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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Jun 23. 2024

비 내리는 창가에 앉아

추억은 언제나 포근하고 아리다.

‘오늘 낮부터 내일 오전 사이 낙뢰를 동반한 비가 예보되었습니다. 30mm 이상 강한 비가 예상되니 안전에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안전 안내 문자가 요란하다. 토요일, 새벽부터 시작해서 벌써 세 개째다. 오늘 늦잠의 핑계는 비다. 어제부터 목, 어깨가 결리고 심지어 손가락 마디까지 욱신거리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 후로는 좀 괜찮아진다. 늦은 아침을 먹고 드립 커피를 한 잔 내려서는 거실 소파에 앉아 창밖을 바라본다. 커피를 끊으려고 했는데 날씨가 허락하지 않는구나. 맛은 잘 모르지만 이렇게 감성을 흔드는 날이면 또 마셔야지 어쩌겠나. 아파트도 하늘도 온통 회색빛이다. 유리창에 매달려 있는 물방울을 보고 미술관에서 마주했던 작품을 떠올린다. 제목 <물방울>. 물방울만 그렸던 작가 이름이 뭐였더라? 같은 걸 보고도 어떤 이는 예술을 한다. 비가 많이 온다고 했는데 아직 쏟아지지는 않는다.           


흐리고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으니 감성적인 분위기가 있다. 음악은 없다. 읽고 있는 책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한 번에 한 가지만 하라고 해서 좀 그래 볼까 한다. 물방울이 뭉개지면서 세로줄을 그리더니 이내 달리기 시합을 한다. 이 리듬감을 예술로 표현하려면 미디어아트 기법을 써야 하나? 하늘이 더 어두컴컴해지고 회색이 짙어진다. 아무래도 음악을 틀어야겠다. 마늘과 양파를 널어 놓은 거실과 좀 안 어울리긴 하지만, 오늘의 선곡은 카를라 브루니(Carla Bruni)의 <더 위너 테잌스 잇 올(The Winner Takes It All)>. 이거 이거 느낌 돋는데? 아주 진득하다. 글쓰기 딱 좋은 날인 듯.  


어릴 때도 비 오는 날을 좋아했다. 그분이 오시면 농사일을 쉴 수 있어서다. 집집마다 전 부치는 냄새가 났다. 남자 어른들은 모여서 삼봉을 쳤다. 어른들이 집에 머무르니 친구네로 마실 가기는 눈치 보였다. 그래도 가끔 쳐들어가 죽치고 놀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엄마가 해 준 부침개를 볼 터지게 먹고 나서 큰집(할아버지 댁)으로 달려갔다.


큰집은 바다와 선창, 아름다운 노을이 내려다보이는 낮은 언덕에 기와를 얹은 새 양옥집(그래도 부엌은 아궁이)이었는데, 거기에서 이제 갓 스물을 넘은 넷째 고모노는 게 또 하나의 즐거움이었다. 고모는 섬에서 농사를 돕고 살림을 했지만, 피부가 희고 고운 미인이었다. 아무리 더워도 들에서는 두 겹, 세 겹 수건과 모자로 얼굴을 꽁꽁 싸매고 일했고, 피곤해도 자기 전에는 늘 오이를 얼굴에 얹었다. 곡물가루에 꿀을 섞은 팩도 자주 올렸음은 말할 것도 없다. 동네 아낙들은 볼 때마다 “으찌 저리 서울 가시나 같이 하얗고 이삐까요?”라며 추켜세웠다. 할머니는 “아이고, 을마나 부지런히 가꾸는지 몰라라우.” 하고 자랑했지만 그 속에 숨겨져 있는 미안하고 애틋한 마음도 느껴졌다.  고모는 공부도 잘해서 1등만 했다는데 할머니가 갑자기 아프신데다 작은 아빠 대학 공부를 시키느라 고등학교에 보내지 못했단다. 다행이라고 해야할까? 막내 고모는 막내 삼촌과 함께 목포에서 고등학교에 다니고 있었다. 뿌리 깊은 가부장적인 사고를 아직 벗어나지 못했던 시절이었다.  

       

비가 내리면 고모는 콩이나 보리를 볶고, 아궁이불에 감자를 구웠다. 고구마튀김이라도 하면 재수가 좋은 날이었다. 고모 방에서 배를 깔고 엎드려 ‘레이디 경향’, ‘여성 동아’, ‘리저스 다이제스트’ 같은 월간지를 펼쳤다. 고모부엌에서 일하는 동안 얼른 뒷부분에 작은 글씨로 쓰인 은밀한 내용을 읽고서는 안 그런 척하곤 했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내용이라 참을 수가 없었다. 고작 열 살이나 열한 살쯤 됐으려나? 월간지로 세상을 일찍 깨친 나는 벌써 글의 분위기를 간파했다. 하긴 그때 이미 고모 책장에 꽂힌 <<상록수>>의 채영신과 박동혁의 순수하고 비극적인 사랑에 가슴 저리던 아이였으니까 뭐. 고모는 펜팔을 하고 라디오나 월간지에 사연을 보내는 게 취미였다. 펜팔 친구에게서 답장이 오기를 기다리고, 라디오에서 자신이 보낸 이 읽히면 빙긋이 미소 지었다. 방송국이나 잡지사에서 받은 전자 제품이나 조리 기구 같은 것도 몇 개 있었던 걸 보면 글을 꽤 잘 썼나 보다.      


커다란 밧데리를 붙인 일제 쏘니 라디오에선 조용필, 이용, 전영록의 노래가 흘렀다. 은혜로운 비가 살아있는 모든 것에 생기를 불어넣고 초록을 더 짙고 튼튼하게 만드는 동안 농사일에 지친 사람들도 다리를 주무르며 잠시나마 여유롭게 쉬는 정취가 좋았다. 큰방에선 할머니 옆에서 할아버지가 유교 경전을 읽고, 건넛방의 고모는 느긋하게 음악을 들으며 뭔가를 끄적이던가 가끔은 수를 놓았다. 빗살이 마당을 조용히 두드리는 소리가 처마 밑으로 떨어져 톰방거리는 가락과 더불어 화음을 맞췄다.


빗발이 더 굵어진다. 집 안까지 시커메져서 거실 등을 켰다. 밤보다도 어두운 낮에 비추는 조명이 아늑하다. 80년대 가요로 곡을 바꿨다. 조용필의 <촛불>, <비련>, <창밖의 여자>, 이용의 <바람이려오>, <잊혀진 계절>을 차례로 들어 본다. 오늘 공기에 딱이구먼. 그 시절 노래들에선 푸릇푸릇한 고모 냄새가 난다. 고모 나란히 드러누워 세수한 얼굴 오이 조각을 올린 채 비와 음악을 배경 삼아 조잘대던 때의 싱싱한 냄새. 어여쁜 우리 고모는 유머가 철철 넘치는 육지 남자를 만나 섬에서 탈출했다.

      

나는, 내리는 비에 젖어, 끝나지 않은 유년을 가슴에 품은 50대가 되었다. ! 비가 촉촉하게도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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