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 한 번

카풀, '좋은 사람'의 시간

by 솔향

"그걸 왜 엄마 맘대로 결정해?"

날카로운 목소리가 엄마를 향해 날아가 꽂혔다. 짜증이 치밀었다. 엄마 표정도 굳어졌다. 말은 안 했지만 눈빛은 분명했다. '정나미 없는 애 같으니라고, 그게 뭐 어렵다고.'


같은 목장에 속한 교회 집사님 딸이 중등 임용고시에 합격했다는 소식은 단톡에서 이미 본 적이 있었다. 저녁 식탁에서 엄마는 그 딸이 내 근무처 옆 학교에 발령 났다고 했다. 같은 지역이라니 신기하네, 하며 듣고 있던 참이었다.

"아파트에서 우회전하면 바로 나오는, 버스 대기하는 데 알지? 거기서 만나면 되겠더라. 그 애가 차가 없대."

"뭐? 나한테 태우고 다니라고? 그걸 왜 엄마 맘대로 결정해? 그렇게 한다고 말했어? 나한테 물어보지도 않고? 카풀하는 게 얼마나 힘든지 알아? 맞추기 힘들어서 근처에 동료 여럿이어도 다 따로 다닌다고! 나는 출장도 많아서 안 돼! 그리고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잖아!"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엄마에게 송곳 같은 말을 쏟아냈다.


누군가와 카풀하는 일은 이제 절대 하지 않겠다고 생각했는데. 더구나 교회 사람들과는 더욱 거리를 두고 싶다. 말하자면 나는 '왔다 갔다 하는 신도'다. 주일 오전 예배만 겨우 참석한다. 올해도 새로 꾸려진 목장 단톡에서 예배 후 얼굴이나 보자고 했지만 딱 한번 나갔다. 우리 건너편 아파트에 살면서 엄마와 함께 새벽기도를 다니는 그 집사님도 그날 한 번 봤다. 왜인지 교회 사람들은 좀 불편하다. 그들이 너무 친절해서일까, 나는 그들처럼 신실하지 않아 찔려서일까. 아니면 위에 계신 분께 죄송한 것이 많아 숨고 싶은 걸까.


사실은 엄마에게 처음 이야기를 듣는 순간부터 이미 알고 있었다. 결국은 내가 해야 될 거라는 걸. 그래서 더 화를 냈다. 차가 없으면 시외버스를 타고 가야 한다. 몇 번을 갈아타고 기다리며 두세 시간을 써야 할 것이다. 나랑 함께 가면 50분쯤이면 갈 길이다.

"내가 말한 건 아니고, 자기들끼리 그렇게 하면 되겠다고 하더라. 그리고 매일 아니고 월요일 아침만 타면 된다던데?"

월요일만? 아, 관사를 배정받은 모양이구나. 그러면 훨씬 낫다.



혼자서 다닌 지 이제 1년이 지났다. 전 학교에서 차가 없는 선생님과 2년 동안 함께 출퇴근했다. 그녀는 군내버스를 이용하다 버스 시간표가 바뀌는 바람에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졌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편도 35분쯤의 거리였다. 남편이 아침 일찍 그녀를 학교에 내려주고 다시 되돌아가 정반대 방향의 직장으로 출근한다고 했다. 사정이 힘들어 보여 내 차로 같이 다니자고 했다. 어차피 가는 길이었다. 기름값으로 한 달에 5만 원도 받았다. 여러 번 사양했지만 결국 받기로 했다. 타는 사람도 조금은 마음이 편해야 할 것 같아서였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묘한 어려움들이 생겼다. 출근시간은 마음이 여유롭기 힘들다. 일곱 시 사오십 분부터 학생들 등교맞이를 하고 있는 교장선생님 옆에 서 있지는 못할 망정, 최소한 여덟 시 언저리에는 도착해야 한다는 압박이 있었다. 그녀는 가끔 늦어 헐레벌떡 뛰어왔다. 나는 오래 서 있을 수 없는 길가에 차를 세운 채 초초하게 시계를 보곤 했다. 내가 늦을 때도 있었다. 더울 때나 추울 때, 서서 기다릴 걸 알기에 더 미안해졌다. 집에서는 시간을 딱 맞춰 나오려고 소파에 앉아 있다 나가기도 했고, 늦어서 전속력으로 달린 적도 있었다. 출장이 잦은 것도 눈치가 보였다. 갑자기 조퇴해야 할 일이 생기면 괜히 미안했다. 병원은 퇴근 후에 그녀를 내려 준 뒤에야 부랴부랴 가야 했다. 약속이 있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종종 퇴근길에 다른 직원들이 합세하는 날은 돌아가야하는 일이 더 생겼다. 계획대로 딱딱 맞는 일은 없으니. 겨우 10분만 늦어져도 왠지 손해보는 기분이랄까.


오래 같이 있어도 대화가 잘 맞는 사람들이 있지만 그녀와는 싱거웠다. 그녀는 매우 착했지만 세상사에 시큰둥하고 남의 일에도 큰 관심이 없었다.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지 않는다는 점은 좋았다. 대신 우리의 대화는 저녁 메뉴, 빨래 개는 방법, 친정에서 가져온 채소 종류 따위의 건조한 이야기로 채워졌다. 사실 나는 살림 이야기는 따분했다. 그녀가 말을 옮기고 다닐 사람이 아닌 게 다행이었지만, 괜히 쓸데없는 말을 한 건 아닌지 후회할 때가 많았다. 속 깊은 감정을 나눌 수 없어 내 말도 겉돌았다. 대화의 내용은 점점 소금 빠진 나물처럼 재미없어졌다. 혼자 라디오를 듣거나 강연을 들으며 출퇴근하던 시간이 그리워졌다. 친한 친구는 퇴근길에 운전하며 하소연도 하고 하루 이야기도 나누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며 내게 "뭔 오지랖이냐."라고 불평했다.


어서 이 일이 끝나길 바랐다.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싶었다. 기꺼이 친절을 베푸는 일은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아니, 처음에는 분명 기쁜 마음이었다. 별 신경 안 쓰고 즐겁게 지나가는 날이 훨씬 많았다. 하지만 2년은 너무 길었던 걸까. 아마 그녀가 내 마음을 알았다면, 번거로워도 알아서 다니겠다고 했을 것이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을 들키지 않으려 더 조심했다. 내려다 보고 계시는 그분께는 이미 들통났으니 연약한 인간을 불쌍히 여기시라고 했다. 무엇보다 순수해야 할 호의의 시간을 재고 계산하고 있는 나 자신이 위선적으로 느껴졌다.



개학이 다가오자, 딱 한 번 봐서 얼굴도 기억 안 나는 집사님에게 카톡을 보냈다. 딸의 임용을 축하하고, 첫날 만날 장소와 시간을 지도와 함께 보냈다. 감사인사와 딸의 휴대전화번호가 도착했다.


처음 보는 어린 사람과 뭔 얘기를 하며 갈까. 어색하면 괜히 말을 많이 하게 되는데, 혹시 실수나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면, 나는 카풀이 싫은 것이 아니라 다시 '좋은 사람 역할'을 오래 해야 할까 봐 겁이 나는 것 같다. 다행히 이번에는 월요일 한 번이다. 어쩌면 친절을 나눈다는 건 가끔씩만 감당할 수 있는 일인지도 모른다.


"나도 새벽기도 갈 때마다 차 얻어 타고 간다."

등 뒤에서 엄마가 말한다.

누군가는 태워 주고, 누군가는 얻어 타고. 그렇게 우리는 조금씩 서로의 시간을 빌려 쓰며 굴러가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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