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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Feb 16. 2024

고생하셨습니다. 형님!

따뜻한 설날

새해 첫날 아침, 떡국을 먹고 어머님께 아들, 며느리, 손주들이 차례로 세배를 드린 후에, 집 뒤편의 가족묘지에 가서 성묘까지 마치고 돌아왔다. 2박 3일 동안의 설을 쇠고 이제 차분하게 맛난 것 먹으며 쉬다가 오후에는 다들 집으로 돌아갈 것이다.    

  

새해 남도는 겨울답지 않게 화창했다. 벌써 봄이 오나 싶을 정도로 햇살이 따스해서 밖에서 놀기도 좋았다. 시댁 마당 한편에서는 남편과 막내 시동생이 장작을 피웠다. 소고기, 돼지고기를 구워 소주에 곁들여 먹고 나서 오징어를 굽더니, 이번엔 굴 망태기에서 굴을 꺼내 올려놓는다. 좋은 숯을 사서 쓰면 좋으련만 꼭 연기 나는 장작을 사용하는 바람에 좀 얻어먹으려고 불 옆에 앉아 있다가 눈으로 들어오는 연기를 피해 다니기 바쁘다. 남편에게 숯을 준비 안 했다고 타박했더니 이런 게 다 추억이 된단다. 그렇긴 하지만 그런 추억은 이제 충분히 넘치니 눈물 좀 안 흘리게 세련되게 구워 먹으면 안 될까나?    

 

굴껍데기가 푸시식 소리를 내며 입을 벌리면 목장갑을 낀 손으로 뜨거운 굴을 잡은 후 과일칼을 사용해서 알맹이만 떼어 낸다. 통통한 것을 호호 불어 입에 넣으면 뜨끈한 즙이 터지면서 바다향이 입 안 가득 퍼진다.  

    

“우와! 굴이 진짜 개 커요! 개 맛있어요!” 요즘 아이들식 표현으로 감탄하며 네 아이들이 젓가락을 들고 제비 새끼들처럼 조로록 앉았다. 처음에 ‘개’ 소리를 들을 땐 화가 났는데 적응이 됐는지 이제 그러려니 한다. 나 혼자 결사반대해 봤자 전 국민이 쓰는 단어가 돼 가는 걸 어쩌랴.     


우리 얘들이 올해 대학교 4학년, 2학년이 되고, 형님네도 첫째가 4학년, 둘째가 이번에 1학년에 입학한다. 자박자박 걸어 다니면서 넷이서 이 마당에서 풀잎으로 상을 차리며 놀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이제 모두 대학생이라니. 숙녀로 자라 버린 아이들을 보며 새삼 내 나이를 실감한다. 굴은 구워지기가 무섭게 없어지고, 새 굴 덩어리가 바로바로 그 자리를 메꾼다. 배탈이 난 막내만 빼고 어머니와 형님까지 모두 불을 둘러싸고 앉으니 입이 아홉이나 된다.    

 

“정말 남자 친구가 있다고? 진짜 배신이야.” 아빠가 딸에게 그러듯 시동생이 큰 조카에게 엄청 서운해하고 있다. 그는 결혼하기 전에 형님 집에서 4년간 함께 지냈기에 조카들이 커가는 게 아쉬운가 보다. 수다쟁이가 되어 아주버님, 형님, 조카들과 얽힌 추억을 풀어놓는다. 직장 동료들과 술을 엄청 많이 마시고 들어와 형님 내외와 집에서 또 마신 이야기, 아침마다 큰 조카를 아파트 건너에 있는 학교에 데려다주던 일. 그러다가 형님이 동네에서 시동생을 잘생긴 연하 남편이라고 오해받은 일로 다 같이 한바탕 깔깔거리며 즐거워한다. 그는 키가 183cm에 4형제 중에 제일 잘생긴 훈남이었으니 기분 좋은 오해였을 듯하다. 조카들도 같이 살았던 게 참 좋았었다며 삼촌이랑 손잡고 학교 가던 길을 그리워한다.     


“그때가 정말 좋았어요. 진짜 고생하셨습니다. 형수님.” 소주를 한잔한 막내 시동생이 다시 한번 형님께 고마움을 전했다. 어느덧 사십 대에 이른 그의 눈빛에 진심이 가득하다. 시동생을 거두는 것이 쉽지 않았을 텐데 넉넉하게 품어주고 최선을 다했던 그녀는 이전에 셋째 시동생도 신혼 전셋집에 데리고 살았었다.

    

맞아, 그랬지. 세월을 지나오면서 잠시 잊고 있었다. 나랑 고작 두 살 차이지만 맏며느리라서 감당해야 할 어깨가 무거웠겠다. 새삼 존경스럽다.     


예년처럼 모두 다 같이 모이지는 못하고, 형님과 조카들, 막내 시동생만 만난 설이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형님이 건강을 되찾은 것이 고마웠고, 아이들이 잘 커서 제 길을 헤쳐나가는 걸 보는 것도 뿌듯했다. 따스했던 햇살만큼 온화한 형님의 얼굴을 마주하니 내 마음도 평온했다.      


주변에서 나이가 들고 일가를 이루면서 형제간에 소원해지는 걸 본다. 아이들이 짝을 만나고 가정을 이루는 때가 오면 우리도 그렇게 될까?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에 흩어져 사니 아마도 지금보다는 자주 못 보게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오랜만에 온 식구가 만나는 게 그저 즐거워서 힘들어도 명절을 기다렸던 시절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몇 년 전부터는  4형제 모두가 모이는 것이 어려워지고 있다. 처음엔 서운하기도 했지만 이젠 받아들여지고 마음이 편해졌다. 각자 알지 못하는 사정이 있을 것이다.  

    

자주 만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우애 있게 지내려는 마음인 것 같다. 서로 사는 게 바쁘긴 해도 아직까지 4형제가 서로 위하는 마음은 식지 않았다. 잘못은 눈감아주고, 속상한 것은 터놓고 이야기하고, 행복은 나누며 살고 싶다. 쭉.     


올해는 동서들끼리 단합대회라도 해야겠다. 그럴 때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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