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똥벌레~친구가 없네~~"
어디선가 청량하면서 구슬픈 가락이 들려온다.
요즘 부쩍 리코더를 사랑하는 딸에게서 나오는 소리다.
작년 3학년부터 음악 시간에 리코더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4학년이 되더니 재미가 들렸는지 동영상을 찾아보며 연주 삼매경에 빠졌다.
"엄마, 내 거는 독일식인데, 이건 바로크식이야. 그래서 소리가 안 나."
"그래? 그럼 엄마가 바로크식도 사줄게."
하나밖에 없는 딸인데 리코더 10개가 대수랴.
당장 검색하려던 찰나,
"아, 아니야! 두 개는 필요 없어. 그냥 이렇게 하면 돼."
이렇게가 어떻게인지는 모르겠으나 해결이 되었나 보다 넘기며 소파 위에 벌러덩 드러눕는다.
"나는 개똥벌레~"
딸의 분홍색 리코더가 참 예쁘다.
우리 땐 검은색 아니면 하얀색,
2000원짜리 아니면 3000원짜리가 있었는데...
학교에 가면 누군 2000원짜리를 샀네, 누군 못 가져왔네.. 별 것 아닌 얘기들로 왁자지껄 떠들어대던 초등학교 시절이 떠오른다.
내가 가져갔던 리코더는 2000원짜리도, 3000원짜리도 아니었다.
첫째, 둘째 언니를 거치며 상처가 가득했던 낡은 리코더.
형편이 어려웠던 나에겐 2000원짜리 리코더가 최고급 악기처럼 보였다.
리코더뿐이랴. 새 멜로디언을 가져와서 무지개색 계이름 스티커를 붙이고 있는 친구들이 어찌나 부럽던지.. 두 언니를 거치며, 일그러진 표정이 되어버린 멜로디언 가방을 들고 풀이 죽어 등교하던 내 모습이 떠오른다.
비단 음악 시간뿐이 아니었다.
실과 시간에도 만원씩이나 하는 라디오 전자키트를 조립하는 것이 실기평가 과제였다. 만원이나 하는 전자키트를 사야 한다고 입을 떼기가 어찌나 어려웠던지.. 큰 용기를 내어 결국 전자키트는 살 수 있었으나, 납땜 부품을 추가로 구입해야 한다는 선생님의 말씀은 또 어찌나 원망스러웠던지.. 결국 두 번의 용기는 낼 수 없어 과감히 실기 평가를 포기해 버렸다.
그 시절의 나와 비교해 보면 내 딸은 얼마나 호사를 누리고 있는 것인지..
"너는 행복한 줄 알아. 엄마 때는 말이야~"
입으로는 흔히들 말하는 라떼를 시전하지만,
그렇다고 딸이 그 시절 나보다 행복해 보인다고 자신 있게 말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오히려 천 원짜리 편지지 하나를 산다고 친구들과 온 동네 팬시점을 돌아다니며 저녁이 다 되도록 잡담을 나누며 고르던 그때, 끝내 맘에 드는 편지지를 발견하곤 가슴에 소중히 안고 달려오던 그때의 내가 더 행복하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함께 어려웠고, 그렇기에 친구들과 추억을 함께 나눌 소중한 기회들이 많이 있었다.
요즘은 다들 학원 다니랴, 세상이 흉흉하다 뭐다 해서 밤늦게까지 아이들이 밖에서 모여 노는 일은 드물다.
거기에다 조금의 여유가 생겨도 제각각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기에 바쁘다.
나에겐 분홍색 리코더도,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하루 종일 시간을 함께 나눌 친구들이 있었기에 더 행복했다.
딸아, 오해해서 미안하다.
진정한 호시절은 네가 아니라, 내가 누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