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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19. 2023

다시 새롭게 시작

내가 가진 가능성. 나를 필요로 하는 일자리. 자기 분석이 쉽다고 생각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까지 답을 질질 끌고 있어야 할 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불현듯 화가 났다. 

‘지금 도대체 이 꼴이 뭐람? 나는 이렇게 분수도 모르고 가볍고 마는 존재인가?’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집 앞에 나가 벼룩시장 한 부를 빼왔다. 구인광고를 찾아보며 소일거리라도 찾아 해야 했다. 뒤적뒤적 거렸다. 그리고 내 눈길이 반사적으로 머문 공간은 학원 강사 구인란이였다. 회사보다 취업이 나름 쉽고, 월급이 웬만한 회사보다 높은 그 일!

‘아, 내가 왜 이 생각을 못했지?’

문제집 집필하면서 같이 일하는 선생님들은 서로의 학원에 대한 정보와 이야기들을 나눴고 그런 와중에 나는 학원 강사를 해야겠단 생각에 미처 이르지 못했었다. 업은 아이를 삼 년 찾았다.  


그리고 보면 나도 대학 신입생 시절 야학 봉사를 하기도 했다. 맞다. 나는 한 때 선생님이었다. 나는 그랬지만 내가 가르치는 학생들을 나를 선생님이라고 생각지 않았다. 그저 떡볶이 사주는 동네 언니 정도로 취급했다. 그렇다. 그들은 수업을 하러 온다기 보다는 수업 끝나고 내가 사주는 떡볶이를 먹으러 오는 것 같았다. 하루는 떡볶이를 먹고난 아이들이 나한테 오백원짜리 소프트 아이스크림을 후식으로 사달라고 했는데 나는 안 된다고 말했다. 지금 사주면 앞으로 떡볶이를 먹는 순간 아이스크림은 코스처럼 달라 붙을 테니 그럴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성당으로 되돌아오는 길이었다. 아이들은 지나가는 두 명의 젊은 경찰 아저씨를 붙들어 세우더니,

“우리 선생님 오백 원에 사가세요.”고 했다. 

당황한 경찰 아저씨들은 웃었다. 그리고

“정말 오백원이면 살 수 있니?”했다.

아이들은 일제히

“네~~ 더 싸게 드릴 수도 있어요.”

나는 그때 아이들과 함께 웃을 수 없었다. 동심이 없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은 감동도 없다 생각했다. 아이들은 나의 순수한 마음에 상처를 냈다. 하루는 한 여학생이 가방에서 비비총을 꺼내더니 같은 교실에 있던 한 남학생의 아랫도리 부근을 겨냥하며 

“빵야 빵야! 너 이 자식 고자로 만들어 버릴 테다.” 

이러면서 위협을 하기도 했다. 남자 아이는 기겁을 하고 교실을 돌며 도망쳤고 나는 아이들을 말리느라 진땀을 흘렸다. 아이들은 내 말은 무시하고 교실 속을 무법지대로 만들었다. 내 깜냥으로는 감당이 안 되는 아이들이라는 걸 시작부터 알았지만 나는 그냥 묵묵히 일 년을 일했다. 지금은 그 때 고자 운운하며 남학생을 쫓아갔던 여학생을 떠올리면 웃음이 나오지만 당시 나는 야학이 있는 월요일이면 아침부터 눈 뜨기가 싫었고, 수업이 끝나면 머리를 감으면 탈모가 올 거 같아 머리도 감지 않았다.  


구인란에 서너 군데 동그라미를 하고 표시를 해놓은 학원에 전화를 했다. 되도록 집하고 가까운 곳을 골랐다. 강남이 아닌 지역은 가볍게 넘겼다. 그렇게 학원과 면접 날짜를 잡고, 해당 날짜에 면접을 보러 갔다. 


이력서를 훑어보던 원장은 출판사 작업에 지대한 관심을 보였다. 어떻게 책을 쓰게 됐냐면서 그 과정에 대해 알고 싶어 하는 의도가 역력히 느껴졌다. 하긴 그도 그럴 게 이쪽 일에 전혀 연고도 없이 집필을 하게 되었으니, 궁금할 법했다. 


