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만 원짜리 팔찌를 하나 샀다.
신혼 때 사고는 이번이 두 번째, 십 년 만이다.
어느새 워킹맘이 된 지도 십 년이 다 되어 간다.
그간 일을 하며, 아이를 낳고 키우느라 내 치장은 뒤로 밀려나기 일쑤였다.
그러던 것이 아이가 손이 덜 갈 만큼 성장하니 이제야 나이 든 내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요즘 들어 거울 앞에 있는 시간이 부쩍 늘었다.
아, 언제 이렇게 변한 거지...
얼마 전 친정에서 기미가 왜 이리 늘었냐고 놀라며 신경 좀 쓰라던 엄마의 얼굴이 겹쳐진다.
워킹맘 화장, 워킹맘 패션, 워킹맘 꾸안꾸...
급한 대로 세월을 되돌리기 위한 비방은 없는지 찾아본다.
아.. 옷장을 싹 다 비우고 다시 시작해야 하는군.
그러기엔 돈이 많이 들잖아. 아직 나에게 어울리는 스타일도 모르는데...
아? 액세서리 하나로도 이렇게 스타일이 바뀔 수 있구나. 이런 팔찌는 무심하게 꾸민 듯 안 꾸민 듯 괜찮은데? 가격도 삼만 원이면 비교적 부담 없고.. 그래 이거다!
며칠 후 도착한 팔찌는 화면에서처럼 존재감을 과시했지만 사실 이쁜 건지 나에게 어울리는지는 판단이 서질 않았다. 그리고 원래 이렇게 조금 큰 듯하게 차는 건가?
자칫하면 잃어버리겠는걸.
불안감에 팔찌를 위로 올려 틈을 없애 본다.
음.. 어색하긴 하지만.. 나쁘지 않은데..
그렇게 거울 앞에 한참을 서 있다 출근 시간이 임박했음을 깨닫고 발길을 서두른다.
그리고 오늘도 역시나..
팔찌를 찬 것을 잊어버릴 만큼 정신없는 하루를 보내고 드디어 퇴근길, 운전대를 잡는다.
좋아, 오늘은 평소보다 한 시간이나 일찍 끝났어.
뭔가 허전한 기분이다.
엇? 팔찌가 없다. 오늘 첫 개시인데.
아휴, 그럼 그렇지.
역시 그 팔찌는 내 것이 아니었어.
삼만 원이니 안 샀던 셈 치자고.
원래부터 내 것이 아니었던 거야.
법정 스님이라도 된 것 마냥 쓰린 마음을 달래니 한결 편안해진다.
원래 퇴근 시간까지는 아직 한 시간이나 남았다.
잔뜩 어질러진 집안을 생각하니 자몽에이드 한잔이 간절하다.
평일 오후. 한적한 카페 창가 쪽에 자리 잡는다. 눈은 감기지만, 바쁜 일상 속 잠시나마 여유를 즐기는 드라마 속 커리어우먼이 되었다고 상상하며 자몽에이드를 들이켜는 순간..
게슴츠레 뜬 시야에 반짝이는 팔찌가 들어온다.
이게 왜 여기에?
어색한 동창을 마주친 것도 아닌데 당황스럽다.
어쩐지. 팔찌가 크더라니..
운전할 땐 옷 안쪽으로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모양이다.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니 정말 없는 존재가 되어 있었던 팔찌.
만약 크다는 걸 알았을 때, 고이 넣어 보관했더라면?
아니면 내 팔에 꼭 맞는 것으로 교환했더라면?
어쩌면 나는 이 귀여운 사치품을 처음부터 내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놓쳐버린 것들이 또 얼마나 있을지 생각해 본다.
엄마는 어차피 사주지 않을 거야.
쟤는 말해봤자 나랑 놀아주지 않을 거야.
저렇게 멋진 사람이 나를 좋아할 리 없어.
내가 아무리 노력해도 합격하긴 어려울 거야.
잃어버린 팔찌는 사실, 내 팔에 그대로 있었을 텐데.
본래 내 것이 아니었다고 하게 되기까지 나는 또 얼마나 많은 기대와 상처를 겪어온 것일까.
그 상처는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게 하며 나를 갉아먹어 왔던 걸까.
미안하다.
삼만 원짜리 팔찌도 내 것이 아니었다는 나에게.
내 분수에 조금이라도 넘치는 소중한 것이 다가오면 지레 겁먹고 뒷걸음질 쳤던 나에게.
그리고 아직까지도 뒷걸음질 쳤던 그 자리에서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는 나에게.
어질러진 마음은 쉽게 정리되지 않았다.
운전대를 잡으며,
차에서 내려걸어보며,
조금씩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실타래가 어디서부터 엉켰는지 모르겠지만..
끝부터 조금씩 풀어나가다 보면 언젠간 그 시작에 닿으리라 막연히 생각해 본다.
집에 도착해 보니, 역시나 아침에 나온 그대로 어지럽다. 그 가운데서 초등학생 딸이 배고프다며 난리다.
주섬주섬 거실을 정리하며 우리 오늘 맛있는 거 사 먹을까? 오늘은 우리 제일 먹고 싶었던 거 배달시키자! 웃어본다.
그리고 팔찌를 넣어두며 다음번엔 백화점에 직접 가서 이것저것 다 시착해보고, 나에게 너무나 잘 어울려서 절대 잃어버리지 않을 만한 팔찌를 사겠노라고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