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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빌리밀리 Oct 19. 2023

설하와의 첫 대화

대학교 시절 나는 나를 포함한 과친구 4명과 붙어 다녔다. 그 중에 한 명은 한가람, 가람이는 구문과과 1학년 과대였기 때문에 다른 친구들은 우리를 가람파라고 통칭했다. 과의 인원이 30명밖에 되지 않아 우리과 애들은 똘똘 뭉칠 법도 한데, 동아리 생활을 더 열심히 하는 애들도 있었다. 보통은 1학년 때 동아리를 가입하는 게 수순인데, 나는 그 시기를 놓치고 대학교 2학년이 되어서 동아리에 가입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1학년 때 동아리 활동에 생각이 전혀 없던 것은 아니었다. 유독 나에게 잘 해주는 1학년 위인 하선 선배에게 이끌려 학교 밴드에 여러 차례 가기도 했다. 그런데 나중에 그 동아리가 좀 과격한 운동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고민 끝에 그만둔 적이 있다. 그때 동아리에 같이 갔던 가람이와 은서는 밴드 동아리에 남았고 지민이와 나는 동아리를 탈퇴했다. 지민이의 아버지는 경찰이셨고 나도 늘 집에서 대학가서 절대 데모하면 안 된다는 신신당부를 듣고 자라 굳이 부모님과 대립하면서까지 동아리에 가입할 건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아빠는 틈만 나면 

“데모하는 애들 분신자살하고 이러는 거 다 자기들이 원해서 하는 일 아니다. 제비뽑기 잘 못 뽑아서 열사가 되고 그러는 거야. 절대 운동권엔 발을 들여놓아선 안 돼.”하며

운동권에 대한 경각심을 일깨워줬다. 어른들의 조언은 확실히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된다. 그러나 그것이 안 좋은 것은 뭔가를 스스로 직접 알아보지 않게 만들어 버린다는 것이다. 자유의지를 작동시킬 수 없다는 건 세뇌됐다는 것을 의미하는데 그것조차 인식하지 못한 채 남의 조언이 삶의 이정표가 되어 내 인생을 이끌어 가게 만든다. 나또한 그랬다. 그러나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야 나는 달라졌다. 젊은 시절 그들과 연대를 하지 못하고 힘들 보태지 못했다는 건 아직도 내 마음에 큰 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나를 설하는 극좌파라고 부르곤 했다. 나는 그제서야 설하가 나를 그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럴 때면 나는 좌파도 우파도 아니고 나는 성향을 위해서가 아닌 내가 생각하는 정의의 신념대로 행동을 하는 사람이라고 정정을 해주었다. 그래도 굳이 성향을 따지자면 어감상 좌파보다는 진보란 표현을 붙여주길 원했다. 


대학에 입학했을 때 국문과라는 전공은 참 막연했다. 뭐든 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딱히 뭘 할 수도 없을 것만 같았다. 입학을 하고나서 알게 된 사실인데 우리 학교 국문과는 교직을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박정희 정권 데모를 하다가 밉보여 폐과가 됐다가 다시 신설된 지 10년이 채 안 되어 그렇게 됐다는 것이다. 교직이수가 안 되는 국문과도 있을 수가 있는 걸까? 속은 기분이었다. 나는 이 사실을 알고 국어교육과로 전과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이런  생각을 한 건 나 혼자만이 아니었다. 나를 포함한 가람파 친구들과 그 외 많은 동기들이 교직 이수를 원했다. 그런데 선배들은 그런 우리에게 국문과 학생들은 교육대학으로 전과를 할 수가 없다는 것이었다. 학교의 방침이 그렇다고 했다. 나는 그런 줄로 믿고 있었다. 교무과에 가서 물어보기만 하면 되는 걸 선배들의 말을 믿어버렸다. 그런데 2학년이 되면서 같은 과 연경이가 영어교육과로 전과를 하는 것을 보고 이 또한 잘못된 정보였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너무 바보 같고 수동적이었던 나의 대학 시절은 1년이 흘러갔다. 