시범 강의를 해보라는 원장 앞에서 외우다시피한 내용들을 술술 읊었다. 그러자 원장의 표정이 싹 달라졌다. 문제집을 쓰는 일이 이런 마법 같은 일을 해내리라곤 나조차 생각을 못했었다. 학교 문제들을 모아, 보고 또 보고 그렇게 기출 문제를 만드는 중에 나는 교과서가 그대로 머릿속에 저장되었던 것이다. 

‘이 정도면 합격?’ 

자만에 차 있던 나에게 원장은 아까보다 더 정중한 존댓말로 

“선생님 이 정도 이력이면 대치동에서 일을 시작하시는 것이 좋을 듯합니다.”며

나를 반려했다. 괴상한 일이었다. 학원경력이라고 쥐꼬리만큼도 없는 나를 이렇게 격상시켜줄만한 원장 만나는 건 쉽지가 않을 테고 제시한 월급도 나쁘진 않아서 같이 일하자고 하면 나는 그러려고 했다. 다른 학원을 찾아가 시강을 하는 일도 귀찮고 해서 바로 출근하겠다고 말하려 했던 나는 무안해졌다. 원장은 경력도 없는 나에게 베테랑급 강사가 우리 학원에 와줘서 고맙다고 했지만 장작 나에게 일은 주지 않았다. 나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렇게 학원 문을 나서게 되었다. 


그렇게 나는 본의 아니게 대치동에 있는 대형 프렌차이즈 학원에 문을 두드리게 되었다. 오전 시간 학원을 오픈하기 이전에 가서 원장 얼굴은 보지도 못했다. 부장 선생님이라는 한 남자가 나타나 시강을 보고 학원 업무에 대해서 이것저것 알려주었다. 굉장히 사무적이었다. 보통 전임 강사한테 인수인계를 받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런 건 없었다. 그래도 별 상관은 없었다. 다음 진도를 받았으면 된 거지 굳이 더 이상의 정보는 필요치도 않았다. 집에 돌아가고 나서 몇 시간 안 되어 학원의 연락을 받았다. 출근해도 좋다는 내용이었다. 이럴 거면 그 자리에서 말을 해줘도 됐을 것을... 암튼 모르긴 모르지만 이곳은 강사를 급하게 구해야하는 사정이 있었던 것 같았다.


엄마는 나에게 늘 사주에 일복이 많다 했다. 말띠들이 통상적으로 그렇다고 하면서.. 사실 나는 사주 같은 건 잘 믿지 않는다. 친구들 따라 점집을 가봐도 점괘가 다 다르니 애초에 사주같은 건 맞지 않는 다는 경험적 데이터를 가지고 있던 것이다. 하지만 엄마의 말처럼 나는 돈이 끊길 만하면 어디선가 일자리가 굴러 들어오고, 또 힘들어질만 하면, 일을 쉽게 잘도 구하게 된다. 물론 내가 원하는 일이든 아니든 그에 상관없이 말이다. 상황이 늘 그러해진다. 


나는 이 기쁜 소식을 설하에게 먼저 알렸다. 내 기쁨에 대해서는 세상 누구보다도 기뻐해주는 나의 연인 설하.

“영아~ 축하해~! 근데 거기 남자 선생님들 많은 데 아니지?”

“남자야 많지, 그런데 총각이 없지. 죄다 유부남이야. 생긴 건. 말 말자.”

“하하, 너무 잘됐다!”

“좀 이따가 만날까? 내가 학교로 갈게.”

“아니, 오늘은 학교 행사가 있어서 좀 힘들고... 집에 가서 내가 전화할게.”

“그래...”

설하와 함께 축하주라도 해야 하는 건데.. 담배 한 대 물고 길게 공허함을 달래고 있다. 고등학교 동창들이자 동네 친구들인 선주와 은정이를 불러내어 간만에 한 턱 쐈다. 물론 현금 아닌 신용카드로~ 다름 달에 결제가 되면 월급일과 맞물려 부담이 없을 테니까. 친구들과 수다를 실컷 떨고 있었는데 설하의 전화가 왔다. 담배를 길게 내뿜으며 전화를 걸었다. 밖이 많이 춥다는 것이 소리를 통해 전해졌다.

“영아~ 우리 아부지가 너 집으로 좀 데리고 오래. 보고 싶다고”

“나 싫은데... 아니 벌써 부모님 얼굴을 보자고? 부담스러워~”

“그러지 말고 그냥 가볍게 보면 되잖아~”

“남자친구의 부모님을 어떻게 가볍게 보니?”

