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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솔향 Dec 21. 2023

잘 고른 남편

'일상의 글쓰기' 글감 - [가사 노동]

막내딸이 2학년이었던가? 어른들에게 스스럼없이 굴어서 인기가 많았는데 하루는 교회 권사님이 “너희 집은 아빠가 음식을 다 해 준다며? 느그 엄마는 뭐 한다냐?”라 농담을 거셨다고 한다. 우리 딸은 “아니에요. 우리 엄마도 잘해요.”라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래? 뭐 잘하는데?”하고 물었더니 “달걀 후라이요.”라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만나는 권사님마다 “달걀 후라이를 그렇게 잘한다며?”라고 놀리셔서 민망했다. 막내가 눈치가 없긴 했지만 요리를 잘 못하는 건 맞다.


남편은 본인이 어려웠어도 잘 자라서인지 아이는 알아서 크게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어려서부터의 환경이 중요하다고 여겨 책을 읽어 주고 놀잇감을 만들어 놀이를 함께 했다. 엄마표 영어로 공부시키고 이것저것 경험하게 해 주느라 분주했다. 그는 그렇게까지 안 해도 되는데 스스로를 피곤하게 만든다며 못마땅해했다.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내 식대로 하라고 강요할 수는 없어서 아이들 뒤치다꺼리는 거의 내 몫이 되었다. 대신 빈혈에 시달리고 체력마저 약했던 탓에 살림은 적당히 하기로 했다.


집안일은 골치 아프다. 하지만 누군가는 해야 온 가족이 먹고 쉬고, 또다시 생활해 나갈 힘을 얻는다. 효율적으로 재빨리 해치우고 여유 시간을 많이 만드는 것이 내 목표다. 방 청소는 각자 방 주인이 알아서 하고, 빨래는 같이 사는 친정 엄마가 도와주신다. 밥에 진심인 남편이 요리를, 설거지는 내가 한다. 밀린 일은 주말에 보충하면 된다. 요즘 젊은 세대는 가사 노동은 당연히 ‘함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 집은 이미 그렇게 하고 있다. 엄밀히 따지면 육아가 끝나가니 내 일이 제일 적어지고 있다. 내 살림 솜씨가 이 모양이어서 살림 올림픽을 하면 메달권에 들 만큼의 실력을 갖춘 형님이나 속옷까지 다려서 입히는 동료를 보면 그저 입이 벌어질 뿐이다.


퇴근해서 돌아오면 가방을 던져 놓고, 바로 소파에 몸을 던진다. 머리가 빙빙 돌고 속이 울렁거리기까지 해서 당장 쉬지 않으면 안 된다. 원래도 늘 피곤했지만 설상가상으로 목디스크까지 터져서 더 그렇다. 잠깐이라도 자고 나면 괜찮아질 것이다. 조금 있으니 남편이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반겨줄 힘이 없어서 자는 척한다.

 

간단히 씻고 나온 그는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를 넣은 된장국과 막내가 좋아하는 제육볶음을 만든다. 해산물을 넣어 파전을 부치거나 겉절이를 버무리기도 한다. 달그락거리는 소리를 자장가 삼아 깜빡 잠이 든다. “엄마 깨워라.” 소리에 눈을 뜬다. 아까보다 머리도 몸도 훨씬 가벼워졌다. 냄새가 구수하다. 눈치껏 반찬과 수저를 놓고 밥을 푼다. “된장국 맛있다!”라는 말로 슬쩍 고마움을 표시하면 “맛있게 먹어 주니 고맙네.”라고 대답한다. 이런 바람직한 사람이 없다. 딸아이가 제육볶음도 맛있다고 거들며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조잘거린다. 우리 집 복덩어리다. 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그이는 식탁 정리를 마무리한다. 위의 두 딸들이 대학교에 진학하고 초등학생인 막내만 남은 우리 집의 저녁 풍경이다. 요즈음은 사이가 좋은 편이라서 더욱 훈훈하다.


부지런한 남자와 결혼했다. 뚝딱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낼 뿐만 아니라 시장도 알아서 봐 온다. 가끔 함께 마트에 가면 필요한 것은 다 알아서 산다. 나는 졸졸 따라다니다가 과자나 라면 따위만 집어 든다. 한번씩 냉장고를 깨끗하게 정리하고, 맛이 없어진다고 얼린 재료는 오래 두지 않는다. 생선을 깔끔하게 손질하고 회도 잘 뜬다. 벌레가 생기지 않게 음식물 쓰레기를 자주 버리고 욕실 청소처럼 힘든 일을 생색내지 않고 해 놓는다.


언젠가 내가 시댁에서 수박을 썰다가 손가락까지 자른 적이 있다. 피를 많이 보고 나서는 칼질은 웬만하면 자기가 하려고 한다. 틈틈이 본가 일을 거들고, 요새는 밭과 농막을 가꾸면서 서예까지 열심히 하고 있다. 그 와중에 술자리도 꼬박꼬박 만든다. 이건 좀 맘에 안 들지만 어떻게 다 해내는지 대단하긴 하다. 자주 누워 있는 내게 ‘잠자는 소파의 공주’라는 둥 ‘집에만 오면 시체’라는 둥 장난을 치기도 하지만 큰 불만은 없는 것 같다. 왜 아빠가 많이 하냐고 물어보는 막내에게 더 잘할 수 있는 사람이 하는 것이라고 말해 주는 걸 보고 솔직히 감동받았다. 좀 멋진 듯.


물론 감수해야 하는 것도 있다. 자잘한 잔소리를 들어야 하고, 싸울 때 불리하다. 나도 지적하고 싶은 것이 있지만 ‘너나 잘하라’는 눈빛을 받게 되니 참게 된다. 술을 마시고 늦게 들어오는 것이 너무나 싫은데도 오래 화내고 있을 수가 없다. 형님네를 보더라도 형님이 가사 노동을 전담하셔서 그런지 아주버님보다 입김이 더 센 듯 보인다. 더 많이 고생하는 사람에게 큰소리칠 수는 없으니 다 맘에 들지는 않아도 이쯤은 받아들여야 한다.


김창옥 교수가 ‘연애나 결혼은 동등하기보다는 손해 보고 싶은 사람과 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것이 사랑이라고. 그 말을 듣고 보니 평생 밑지고 사는 남편이 나를 더 많이 사랑한다. 내 사랑도 표현해야겠다. 깜짝 요리와 예쁜 말을 자주 하고, 많이 웃어 주고 성질은 더 죽여야지. 솔직히 체력을 핑계 대고 배려에 기대어 게으른 게 습관이 된 건 아닌지 반성해 본다.


고맙다. 내 남편! 내 안목에 만족한다. 잘 골랐다.(불만 토로는 다음 기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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