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 게임>에 대한 믿기 힘든 소식들이 끊임없이 들려오고 있다. 넷플릭스 시리즈 역다 최다 시청 드라마에 올랐고, 전 세계 각국 시민들이 관련 패러디와 챌린지 등에 푹 빠져있다. <오징어 게임>에서 ‘오일남’ 역을 맡아 임팩트 있는 연기로 흥행에 큰 공을 세운 배우 오영수가 10월 16일, <놀면 뭐하니?> 뉴스데스크+의 초대석 게스트로 나왔다. 앵커로 변신한 유재석과 이미주는 정중하면서도 편안하게 배우 오영수에게 다가갔다. <오징어 게임> 이후 첫 방송 출연에 나서 많은 관심을 모은 오영수는 포근하면서도 단단한 말로 많은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바쁜 하루하루에 한숨 돌릴 필요가 있을 때 마음에 새기면 모두에게 좋은 내용인 것 같아, 인상 깊었던 말씀을 소개하고자 한다.
유재석 앵커가 “요즘 하고 있는 고민은?”이라는 질문을 던지니, 오영수는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특별히 고민은 없고 바람이라고 할까, 그냥 가족과 함께 문제없이 잘 살아가는 것입니다. 적든 크든 살면서 많이 받아왔잖아요. 이제는 받았던 모든 걸 남겨주고 싶어요. 쉽게 예를 들면 산속에 꽃이 있으면 젊을 땐 꺾어 가지만 내 나이쯤 되면 그냥 놓고 오죠. 그리고 다시 가서 보죠. 그게 인생과 마찬가지죠. 있는 그 자체로 놔두는 것. 그게 쉽지가 않죠.”
꺾어서 손에 넣고 싶어지기도 하는 무언가의 원래 모습을 지켜주고 남들과 공유하며, 오래도록 고요하게 행복을 느끼는 것. 그것이 오영수가 말하는, 시간이 지나며 얻게 된 지혜이고 성품이다. 물론 그것이 쉽지 않다는 걸 인정하면서도 그는 욕심을 내려놓으려는 노력을 계속해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456억 원이 생기면 뭘 하고 싶습니까?”라는 질문에 생각을 한 번도 안 해봤다며 곤란해하던 그는 곰곰이 생각하다 “딸이 자기 뜻대로 살 수 있게 도와주고 우리 아내에게 못 해줬던 일들을 하나하나 해주고 싶어요.”라며 주변 사람들에 대한 진심 어린 보답을 가장 하고 싶은 일로 꼽았다.
본인은 나이가 들어가며 그런 지혜를 자연스럽게 깨달았다고 했지만, 사실 오로지 나이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딱히 더 탐나는 게 없다는 건 어떻게 보면 내적으로 더없이 충만하게 살고 있다는 걸 의미한다. 아무리 생각해도 더 필요한 게 없다는 듯 찬찬히 고민하는 편안한 얼굴이 부러운 이유이다.