원래 내가 싫다는 건 우기지 않는 성격인 설하가 작정을 해도 아주 단단히 작정을 한 것 같아 보였다. 몇 번의 실갱이가 계속 되었어도 자신의 의견을 굽히지 않는 것이었다. 결국 나는 이 지겹게 반복되는 말장난이 싫어 그러겠노라고 대답했다. 


내가 학원에서 첫 수업을 한 것은 설하와의 통화 다음 날이었다. 몇 백 명 앞이어도 학점만 더 준다고 하면 망설임 없이 앞에 나가 발표하던 내가 고작 20명 중학생들 앞에서 긴장을 했다. 다른 선생님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어린 내가 무슨 자기네들 앞에서 시강이라도 하는 줄 알고 빤히 쳐다보는 아이들의 눈빛이 나를 움츠려들게 했다. 심지어 수업이 시작했는데도 한 남학생은 책상 위를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있었다. 자리에 앉으라고 했지만 팔로 나무 타는 원숭이마냥 다리로 책상을 옮겨 다니고 있었다. 그 아이를 진정시키고 나는 내 소개에 들어갔다 

이은영 선생님

내 이름을 크게 쓰고 아이들한테 나와의 수업 시간에 지켜야할 일들이 있다며 규칙들을 하나 둘 써내려갔다.   

필기도구 – 샤프, 형광펜


숙제 - 3대


태도 – 불량할 시 따귀 18대


다 쓰잘 데 없는 것들이었지만 수업 태도에 관한 건 확실히 해두고 싶어 적어두었다. 아이들은 왜 18대냐고 물었다. 나는 불량하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그렇게 수업을 5분 나갔을까? 나는 책을 덮고 첫사랑 썰을 풀었다. 나도 그랬고 내 앞에 아이들도 그럴 테고 선생님의 첫사랑 이야기인데 공부를 대체한다면 싫을 이유는 없지 않은가? 나는 설하와의 연애담이 아닌, 생전  처음으로 사겼던 남자친구 예준이와의 만남 편으로 이 긴장을 구석 쪽에 밀어두었다. 수업만 나갈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떡인가 싶었는지 아이들은 나의 이야기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예준이. 지금도 그애와 연애했던 순간들을 떠올리면 연애 세포들이 자극되는 묘한 매력을 가졌던 아이. 그러나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보통 첫만남에 느낌이 온다는데 우리의 처음은 너무도 시시했다. 뭐랄까 지금 내가 학원 강사가 되어 아이들 앞에서 강의를 하고 있는 모습처럼 설명되지 않는 그런 것들이 있었다. 머릿속에 까만 실타래가 정중앙에 자리 잡았다. 나는 과거의 기억을 거슬러 실타래의 한쪽 끝을 잡아 연애 이야기를 풀어냈다. 


바야흐로 때는 1997년, 내가 대학교 1학년인 시절, 그리고 5월 대동제. 

학교 축제 때 나의 단짝 친구 지민이가 나우누리, 천리안 등과 같은 인터넷 채팅으로 즉석만남 즉, 번개를 잡은 것이다. 그 시절 우리는 미팅과 소개팅에 의존해 남자를 만나기도 했었지만 자발적으로 번개를 통해 자급하기도 했다. 지민이는 채팅방에서 만난 금발소년이라는 닉네임의 남자를 우리 학교에 초대했고 그 아이는 자기까지 4명을 데려온 것이다. 번개를 하도 많이 해 ‘번개부인’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지민이도 1:4는 무리였는지 나한테 SOS를 쳤고 나는 그렇게 그 자리에 합류를 하게 됐다.  지민는 나에게 미리 금발소년은 참 괜찮은데 나머지 친구들은 별로라고 언지를 줬다. 과에서 하는 주점에 도착해보니 지민의 설명이 얼마나 정확한지 나는 한 눈에 누가 금발소년인지 알아볼 수 있었다. 보통 지민와 둘이서 미팅이나 번개를 하면 그 자체로도 재미가 있는데 이 날은 그렇지가 않았다. 남자애들과 대화 코드가 안 맞아서 그랬는지 아니면 서로가 마음에 안 들어서 그랬는지 빨리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래서 파장 분위기가 되자 우리는 자연스럽게 주점을 빠져나올 수 있었다. 우리 여섯 명 모두 지하철역을 향해 다 같이 걸어갔다. 그리고 다들 별 말이 없었다. 코너를 돌면 학교 정문이 보일 때쯤 금발소년이 내 가방 손잡이를 잡았다. 화들짝 놀라 그 뒤를 돌아보니 금발소년이 반달눈을 하고 웃고 있었다. 뭐라고 말을 해야 하는지 고민도 채 끝나기도 전에 금발소년이 답했다.

