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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일아트 받는 중학생

F형 딸을 둔 T형 엄마는 쉬고 싶다

by 솔향


“방학 때 엄마랑 같이 오면 착한 얘들이에요. 초등학생도 많이 오는데요.”


어린 손님도 많다는 네일숍 사장님의 말에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이제 중학생인 아이에게는 비싸고 사치스럽다는 생각과 아이가 해 달라는 대로 다 들어 주면 버릇이 나빠지거나 자기조절을 못하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 많았다. 꼭 한번 해 보고 싶다는 간절한 소망을 교육상 냉철하게 거절해야 하는지, 그 마음을 받아 주며 과감히 허락해야 하는지, 어떤 선택이 아이를 위한 것인지 판단이 서질 않는다. 아이의 특성, 처한 상황, 시대마다 잘 키우는 정답은 자꾸 바뀌기 때문이다. 결국 자존감이 떨어지고 예민한 아이의 편이 되어 주기로 했다.


막내는 방학 전부터 하라는 공부는 병아리 눈물만큼도 안 하면서 자기 손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보고, 네일아트 동영상을 찾아보고, 또 찾아보더니 꼭 손톱 케어를 받고 싶다며 나를 볶아댔다. 손톱 옆에 하얗게 삐져나온 살을 계속 뜯었더니 손톱이 비뚤게 나왔다나? 아무리 눈을 크게 뜨고 다시 봐도 어디가 비뚤어졌다는 건지 모르겠다. 본인에게만 보이나 보다. 손톱 케어를 받으면 곧게 만들 수 있다는 믿음은 도대체 누가 준 건지 게다가 그게 뭐 그리 중요한지, X세대 엄마는 당최 이해가 안 간다. 손이라니. 얼굴에 난 여드름도 아니고 말이지. 심지어 손가락에 난 있는 듯 없는 듯 작은 점을 5500원 들여 빼기까지 했다.


전문가에게 손을 맡긴 아이는 행복한 표정이다. 자기가 다 알아서 한다길래 난 안 보이는 쪽에 앉아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 돈도 예약도 이동도 스스로 하는 게 알아서 하는 거지. 내가 제 비서쯤으로 보이나 보다.


“어머, 정말 손이 하얗고 이쁘구나!”

“사장님은 손 모델 어떻게 생각하세요? 연봉이 2-3억이래요.”

“그 사람들은 손으로 아무것도 못 해. 설거지도, 연필 잡는 것도. 네일숍도 가면 안 된대. 난 하고 싶지는 않다. 피곤할 것 같아. 손 모델 안 해도 내 손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래요? 저는 해 보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근데 제 가운데 손톱이 조금 비뚤게 나 있어서 챗GPT에게 물어봤더니 네일 받으면 반듯이 된다고 하더라고요.”

“AI는 통계나 평균으로 대답하잖아. 사람마다 케이스가 다 달라. 처음부터 뼈가 틀어졌을 수도 있고, 습관으로 변했을 수도 있고. 네일을 받는다고 좋아지지는 않을 것 같은데? ”

“그래요? 손 케어받으면 곧아진다고 했는데? 제가 자꾸 뜯어서 이렇게 됐거든요.

다른 사람들도 조금씩은 다 그래. 오른손은 연필을 쥐던지 하면서 자꾸 사용하니까 뼈가 틀어질 수밖에 없고 손톱도 같이 틀어지겠지? 그렇다고 손을 안 쓸 수도 없고. 네 손톱은 거의 티도 안 나는데?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얼마나 다른지 아니? 손님 중에서 손톱 윗부분에 반달이 작아서 싫다, 어떤 사람은 반달이 너무 커서 싫다. 별것 아닌 걸로 스트레스받는 사람이 많아. 너무 자세히 보면서 스트레스받지 마. 딱 봤을 때 이쁘면 되지. 니 손 얼마나 예쁘니?”

제 손 예쁜가요? 우리 학원 선생님이 제가 네일 받는다고 하니까 빨간색으로 하래요. 근데 빨간색은 좀 그렇지 않아요? 나이 많은 사람이 하는 색?”

“하하하. 아줌마만 빨간색 바른다는 편견을 버려. 반짝이 좋아하는 사람 중에도 아줌마도 있고, 중학생도 있어. 나는 ‘짱구’가 훌륭한 아이라고 생각하거든? 지구를 몇 번 구했냐? 여자 좋아하는 것밖에 없는데 짱구 못 보게 하는 엄마들 이해가 안 가더라. 차라리 ‘포켓몬스터’가 청소년 가출에 동물 학대 애니메이션 아니니?”

“어른인데 사장님도 애니메이션 좋아하세요?”

“그럼 우리 아들이 덕후라서 둘이서 많이 봤지. 나도 좋아하기도 하고. 레이디버그나....”

제가 본 애니메이션도 많이 보셨네요? 신기해요. 하하. 사장님 저는 손톱 분홍색 계열로 할래요.”

손이 하얘서 이런 밝은 분홍색이 잘 어울린다. 깔끔하고.”


마흔 중반쯤으로 보이는 이 사장님, 놀랍다! 이후에도 다른 만화 영화, 손톱을 짧게 깎으면 안 되는 이유, 손톱 자르는 방법, 매니큐어 바르기 전에 베이스를 바르는 이유 등 끊임없이 대화가 이어진다. 어떻게 쓸데없는 아이 말을 저렇게 잘 받아 주지? 심지어 아이보다 말이 더 많다니. 오랜만에 말 상대 해 주는 사람을 만난 아이가 신났다.


아이에게 미안해진다. 저런 엄마를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 아니, 엄마가 아니라서 시비를 걸지 않는 것인가?문제해결형 엄마와 감성형 아이는 늘 부딪힌다. 이론으론 빠삭해도 막상 닥치면 급한 성질이 먼저 튀어나오는 바람에 수많은 싸움과 화해와 노력을 반복했다. 이해하고 공감하면서 스스로 해결하도록 티 안 나게 돕는 것, 너무나 간절히 그렇게 하고 싶지만 말처럼 쉬운 게 아니다. 정확한 매뉴얼이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규칙대로 하는 건 꼼꼼히 잘 할 자신 있는데. 논리가 통하지 않는 아이를 다루기가 너무 어렵다.


늙어서 그런지 체력과 에너지가 달린다.이 세상에 맘대로 되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알게 하려고 신이 자식을 주셨다는 명언을 곱씹는다. 마음이 약해진다. 아무래도 자신이 없다. 멀리 도망가고 싶다. 일단 쉬고 생각해야겠다. 나만 보면 '징징'과 '쌩쌩'을 장착하고 가자미눈을 흘기며 풀기 어려운 난제만 내놓는 아이와의 이 난국을 어떻게 타개해야 할지. 자꾸 네일숍 사장님이 생각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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