모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들어 낼 수 있다는 뜻이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대로 믿는 이러한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에 대해서는 우리가 반성적으로 되돌아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정말 이걸로 사람 여럿 잡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고 그에게 무차별 탄압을 행하는 ‘마녀사냥’과 같은 현상은 카터에게만 일어난 특수한 것이 아니다.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빈약한 팩트 혹은 부실한 증거를 들이대며 자제력을 잃고 특정 대상을 응징하는 집단 히스테리는 어느 시대나 있어왔다. ‘유색인종’, ‘성소수자’, ‘이민자’, ‘여성’, ‘무슬림’, ‘공산주의자’, ‘유대인’ 등 혐오 대상을 찾아 너무도 쉽게 마녀로 만들어 버리는 나치의 ‘우생학’, 미국의 ‘매카시즘’ ‘KKK’처럼 말이다. 사려 깊지 못한 가벼운 자들에게서 나오는 비난과 혐오는 언제든 비극적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선을 넘은 다수의 행동이 ‘가해’가 되고 이것이 인격살인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특히나 인터넷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누구든 집단의 무차별 공격을 받을 수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일들을 얼렁뚱땅 넘어가서는 안 된다. 이로 인한 피해자는 늘 존재하는데 이에 대해 제대로 된 사과를 하거나 책임을 지는 사람이 없다면 이 또한 피해자에게는 2차 피해로 남는 것이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말과 행동으로 비롯된 것들에 책임을 져야한다는 인식과 제도의 강의 필요성이 대두될 필요가 있다. 현대판 마녀사냥에 있어 속수무책하지 않는 현재를 구현해내기 위해서 말이다. 


*생각해볼 문제   

‘마녀사냥’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이러한 일들이 벌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요한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생각해보자. 


사려 깊지 못한 자들의 가벼운 입에서 나오는 비난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생각해보자.


카터는 <수단 굶주린 소녀> 사진을 찍었어야 했는가 말았어야 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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