‘이 분은 무엇에 행복과 충만을 느낄까?’ 하며 궁금해하던 중, 마침 유재석이 “오영수 배우님은 언제 가장 행복하신지?”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리고 그는 “가족끼리 다 같이 밥 먹으면서 아이는 아이대로 자기 이야기,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대로 자기 이야기를 할 때”라고 답한다. 사실 처음에는 한평생 연기에 몸을 바치고 이제 모두가 인정하는 커리어를 가지게 된 분의 대답으로는 다소 소박하다고 생각했다. 세계적인 배우가 아니라도 우리 모두가 할 수 있는, 어찌 보면 가장 평범하고 클래식한 답변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대답이 클래식한 이유는 오영수가 말하는 행복이 가장 확실한 행복, 그리고 없을 때 가장 허전해지는 행복이기 때문 아닐까? 사실 당연한 행복이란 없다. 배우 오영수처럼 일상의 익숙하지만 소중한 행복을 만끽할 수 있게 되면 우리도 욕심을 부려 꽃을 꺾지 않고 내려오는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를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한 마디 해준다면?”이라는 질문에 오영수는 “우리 사회가 1등이 아니면 안 되는 것처럼 흘러갈 때가 있어요. 그런데 2등은 1등에게는 졌지만 3등에게 이겼잖아요. 다 승자예요. 내가 생각하는 진정한 승자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일에 노력하면서,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대답한다.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자기 자신을 몰아세우는 게 미덕인 양 그려질 때가 많다. 학창 시절 선생님들이 틀어주시던 ‘공부자극’ 영상만 봐도 발화자가 남들을 이기기 위해 얼마나 끔찍하고 지독하게 살았는지 설명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하지만 오영수는 경쟁심에 스스로를 옥죄고 소모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의 역량을 차근차근 채우고 다듬는 데 집중하며 살아온 것처럼 보인다. 어쩌면 이번에 그토록 인상 깊은 연기를 보여줄 수 있었던 이유도 순위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를 끊임없이 조용하게 갈고닦은 덕이 아닐지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니 처음 “<오징어 게임>이 굉장히 잘 되었는데 기분이 어떻냐”는 질문에 나온 “스스로를 정리하면서 자제심을 가지고 있어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담담하고 차분한 반응이 이해가 간다. ‘고생 끝에 드디어 낙이 왔다’는 식으로 기쁨에 도취되지 않은 이유는, 그에게 돈, 유명세, 화려한 커리어는 ‘플러스알파’일뿐 승자의 본질적인 조건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보다는 작품의 의미, 메시지를 전하는 진심, 점점 더 쌓이는 연기 내공에 초점을 맞추었던 것 같다. 작품이 잘 되었다고 해서 무언가가 특별히 달라지기보다는, 늘 하던 대로 차근차근 꾸준히 노력하던 과정 자체가 의미와 가치로 가득했을 것이다.
“꾸준한 노력”을 위한 식지 않는 열망은 “다음 작품은 어떤 장르로 하고 싶은지?”라는 질문에 대한 오영수의 대답에서 드러난다. 그는 망설임 없이 “<파우스트>를 40대에 했는데 그때는 제대로 소화를 못했어요. 40대에 파우스트를 한다는 게 말이 안 되거든요. 이제 그걸 할 나이여서 하고 싶은데…”라고 대답한다. 그동안 시도해보지 않은 새로운 장르나 캐릭터에 대한 바람을 드러내는 대신, 그동안 지나온 수많은 작품 중 스스로를 가장 부족하다고 느꼈던 가장 작품을 고른 것이다. 연기자로서 참여하는 작품을 빠르고 넓게 쌓아나가기보다는 하나라도 찬찬히, 그리고 몇 번을 시도하더라도 제대로 해내고 싶은 마음을 볼 수 있다. 그런 오영수는 우리가 봐도 본인이 정의한 ‘승자’의 모습에 참 어울린다. 그로부터 나오는 여유가 우리의 마음을 흔드는 게 아닌가 싶다.
물론 개인마다 철학은 다르니 배우 오영수의 삶의 태도를 똑같이 따라 해야 한다는 말은 아니다. 하지만 ‘승자’를 ‘내공을 가지고 어떤 경지에 이르려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정의한 오영수처럼, 우리도 ‘승자’의 의미를 스스로 정립할 수도 있다는 점을 생각해볼 수 있다.
오영수 배우는 마지막에 몸을 앞으로 숙이고 카메라와 눈을 맞춘 채 “여러분, 아름다운 삶을 사시길 바랍니다.”라는 말을 남긴다. 아름다운 삶이란 어떤 삶일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은 아름다울까? 남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삶이 아니라 나에게 아름다운 삶의 조건은 무엇인가?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만큼, 이 글을 읽는 사람들도 <놀면 뭐하니>의 클립으로 배우 오영수의 말을 직접 들어보고 의미를 곱씹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