“길 잃어버릴까봐.” 

술을 마실 땐 분명 여자 친구가 있다고 했는데 어이가 없었다. 이런 나의 심정이 표정을 타고 드러났는지 금발소년은

“별의미는 없어.”고 말했다. 

뭐 이런 애가 다 있나 싶었지만 내가 여기에 무슨 말을 덧붙이면 오버하는 것이 될 것 같아 그냥 그렇게 걸어갔다. 그렇게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우린 헤어졌다. 어떻게 인사를 했는지도 모르고 각자의 방향으로 흩어졌다. 그리고 며칠 후 지민이는 나한테 금발소년이 내 번호를 묻는다고 얘기를 전해줬다. 삐삐번호를 알려줘도 되겠냐고 나한테 물어봤다. 그러면서 덧붙인 이야기는 금발소년 친구들하고 술모임이 있는데 혼자 나가면 술을 사야하고 여자 친구를 데리고 나오면 술을 안 사도 되는 모임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날 여자 친구는 일이 있어서 못 나오니까 내가 대신 자리를 채워서 자기도 공짜 술을 먹고 나도 그렇게 하라는 것이었다. 


고민을 3초 정도 했던가? 나는 지민에게 내 번호를 알려줘도 좋다고 했다. 금발소년에게 연락이 왔다. 지민이가 나에게 전해줬던 내용 토시하나 틀림없이 고스란히 설명을 했다. 술자리에 나간 나는 그 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았다. 친구들 중엔 우리 학교에 왔던 친구들도 있었다. 그리고 우린 2차로 노래방도 같이 갔다. 한 친구가 노래를 부르고 있었을 때 선곡표를 보며 노래를 고르고 있던 내 손을 잡아다가 책 아래로 내렸다. 아무도 모르게 우리 둘은 손을 비밀스레 잡고 있었다. 놀랐지만 뿌리치진 않았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이렇게 스킨십을 했던 남자는 없었다. 나도 그 애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걸까? 나쁘지 않았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발소년은 우리학교로 찾아왔다. 나와 만나서 할 얘기가 있다는 것이었다. 내가 수업이 있어 바로 만나지는 못했다. 기다리는 동안 음악 감상실에서 있으라고 했다. 수업이 끝나고 나는 음악 감상실로 갔다. 아무도 없는 빈 공간 속 그 애는 정 가운데 있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나는 그 애 옆에 가 앉았다. 굳이 귓속말을 할 필요가 없었는데 그 애는 나에게 귓속말로 속삭였다. 굳이 잡을 필요 없던 내 가방을 잡았던 처음처럼 그 애는 그랬다. 

“지금 여자 친구와 헤어지고 오는 길이야. 그래서 하는 말인데 이제부터 니가 나를 책임져야해.”

“뭐라고?”

“너 때문에 여자 친구랑 끝냈으니까. 네가 책임져야지.”

나는 딱 여기까지 이야기를 하고 아이들의 반응을 살펴보았다. 책가방 손잡이 잡는 순간 그리고 반달눈으로 웃는 장면을 강조하고. 자기를 책임지라고 말하는 부분은 소곤댔던 보람이 있던 것 같았다. 아이들은 조금만 더 얘기해달고 졸라댔다. 그래서 수업을 나가야하는데 마지 못해 더 들려주는 것 마냥 고민을 하다가 이야기를 마저 시작했다. 내가 너를 왜 책임지냐고 여자 친구한테 돌아가라고 했단 말은 생략했다. 어차피 그렇게 말했어도 우린 사귀게 됐으니까. 


나는 그렇게 예준이랑 사귀게 됐다. 그리고 그해 우리는 겨울을 함께 맞았다. 초창기 연애 시절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되는 날들이 있다. 그 중 하나가 첫 눈이 오던 날이었다. 나는 하필 그 날 집에 삐삐를 놓고 와서 예준이와 연락을 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혹시 예준이한테 메시지가 와 있을지 몰라 지하철을 타기 전 공중전화에서 음성 메시지를 확인했다. 거기서 예준이의 목소리가 흘러 나왔다. 

