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이 만나야 하는 이유
어렸을 적 아이들은 할머니 댁에 가는 명절을 손꼽아 기다렸다. 열 시간이 넘게 달려온 형님네 두 딸과 내 두 딸은 한두 살 터울로 넓은 마당에서 소꿉살이를 하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를 외치며 얼음이 되었다. 입만 쪽 벌려 마당에서 숯불에 구운 고기를 쏙 받아먹곤 또 깔깔거리며 내달리곤 했다. 대문 앞 아이들의 아지트인 마을회관 옥상은 영롱한 전복 껍데기와 예쁜 무늬의 돌멩이와 갖가지 색깔의 꽃과 잎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볕이 좋은 추석에는 집 뒤의 야트막한 동산에서 밤을 따고, 눈발이 흩날리고 얼음이 쨍하고 깨지는 설에도 아이들은 꽁꽁 언 손을 마주 잡고 온 동네를 쏘다녔다.
셋째와 넷째 시동생도 결혼하여 일가를 이루었다. 셋째 동서는 연년생 아들과 딸을, 내가 한 살 터울의 늦둥이 막내딸을, 연이어 넷째 동서가 연년생 딸 둘을 낳았다. 이 아이들에게도 시골 할머니 댁은 사촌을 만나 따뜻한 우애를 나누고, 신나는 모험과 보물 같은 추억을 쌓는 행복한 놀이터였다.
큰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이 되고, 이제 그중 둘은 졸업하고 사회에 첫발을 내딛을 준비를 하고 있다. 아래 다섯 아이들은 곧 고등학생이 될 장손을 비롯해 모두 중학생과 초등 고학년이 되었다. 2~3년 전부터 아이들이 사춘기에 접어들더니 점점 서먹해졌다. 코로나 시국을 지나면서 한두 집씩 명절에 못 오기도 하더니 더 그렇다. 이제 부모보다 키가 더 커진 아이들은 서로 만나도 손에 놓인 휴대폰만 들여다보거나 낮잠에 빠져 있다. 가슴속엔 설레고 아름다운 추억이 담겨 있지만, 먼저 나서서 술래잡기나 숨바꼭질하자고 말을 꺼내지 않는다. 가끔, 떼 지어 칼바람 맞으며 마을 길을 지나 학교 앞 편의점에서 라면이나 군것질거리를 사 먹고 오는 것이 그나마 그들의 수줍은 교류 활동이다.
“엄마, 배드민턴 라켓 챙길걸. 오빠랑 소윤이 언니가 배드민턴을 잘 친다고 하던데.” “할머니 집 동네에 노래방도 있나?” “나 어렸을 때 명절에 할머니 댁에 가는 게 진짜 설렜었는데. 진짜 행복한 기억이야. 근데 지금은 언니 오빠랑 너무 어색해. 서하, 채하도 안 와서 더 어색할 것 같아. 아, 어쩌지?” 출발하기 전부터 시작해서 시댁으로 향하는 차에서도 막내의 걱정이 한가득이다.
같이 놀고 싶으면 먼저 궁금한 것도 물으면서 말을 걸어 보라고 일러도 그건 못 하겠나 보다. 참 어려운 게 많은 아이다. 어릴 땐 거침없고 주목받기 좋아해 누구에게나 귀염 받았는데 왜 이리 소심해졌는지. 하긴 사촌 오빠랑 언니도 마찬가지로 먼저 손 내밀지 않으니 사춘기가 잘못한 건가?
오랜만에 만난 석준이가 많이 의젓해졌다. 이번에 자사고에 합격했다더니 대답도 조근조근 잘하고 이제 맘 잡고 공부도 열심히 한단다. 설 전전날 밤에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석준이를 움직여 판을 만들었다. 내심 가고 싶었던 우리 막내도 표정을 관리하며 따라나섰다. 미리 전화로 예약한 시골 노래방의 주인 할머니가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열었다. 아이들을 노래방에 들여 보내고, 동서들과 카페에서 수다를 떨었다. 코끝을 얼리는 차가운 공기에 옷깃을 여미며 노래방에서 나오는 아이들의 표정이 들떠 있었다. 소윤이는 4만 원, 서현이와 우리 막내는 만 원씩을 벌었단다. 셋째 시동생이 98점 이상을 받을 때마다 만 원씩을 상금으로 내놓았으니 아이들은 꿩 먹고 알 먹고인 셈이다.