2학년이 되고 학교 생활에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다 느꼈다. 나와 지민이는 동아리 투어를 하려고 학관 2층으로 갔다. 복도에 들어선 순간 잘생기고 멋진 남학생들이 우루루 동아리 방을 나서는 것이었다. 나와 지민이는 서로 말도 않은 채 자동반사적으로 그 문을 향해 가고 들어섰다. 가톨릭 동아리 방으로 들어갔다. 사실 우리는 동아리 자체보다도 멋진 남자들이 많은 곳이 필요했다. 심지어 지민이는 불교였는데 팻말도 확인하지도 않고 그곳에 간 것이다. 고학년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 가운데 테이블을 둘러싸고 앉아있었다. 순간 떼로 나갔던 멋진 남학생들은 바로 옆 사진반 학생들이었다는 것을 후회처럼 깨달았다. 어서 들어와 앉으라는 선배들의 말에 우리 둘은 말없이 앉았다. 그리고 입회원서를 쓰라는 지시에 우리는 손사래를 쳤다. 오늘 처음 동아리 투어에 나섰고 이곳이 처음인데 좀 더 알아보고 결정을 해야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그럼에도 선배들은 막무가내 원서를 쓸 것을 강요했다. 더군다나 테이블 가운데는 원형탈모의 한 남성이 앉아 있었는데 그 분은 동아리 지도 교수님이라고 했다. 선배들은 교수님께 정중하게 인사를 드리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그렇게 20분간 고민했던 것 같다. 우리도 입회원서를 작성하지 않고 버티고 있었지만 그들도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집요하게 원서를 쓰라고 했다. 마지못해 우리는 원서를 썼고 다른 곳을 알아볼 겨를 없이 학관을 나섰다. 그 때만해도 입회원서를 쓰면 그 동아리에 다녀야하는 건 줄 알았다. 지민이와 나는 공부만 해왔지 사회 경험도 없고 누군가 그렇다면 그런 줄 알고 따르기만 했던 헛똑똑이였다. 우리는 그렇게 어이없이 가톨릭 동아리에 입단했고 그 후에 우리가 깍듯이 인사를 드렸던 지도 교수님은 그냥 우리와 같은 학년 학생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바보들이 따로 없었다. 그리고 동아리 활동 내내 나는 지도 교수님의 그림자조차 본적이 없었다. 


그렇게 우리의 동아리 활동을 시작이 됐다. 수업이 끝나면 동아리 방에 가서 지민이와 단둘이 앉아있었다. 크게 재미있었던 건 아니었는데, 과선배들보다 동아리 선배들은 우리를 더 많이 챙겨준 탓에 어느덧 우리는 동아리에 정착을 하게 되었다. 점심때가 되면 동아리에 들려 식사 때가 비슷한 사람들하고 다 함께 학생 식당에 가서 점심을 먹었고 저녁이 되면 학교 앞에 껍데기집에 가서 안주를 저녁 삼아 술을 마셨다. 그래도 워낙 남자들이 많아서 그런 건지 본연의 성격이 나오는 데까지는 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렇게 3달이 지났을까? 동방에 들렸는데 거기엔 설하와 나 단둘이 있었다. 나는 사실 그때까지만 해도 설하가 나랑 같은 학년인줄도 모르고 있었다. 

“너 맨날 그렇게 말 없이 앉아 있다만 가니까 동아리에 친구가 안 생기는 거야.”

“아..”

“그나저나 내가 무슨 과인 줄은 아냐?”

사실 나는 그때 설하가 무슨 과인 줄 알 길이 없었다. 설하 뿐만 아니라 누가 무슨 과인지 아직 파악을 못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나와 지민이는 소소의 신입생이었지만 나머지는 다수의 기존 회원이었다. 게다가 동아리 생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던 우리가 이들을 일일이 다 알 리도 없었다. 그런데다가 설하는 정말 존재감이 없는 아이였다. 말없이 동아리에 와서 앉았다 나가는 부류 중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 말을 섞은 적도 없었다.

“알죠.”

그냥 그게 예의라 생각하고 그렇게 답했다. 그랬는데 설하는 

“무슨 과?”

난감했다. 이렇게 구체적으로 물어볼 줄 모르고 안다고 한 것이었는데.... 나는 머리를 굴렸다. 그리고 우리 동아리에 대부분의 남학생들은 기계과라는 사실을 상기하고 기계과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설하는

“알고는 있네.”

