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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Dec 17. 2023

사진첩 속으로의 여행

'일상의 글쓰기' 글감 - [사진]

카톡 프로필 사진에 나보다 10년쯤 젊고, 10cm쯤 키가 크고, 10kg쯤 더 날씬한 여자가 모델을 흉내 내어 포즈를 잡고 서 있다. 10년이 아니고 분명 서너 달 전의 내가 맞다. “다리 길게 찍어.” 다리는 길고 얼굴은 작아 보이게 아래에서 위로 기울여 카메라 각도를 잡아야 한다. 남편은 사기 치지 말라며 대충 찍는다. 자연스러운 게 낫다고 변명하는데 여러 번 찍기 귀찮아서 그러는 거다. 얼굴은 보정 어플이 알아서 환하고 예쁘게 만들어 준다. “사진과 다르시네요.” 처음 만난 사람은 분명히 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예쁘게 나오는 게 좋다. 심지어 그게 나인 것 같은 착각마저 든다.  

   

사실 나도 점점 피곤해지고 있다. 언제 어디서든 쉽게 셔터를 누를 수 있어서 더 나은 것을 얻으려고 한자리에서도 반복해서 찍는 일이 보통이다. 휴대폰 갤러리에는 이미 몇천 장이 넘어가고 있다. 사진 공해다. 골라내고 지우는 것도 머리 아픈 일이어서 미루게 된다. 어릴 적 사진을 보고도 그때 일이 잘 기억나는 건 가끔 들여다보면서 되새김질해서인데, 근래의 것이어도 기억이 흐릿한 이유는 양이 너무 많은 탓에 다시 찾아보지 않아서가 아닐까? 교수님이 보내 준, ‘사진을 찍지 않으면 우리 뇌가 더 끈질기게 기억하려고 할 것이다. 그저 그 순간을 만끽해 보라.’던 채윤태 기자의 글을 읽고 결심이 섰다. 그래, 쓸데없이 아까운 시간 버리지 말고, 내 눈과 온몸으로 아름다움과 감동을 느끼며 살자. 사진 따위 중요하지 않아!    

 

‘사진’이라는 글감을 받고 오랜만에 앨범을 꺼냈다. 나보다도 젊었던 부모님이 거기에 있다. 보고 싶은 아빠의 얼굴을 쓰다듬어 본다. 23개월(사진 뒤에 날짜가 쓰여 있다.) 된 내가 고향 돌담 아래에서, 마주한 햇살이 눈부신지 살짝 찡그린 채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어쩌다 손에 들어온 사진기가 있어 기회를 놓칠세라 제일 예쁜 원피스를 입혀 “여기 보세요!”, “까꿍!” 목소리 높이고 손뼉도 쳐 가면서 아이의 시선을 집중시켰을 것이다. 흑백 사진 안에 부모님의 애정과 주변 어른들의 시선, 귀하게 여기는 감정이 따뜻하게 들어 있다.  

   

초등학교 언덕에 비스듬히 기대어 새초롬한 표정을 짓고 있는 내가 보인다. 그때가 선명하게 떠오른다. 팔에 찬 반장 명찰을 자랑하고 싶어서 왼팔로 무릎을 짚고 어깨를 살짝 비틀어 자세를 취했다. 나만 아는 그 마음이 왠지 부끄러웠다. 그 뒤로 잘난 척하지 않으려고 애썼다. 자연스러운 감정이었다고, 겸손하려고 노력하는 어른으로 잘 자랐다고 어린 나에게 말해 주고 싶다.  

   

중고등학교 수학여행 사진이 몇 장 있고, 대학교 때 것은 좀 더 많다. 남편이랑 엠티 가서 쪼그려 앉아 설거지하고 있다. 닭싸움하는 것도 눈에 띈다. 대학 졸업하고도 한참 지나서 사귀었지 저때는 친구 사이였는데 둘이서 뭘 많이 같이 하고 있다. “풋풋하고 어린데 왜 못생겼지?” 함께 깔깔거린다. 소중하고 재미있다. 실은 대학에서 처음 본 남자가 남편이었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려고 정문을 막 지나가는데 키가 훤칠하고 훈훈한 남학생이 베이지색 사파리를 입고 반대편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눈이 자연스레 따라갔다. 그 장면이 슬로비디오처럼 스쳐 간다. 같은 과에서 그를 만나서 내심 반가웠다. 그이에게 그 얘기를 하니 “나를 좋아했네. 말하지 그랬어. 그럼 사귀어 줬을 텐데.” 하며 으스댄다. “그랬으면 지금 같이 안 살겠지.” 후련하게 잘 받아쳤다. 사진 한 장으로도 주거니 받거니 이야깃거리가 생긴다.    

 

연애 시절, 결혼식, 신혼여행, 신혼 생활이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다. 다음 장부터는 첫째와 둘째의 어릴 적 모습이 고스란히 서너 권의 앨범에 담겨 있다. 웃고 찡그리고 집중하는 표정이 생생하다. 필름 사진기의 시대를 거쳐 아이들 초등학교 무렵부터는 디지털카메라로 찍었다. 늦둥이 막내는 2011년에 낳았는데 그때부터는 스마트폰 카메라를 사용한 모양이다. 컴퓨터 폴더에 연도별로 저장하고 혹시나 지워질까 봐 포토 북(Photo Book)으로도 만들어 놓았다.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의 우주가 된다. 그들의 어린 시절이 지나가 버리는 것이 아쉬워 오래 간직하려고 시간을 열심히 박제해 놓았을 것이다. 가장 마음에 드는 사진을 하나만 고르라고 한다면 너무 어렵다. 그 순간순간이 모두 소중하니까. 나를 버리고 온 정성을 들여 키운 내 새끼들, 그들도 엄마가 되면 내 마음을 알까?     


사진첩 속을 여행하다 보니 내 인생이 드러나 보인다. 사랑하는 사람, 좋아하는 것, 간직해 두었던 이야기와 다시 만난다. 나 자신이 무엇에 의미를 두고 있는지 그 기록을 보면 짐작할 수 있다. 아까 사진 따윈 중요하지 않다고 한 말을 조금 수정해야겠다. 찍지 않고 눈에 담아 마음껏 느끼는 낭만을 자주 누리자. 오래 기억하고 싶고 삶의 역사가 될 순간이라 생각하면 모아서 잘 간수하자. 가끔은 사진 안에 시간을 잡아 가두어 두고 한 번씩 꺼내 보는 것도 감동적일 것 같다. 그냥 나답게 살자.     


아이랑 나들이하러 나간 코스모스밭에서 카메라를 향해 활짝 웃어 본다. 일상이 특별해지는 느낌이다. “자기야, 두 컷만 찍어 줘. 눈 감을 수도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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