“왜,. 안 와... 나 계속 기다리고 있어.”

응? 뭐지? 만나기로 한 적도 없는데, 기다리고 있다는 말은? 그 앞의 메시지를 확인했다.

“언제 올 거야.”

이유를 알 수 없는 나는 계속해서 역순으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마지막 메시지를 듣는 순간 이유를 알아냈다. 첫 눈이 왔다고 수업을 째고 우리 학교에 와 정문 앞에서 나를 기다렸던 것이다. 전화기를 내려놓고 지민이에게는 혼자 집에 가라고 했다. 

나는 그렇게 지하철역에서 다시 학교로 허겁지겁 뛰어갔다. 그때는 금발이 아닌 흑발의 예준이가 또 반달눈을 하고 웃고 있었다. 그 애의 머리 위로는 눈이 수북이 쌓여있었다. 흩날리는 눈발 속에 서 있는 그 애는 마치 만화를 찢고 나온 소년 주인공 같았다. 이때는 정말 이 모든 게 그림 같아 보였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풍경화를 그리고 있던 그 애에게 달려가 다짜고짜 화를 냈다.

“야, 연락도 안 되는데 이렇게 하염없이 서 있으면 어떻게? 나 안 왔으면 어쩔 뻔했어?”

말을 내뱉었다. 그 애의 미소에는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다.  

“50000만 세고 집에 가려고 했어. 얼마 세지도 않았는데 네가 온 거야.”

50000도 더 넘게 세었을 것 같은 눈이 그 애 위에 내려 앉아 있는데 그 애는 로맨틱하게 웃고 있었다. 코와 귀끝이 빨개져 있는데도 얼마 기다리지 않았다며... 


여학생들은 소리를 꺅하고 질러댔다. 그 애의 반달눈 웃음을 상상했던 모양이다. 

나는 이렇게 설하와의 연애 얘기가 아닌 예준이와의 연애 얘기를 해줬다. 선생님의 연애사를 듣기 원하는 학생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는 이야기보따리의 원천이 되어주고 있는 예준이. 어쨌든 과거 속의 그 애는 현재를 보내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가장 고마운 사람인 것은 확실했다. 


옛 기억 속에 들어갔다 교실 문 밖으로 나온 나를 본 원장은 교무실로 들어가는 길목에서 수업이 어땠냐고 물어봤다. 쉽게 대답이 안 나가자, 

“나도 지금 이 나이에도 첫 수업은 여전히 긴장이 되더라고.” 하며 

나의 긴장을 풀어주려 노력하는 것 같았다. ‘첫 수업인데 긴장감에 잘 했을 리가 없다.’는 편견이 선행됐지만 나름의 따뜻한 배려가 나쁘지 않게 다가온 말이었다. 상대방을 위한 배려가 그 사람의 상황이 아닌 자신의 상상과 고정관념에서 비롯되면 그것도 배려라고 말해도 되는 건지 알 수는 없었지만 배려처럼 고마웠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갔다. 나는 연거푸 첫사랑 이야기를 했다. 그렇게 같은 얘기를 네 번 반복했다. 4교시 수업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이다. 학원일이 끝나고 과학 선생님과 버스 정류장까지 같이 걸어갔다. 나보다 집이 한참이 멀긴 하지만 방향은 같았다. 얼굴은 나보다 앳되어 보이는데 나이는 우리 큰언니벌이라 나와 7살 차이가 났다. 하이톤의 웃음 섞인 목소리는 사람의 기분을 좋게 만들었다. 낯가림이 있는 나에게 친근감을 심어줬던 과학샘의 수다. 과학 선생님의 이야기가 100% 다 귓 속에 박히진 않았지만 그녀의 이야기의 핵심은 사회 초년생 때 나쁜 원장을 만나 마음 고생했던 이야기 지금 학원은 원장과 다른 선생님들이 엄청 좋은 곳이라고 오래오래 여기서 일했으면 좋겠다는 훈훈한 마무리로 요약이 됐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 괜찮은 사람이란 느낌은 충분히 전해졌다. 웃는 얼굴에 목소리도 늘 밝은 사람이 싫을 이유는 없었다. 그리고 옆에 있으면 밝은 에너지가 타고 넘어 오니 직장동료로는 100점 만점에 100점이었다.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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