설 전날엔 아이들의 편의점 나들이와 마당에서 열린 굴구이 파티가 있었다. 아이들에게서 서먹함이 조금씩 풀려갔다. 저녁에 차례를 모시고 나서, 분위기를 더욱 달굴 미끼로 마트에서 사 온 화투와 카드를 던졌다. 먹이를 덥석 문 아이들이 둥그렇게 모여 왁자지껄 카드놀이에 빠졌다. 웃음꽃이 환하게 피어났다. 이런 게 명절이지. 어른들도 오랜만에 고스톱 치느라 허리가 뻐근하고 목디스크가 도졌다고 난리다. 나는 땡전 한 푼 없이 참전했다 남편 지갑을 싹쓸이했다. 아! 꼬시다. 놀다 보니 새벽 두 시가 되었다.
그 새벽에 별은 어찌나 많고 밝고 반짝반짝하던지 냉기가 온몸을 휘감는 겨울 마당의 한가운데에서 한참을 고개 젖혀 하늘을 눈에 담았다. 갑자기 눈보라가 얼굴로 휘몰아쳤다. 그래도 작고 옅은 구름 조각이 빠르게 밀려갈 뿐 하늘은 먹빛 유리처럼 깨질 듯 맑았다. 이렇게 깨끗하게 빛을 발하는 예쁜 별을 본 적이 있었던가? 우주로 가는 길목인 고흥이라 유난히 더 빛나는지도. 막내는 오들오들 떨면서도 별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를 반복하다가 마지못해 들어와 잠이 들었다. 피난민처럼 우글우글 거실에 모여서.
설날 아침, 떡국을 먹었다. 줄곧 낮까지 늦잠을 자던 아이들이 모두 시간에 딱 맞춰 일찍 일어났다. 역시 돈의 힘! 곱게 한복으로 차려입은 어머님께 세배를 드렸다. 며느리들 세뱃돈까지 챙기는 현명한 분이시다. 색색의 귀여운 봉투들이 어른들의 품에서 차례차례 나온다. 아이들이 가지런히 챙긴다. 불로소득이 따로 없다. 그들의 얼굴에 기쁨도 차곡차곡 쌓인다.
직업을 못 속이겠다. 자꾸 사회를 보고 있는 나를 발견한다. “자자, 세뱃돈도 받았으니 손주들은 한 명씩 돌아가며 새해 포부를 이야기해 보거라.” 다들 눈이 동그래진다. 저분이 왜 저러나 하는 눈동자. 기특하게도 우리 이쁜 막내딸이 먼저 새해에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고, 학교생활도 재미있게 하려고 한다며 스타트를 끊자, 언니 오빠들도 차례차례 새해 계획을 이야기했다. 착한 것들 같으니라고. “이제 어머님이 덕담해 주시고요. 다음에 아주버님이 대표로 마무리해 주세요.” 어머니도 아주버님도 잘 따르신다. 사회자는 왕! 다음엔 장기자랑도 준비하라고 해야겠다. 히히.
이번 설은 나름 만족스러웠는지, 돌아오는 차에서 막내의 목소리가 리듬을 탄다. ‘석준이 오빠가 많이 변했다’부터 시작해서, 재미있었던 일을 종알거린다. 그래, 그렇게 걱정하더니, 네가 좋았다니 나도 뿌듯하다. 이게 다 너에게 보람차고 행복한 추억을 만들어주려고 고군분투한 내 큰 그림이란다. 알긴 하냐? 휴, 늙은 엄마는 열일하느라 힘들었으니 남은 연휴는 아무것도 안 하고 쉬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