 다행이었다. 찍은 게 맞아서... 안 그랬으면 정말 스무고개 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이 펼쳐졌을지도 모른다. 더군다나 나는 융통성 있게 분위기를 전환하는 요령도 없던 터였다.  

“그럼 너 내 이름은 알고 있냐?”

“네. 알죠.”

너무 당황스러웠다. 상대방 이름에 대한 확신이 없는데 자기 이름을 아냐고 물어봐서. 모르면 모른다고 알려달라면 될 것을 그걸 못해 안다고 한 것이다. 

“뭔데?”

또 머리를 굴렸다.

“설하? 채설하?”

“아네.”

이게 우리의 첫 대화였다. 그는 내가 존대를 하는 데도 자신이 나와 같은 학년이란 얘기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가 나의 선배인 줄로 알고 있었다. 통성명을 퀴즈로 괴상하게 해버린 우리는 그 뒤로 동아리에서 사람들 속에 마주쳐도 개인적인 인사 같은 건 하지 않았다. 많이 어색한 사이였다. 문을 열고 나갈 때 모두에게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 속에 서로를 포함시킬 뿐이었다.       


그 당시 설하는 한 살 많은 정윤 선배를 사귀고 있었다. 작고 귀엽고 우리 동아리에 어울리지 않는 그런 세련됨이 있던 언니였다. 웃으면 한 쪽에 작은 보조개가 깊게 패여 귀여움에 귀여움을 더했다. 그런 정윤언니는 한 살 연하의 설하와 사귀고 있었다. 


나는 다수의 싱글 남자 선배들과 더 많이 어울렸다. 사실 우리 동아리의 대부분의 남자들은 커플이 아니었다. 하지만 썸을 탈만한 사람도 없고 그렇다고 대화가 잘 통하는 사람도 없었는데 나는 동아리에 열심히 나갔다. 일종의 소속감에 대한 욕구 때문이었던 것 같다. 하루는 동아리 총회장인 진용 선배가 나와 나란히 앉아 있는 지민이를 보며

“그렇게 허구헌 날 둘이 붙어 다니니까 남자친구가 안 생기는 거지.”

지민이와 나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나에겐 남자친구 예준이가 있었고 지민이도 지민이를 쫓아다니는 기계과 킹카 남자아이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굳이 우리가 선배의 말을 똑바로 정정해주진 않았다. 그리고 지민이는 나한테서 한 걸음 떼어 반쯤 일어났다 다시 앉았다. 나도 이에 질 새라 반대편 끝 쪽으로 떨어져 앉았다. 우리는 이렇게 서로에게 멀어지며 

“너 때문에 남친이 안 생기잖아.”

“너가 문제야. 좀 떨어져!”

이러고 웃었다.

그러던 와중에 설하가 들어와 구석에 앉았다. 진용 선배는 설하를 보면서

“너는 맨날 말없이 구석에만 앉았다가 가고 그러니까 친구가 안 생기는 거야.”

했다. 웃을 자리가 아니었는데 나는 또 웃었다. 자기가 선배로부터 들은 말을 고스란히 나한테 써먹었구나 하는 생각에 웃음이 터져버린 것이다. 옆에 있던 지민이는 이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나보다 더 크게 깔깔거리며 웃었다. 웃음이 전염된 것처럼 우리는 한참을 배를 붙잡고 웃었다. 모두가 괜찮았는데 설하만 멋쩍어했다. 

“그래도 설하 선배는 혼자 다니니까 여친이 있잖아요.”

지민이가 

“맞네 맞아.”라며 맞장구를 쳐줬다.

“누가 선배래? 설하, 너 은영이한테 니가 선배라고 뻥쳤어?”

진용 선배가 정색을 하며 추궁했다. 원래 진용 선배는 웃음이 잘 없는 사람이었다. 생김새도 깔끔하고 말도 똑 부러지게 해서 여자들이 많이 따를 법도 한데 진용 선배도 학창시절 내내 늘 싱글이었던 것 같다. 

“아닌데..그런 적 없는데요. ”

개미보다 작은 목소리로 설하가 말했다. 심지어 억울해 하는 것 같았다.

“선배 아니었어요?”

나는 설하가 아닌 진용 선배한테 물었다. 

