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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Jan 26. 2024

어울리지 않는 조합

제주 여행 시작!

제주도 여행 둘째 날을 대한민국 대 말레이시아의 축구경기 시청으로 마무리하고 있다. 별빛 청하, 써머스비, 우도 땅콩 막걸리, 클라우드 맥주와 함께다. 전반전 우리가 한 골을 넣고 일방적으로 몰아치고 있다. 나는 축구 보랴, 응원하랴, 술 마시랴. 손가락 하나로 휴대폰 자판 누르랴 바쁘다.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는 나. 좀 대단한 듯.


제주는 우리를 쉽게 받아주지 않고 애를 태웠다. 화요일 저녁 여섯 시 이십 분 비행기를 타려고 했는데 폭설이 내려  결항하는 바람에  일기 예보 상황을 실시간 확인하며 취소와 예약을 반복했다. 겨우 수요일 저녁 시간으로 변경했다.  게다가 광주공항에서는 비행기가 지연 됐고, 제주 공항에서는 착륙 순간 갑자기 돌풍이 불어 다시 하늘로 올라갔다. 20분을 더 비행하고서야 겨우 도착할 수 있었다. 광주로 다시 회항하는 줄 알았다. 이 여행이 더 소중해진 이유다.


첫날 저녁은 새벽까지 술과 수다로 회포를 풀었다. 술의 좋은 점은 평소보다 큰 목소리로  하고 싶은 이야기를 시원하게 해도 용인된다는 것이다. 미친 척 맥주 한 잔만 가지고도 아주 신난다. 여행 멤버는 올해 마흔한 살이 된 특수 교사, 사십 대 후반 보건 교사, 그리고 막 마흔에 들어선 유일한 남자이자 미혼인 초등 교사, 나, 이렇게 네 명이다. 삼십 대 초반 여선생님 한 명은 이번엔 육아 문제로 빠졌다. 우리는 참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다들 의아해한다. 어째서 서로 잘 맞고 만나면 즐거운지 모를 일이다.


6년 전, 첫 교감으로 부임해서 4년간 근무한 학교에서  만난 동료들이다. 근무지를 옮긴 후에도 가끔 만난다. 1년에 한 번 정도는 여행을 하는데 그동안 해남 캠핑을 비롯해서 제주도, 보성, 영광, 코타키나발루, 완도를 다녀왔다. 올해는  눈꽃 산행을 위해 다시 제주도를 찾아왔다. 눈이 너무 많이 와서 금요일까지는 한라산 등반이 전면 금지됐지만 토요일엔 새하얀 눈꽃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기대 만빵이다. 비행기 결항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기간까지 5박 6일로 늘어났다. 가족에게는 미안하다. 특히 막내에게. 돌아가서 진짜 잘해줘야겠다.


오늘 일정은 성산 일출봉, 섭치코지, 유민 미술관, 글라스 하우스 코스였다. 맛집도 카페도 아주 훌륭했고 하늘과 바다와 구름과 바람까지 끝내줬다. 차에선 자유의 시간을  축하하는 노래가 기분을 돋우었다. '날개를 활짝 펴고 세상을 자유롭게 날 거야' '날아가는 새들 바라보며 나도 따라 날아가고 싶어. 파란 하늘 아래서 자유롭게 나도 따라가고 싶어.' 신나게  떼창한다. 웃음이 비실비실 비집고 나왔다. 걱정이 하나도 없다. 다 잊어버렸다.


남편에게 성산 일출봉에서 넷이 찍은 사진을 보냈다. 답장이 왔다. '그림 좋고~~. 여인네들이 머슴 하나 델꼬 놀러 가셨구만. ㅋㅋㅋ. 조 선생 참 성격  좋은 친구일세.' 머슴이란 말에 다 같이 웃음보가 빵 터졌다. 눈치 빠르긴. 조 선생이 운전 전담하는 건 어찌 알았지? 청일점이 있어 더 행복하다.


 축구까지 이겼으면 더 완벽했을 것인데. 답답한 경기가 방금  끝났다. 응원은  욕으로 바뀌었다. 진 건 아닌데 진 것 같다. 다들 화가 잔뜩 났다. 욕하면 뭐 할 것인가. 말레이시아가 잘했다. 술 한잔 더 할 핑계가 생겼다. 나는 옆에서 휴대폰으로 글을 마무리해야 하는데 글빨이 안 서고 시간만 간다. 그래서 도대체 이 글에서 말하고자  하는 주제가 뭐냐? 한심하다.


일단 대충 마무리해 보자. 여행을 한번 하고 나서 다음엔 다시 안 하게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더 사이가 돈독해지는 우리 같은 관계가 있다. 이  엉뚱한 조합이 좋다. 단톡방에 시답지 않은 일상을 공유하고,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싶을 때 신경 안 쓰고 편하게 마음을 터놓을 수 있다. 서로의 비밀도 알고 있는 사이라 섣부르게 절교 이딴 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 나이 상관없이 모두 친구라고 보면 된다. 제일 연장자인 내가 손해인가, 이익인가?


마음이 통하고 취향이 같은 사람을 발견했다는 행운에 감사한다. 내가 좋은 사람이기에 이처럼 좋은 사람들도 만났을  것이다. 너무 잘난 척인가? 그렇다 해도 할 수 없고.


 '브라보! my life. 나의 인생아!' 아까부터 나도 모르게 차에서 들었던 가사를 자꾸 반복해서 흥얼거리고  있다. 반복되는 평범한, 그리고 애쓴 하루하루가 있었기에 오늘처럼 특별한 날이 빛이 난다.  


굿 나잇. 내일도 찬란한 하루를 기대하며 이만 총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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