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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Mar 07. 2022

나의 가문은 나로부터 시작된다!

유럽, 아프리카 아시아를 잇는 대제국을 건설한 대왕, 알렉산더가 자기 앞에 햇빛을 가린다며 비켜달라고 했던 철학자 디오게네스! 우리는 그를 당당함의 끝판왕이라고 부른다. 자신의 지혜와 현명함을 알아보고 삼고초려하러 온 왕이 “나를 돕는다면 당신이 원하는 건 뭐든지 해줄 수 있다.”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감사의 마음을 담아 머리를 조아리며 왕의 제안을 받아들일 것이다. 그런데 디오게네스는 이를 권위와 권력이 잔뜩 묻어 있는 말로 만들어버리고 그 위에 ‘아니, 당신은 그럴 수 없어.’라는 말로 군림해버린다. 그야말로 왕의 권력이 한순간 무색하도록 만들어버리는 당당함을 가지고 있던 것이다. 


권위에 저항하는 디오게네스의 철학이 담긴 일화가 하나 더 전해져 내려온다. 하루는 알렉산더가 길을 가다가 한 남자가 뼈더미 속에서 뼈들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이상한 장면을 목격을 한다. 이에 지금 뭐하고 있는 거냐고 묻자 그자는 “나는 당신의 아버지의 뼈를 찾고 있다. 그런데 노예의 뼈와 구별할 수가 없기에 찾을 방도가 없다.”고 답한다. 이 철학자가 바로 디오게네스였던 것이다. 하늘과 땅의 차이만큼이나 컸던 당대의 왕과 노예 신분격차를 이렇게 겸연쩍게 만들어 버린 디오게네스에게 알렉산더는 꽤나 매료가 되었던 것 같다. 그 시절 그리스 최고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에게 수학한 왕가의 자손인 알렉산더가 왕위에 오르자 처음으로 찾아갔던 사람은 다름 아닌 디오게네스였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이러한 행보는 노예제를 자연스러운 것이라며 옹호했던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전복 시켜 놓는다. 페르시아 정복 전쟁에서 다리우스왕이 가족을 버리고 도망쳤을 때 알렉산더는 그들을 포로나 노예로 만들지 않고 왕족으로서의 특권을 그대로 유지시켜준다. 뿐만 아니라 그가 정복한 지역의 제도와 문화, 종교를 존중해주고 그들의 왕으로 인정받기 위한 노력들을 행한다. 제국주의 야만적 식민지 정복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는 정복 후에서 무리하게 세금을 거둬드리지 않고 조세법을 원래대로 유지하고 부정부패한 관리를 척결해 지역 국민들의 신의를 얻는 지도자로서의 면모를 보였다. 그렇게 그는 그리스와 오리엔탈 문화를 융합하는 헬레니즘 시대를 연다. 서로 다른 문화가 한 데 섞이면서 연합할 때 나오는 시너지를 인류 역사상에 끌어들인 건 알렉산더의 업적 중에서도 제 일의 업적으로 꼽아도 될 만큼 엄청난 것이었다. 알렉산더 사후 그리스 조각의 영향을 받아 인도에 등장한 ‘간다라 미술’이 불국사 석굴암의 본존불상에도 영향을 준 것을 보면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던 것이다. 또한 알렉산더 시대에 그리스어가 세계 공용어로 통용되면서 아르키메데스의 수학, 제논의 스토이즘, 유클리드의 기하학 등 다양한 학문이 발달하면서 인류의 문화는 팽창해 버렸다. 


노예제가 당연시 여겨졌던 시절에도 이토록 평등적인 사고관을 가지고 있었던 이들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신분제가 폐지된 오늘날에도 집안에 대한 차별적 인식이 남아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자신의 집안 배경을 등에 업고 다른 사람들을 하대하는 ‘갑질’문화가 여전히 사회의 물의를 일으키고 있으니 말이다. 사회적 지위 혹은 경제적 우위 등으로 타인에게 횡포를 부리는 것을 두고 자신만의 특혜인양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류의 사람들을 볼 때마다 떠오르는 탈무드에 나오는 여우 이야기가 떠오른다. 하루는 가문 좋은 집 여우가 천한 집안 태생의 여우를 만나 두 집안을 비교하며 천한 집안의 여우를 무시하자, 천한 집안의 여우가 “네 집안은 너로 끝날 테지만 우리 집안은 나로부터 시작될 것이다.”말했다는 이야기다. 자신에게 주어진 환경을 곧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인식해버리고 이를 권력으로 사용하는 것을 졸렬함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이 통쾌함! 이 반전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나를 둘러싼 주위의 환경은 나의 선택이 아닌 그저 주어진 것일 수도 있다. 그런데 이 주어진 환경이 곧 나를 대의하는 것은 아니다. 주어진 것들 속에서 최선을 다해 인생을 살아내고 그로부터 행복을 만들어가는 삶을 사느냐 마느냐가 나를 말해주는 것이지 이를 나로 인식하고 이 틀이 나의 정체성을 잠식하게 만드는 그런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다.


“조상 중에 노예가 없었던 왕은 없고 조상 중에 노예가 없었던 왕도 없다.” 헬렌 켈러의 말이다. 가문과 집안을 가지고 으스대는 것이 얼마나 무의미한 일인지를 이보다 더 극명하게 드러내주는 말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평등적이다. 이런 마인드를 가지고 있었던 헬렌 켈러는 장애를 극복하고 정신적으로나 지적으로 눈부신 성장을 그녀의 삶의 과정을 통해 보여주며 보통사람들도 힘들어한다는 래드클리프 대학을 졸업하고 여성인권과 장애인을 위한 사회운동을 해나갔다. 그리고 우리를 향한 차별적 대우에 관하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절대로 고개 떨구지 마라. 고개를 치켜들고 세상을 정면으로 바라보라.” 당당함은 자신을 세상 속에 세우는 가장 단단함 힘이 되어줄 것이다.


*생각해볼 문제   

당당함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2. 집안과 가문 등 배경에 대한 평등적 사고는 나에게 어떤 이점을 가져다 줄지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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