“아니야. 니네 동기야. 게다가 설하는 빠른 80이야. 너희보다 한 살이 어려. 그래도 동아리는 1년 먼저 들어왔으니 선배인가?”

진용 선배가 족보들 따졌다. 아무튼 그때 나는 설하가 조용한데 좀 나와는 다른 과라고 생각을 했다. 약간 권위적인 구석도 있다고 생각했고.


설하와 정윤 선배는 흐지부지 끝났다고 들었다. 원래 남의 연애가 관심도 없고 설하와 정윤 선배와 딱히 친하지도 않아서 왜 끝났는지 궁금하지도 않았는데 우연히 술자리에서 들은 바로는 설하는 어설프고 정윤 선배는 되바라져서 안 맞았다는 것이었다. 그 얘기를 듣고 다른 설명 없이도 그랬을 것 같다는 이해가 모두의 궁금증을 충족시켜주는 것 같았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 저마다

“그럴 줄 알았어.”, “그런 거 같더라.”며

화답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소개팅을 한 설하는 모여대에 다니는 여성스러운 한 여학생과 사귄다고 했다. 그리고 껍데기집 술모임에 그 여자애를 데리고 왔다. 이름은 주희라고 했는데 내가 처음에 동아리 술모임에서 그랬던 것처럼 별 말이 없었다. 바바리코트를 입고 조용히 앉아 있다가 갔다는 기억밖에 없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둘은 깨졌다. 설하는 동방에서 둘이 나눴던 커플링을 어떻게 처리할까 고민하고 있었다. 버려야하나 가지고 있어야하나 진짜 진중하게 고민을 했다. 그런 그에게 나는 그거 나한테 버리라고 했다. 학교 오는 길에 있는 금은방에 가면 귀걸이로 바꿀 수 있을 거 같았기 때문이다. 설하는 흔쾌히 겉면이 다각으로 커팅되어 있는 백금 반지를 나한테 버려주었다. 그리고 나는 정말 그걸 아주 자그마한 14k 귀걸이로 바꾸고 하고 다녔다. 남한테 쓸모없는 물건이 나에게 소중한 물건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설하의 기분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보람 있고 뿌듯했다. 이 날 내가 좀 더 똘똘하고 현명해진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민이와 나는 동방에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우리보다 한 학년 아래 후배인 규빈이는 신나게 웃으며 들어왔다. 뒤에는 설하를 비롯한 동방 남자애들이 따라들어오고 있었다. 규빈이는 깔깔대며 

“누나, 오늘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 북한학 수업을 듣고 있는데 설하형이 책에다가 필기를 하는 거야. 그것도 뭔가를 반복적으로.. 그래서 뭘 저렇게 열심히 하고 있나 해서 가까이 가보니까 거기에 ‘국수주희’, ‘국수주희’, ‘국수주희’ 이게 한 100번은 넘게 적혀 있더라.”

동방에 있는 모두가 빵 터졌다. 그곳에 웃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 설하 뿐이었다. 

나와 지민이는 

“국수주희가 뭐야. 하하 쟤 국수주의 철자도 모르는 거 아니야?”

“아니야. 그정도로 바보는 아닐걸? 주희가 너무 보고 싶어서 철자를 바꾼 거겠지.”

“야 솔직히 말해. 너 바보지?”

우리는 또 한 번 웃다가 심각한 표정의 설하를 보고 서로에게 눈빛을 보내며 웃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더니 규빈이는 

“그럴 줄 알았어. 설하형도 주희가 은영누나랑 비슷하게 생겨서 사귄 거 아니야.”

분위기가 싸해졌다. 사실 주희를 설하에게 소개시켜준 것은 규빈이었다. 그런데 규빈이 입에서 설하와 주희가 사귄 것이 나와 연결되는 이유라는 언급을 해 어정쩡하게 지켜보고 있었다. 지민이는 이 말을 받아쳐서

“설하, 은영이 좋아해? 암튼 은영인 인기도 좋아.”

그랬더니 규빈이는 말을 돌렸다.

“자자 국수주희, 국수주희라고 들어봤어? 국수주희? 날이면 날마다 오는 국수주희가 아니라고요!”

우리는 또 한 번 단체로 크게 웃었다. 역시나 어쩔 줄 모르며 어색해 하는 건 설하 단 한 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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