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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19. 2023

단순의 미학

나는 한 때 내 삶이 원대한 의미에 충만해 있어야 한다고 생각을 한 것도 같다. 티비 속에서 나오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삶이 되어야하고, 누군가는 나의 이야기를 자랑처럼 할 수 있는 나는 그렇게 가치를 지닌 사람이어야 한다는 신화를 꿈꿨던 것도 같다. 진실의 가장 큰 적이 신화란 사실도 모른 채. 신격화에 누가 되는 모든 실체들을 누락시켜 우리 현실을 망가진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포장된 삶을 동경했다.  


그렇지만 나는 성공적 신화 없이도 패배자처럼, 죄인처럼 살아가고 있지 않았다. 그래서 주눅들 이유도 없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나에게 자꾸 왜 학원 강사 일을 하고 있느냐 물었다. 내가 좋아하는 후배들 마저

“누나 왜 학원 강사해요?”했다.

내가 굶어 죽지 않을 만큼의 세상을 굴릴 줄 아는 재주에 만족하고 이걸로 밥을 벌어먹고 살고 있는데 사람들은 이 일을 그저 임시직처럼 여겼던 것 같다. 이건 강압이었다. 좀 더 나은 직장을 갖고 좀 더 좋은 삶을 살라는.... 그런데 내 삶은 이렇게 나아가고 살아진다. 그러면 됐다. 

“나는 만족해. 강의실에 있을 때가 가장 행복하거든.”

그러면 사람들은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어차피 행복은 주관적인 것이고 내가 행복하다는데 그들이 그런 나에게 

“아니, 너는 행복하지 않아.”고

할 수 없었다. 

따르르르릉

“여보세요. 설하?”

“응, 오늘 수업 잘 했어? 전화 기다렸는데... 바빴어?”

“아니.. 간만에 혼자 누워서 나에게 주어진 시간을 즐겼지.”

나는 다시 내가 가진 행복들에 대해 떠올렸다. 세상에 어느 인생이 죽는 날까지 모든 걸 확신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확실한 것들을 보면 된다. 남자 친구도 있고 직장도 있다. 그러면 된 거다. 이런 생각들 사이로 나는 나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아니 눈 커플에 의해 감김을 당하고 말았다. 


그렇게 아침이 되었다. 오늘도 내가 하는 모든 선택과 행동에 책임을 지게 될 하루가 시작된다. 내가 살아내는 시간들이 가져올 미래에 대해 약간의 기대와 설렘이 머물고 있는 고요한 아침. 

설하에게 전화를 하고 출근 준비를 다른 때보다 이르게 시작했다. 그렇지만 오늘 하루는 보다 단순했다.


25분 그리고 20분 그렇게 45분

내가 학생들과 대면하는 수업 시간이다. 그리고 내 손에 쥐어진 마법서! 교사용 지도서 문제집 본문에 빼곡이 쓰여진 마법의 파란색 글씨들만 있으면 나는 강의실 앞에서 천하무적이 된다. 이것들만 있으면 교재 연구도 다 필요 없고 아이들의 질문 따위는 두려울 게 없는 배짱이 생긴다. 물론 아이들도 이를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마법서의 마법발이 아닌.... 말발로 내 입각지를 굳히고 있었다. 25분 재밌는 이야기 그리고 20분 수업. 이 황금 비율이 내 수업의 매직이다. 나는 말하는 걸 아주 좋아하고 거기에 재밌게 말을 하는 재주가 있었다. 애들을 정신없이 웃겨 놓고.. 남은 시간동안 교재에 집중했다. 아이들은 나를 좋아했다. 가끔 나의 이런 비율에 놀라는 아이가 100에 하나 있을 때도 있었다. 그러나 그를 제외한 아이들은 모두 좋아했다. 어차피 공부는 영어 수학 시간에 질리도록 하고 오니 숨통 같은 과목이 하나 필요할 만도 했을 것이고 그것이 바로 국어였던 것이다. 


나는 사회적인 존경이 크지 않은 직업으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지언정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살아간다. 가끔 임용고시라는 힘든 시험을 통해 직업을 얻은 학교 선생님과 혼자서하는 심리적 경쟁을 할 때도 있지만 강의 실력은 내가 한 수 위라는 정신 승리를 하며 스스로를 승격시키기도 한다. 매너리즘에 빠진 학교 선생님보다 자강불식(自强不息) 교재연구를 해나가는 내가 낫다고...  이것은 진정한 승화였다.  단순하지 않으면 나올 수 없는 아름다운 도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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