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타고니아는 고독한 나그네에겐 치명적인 곳이다. 위험하다.
파타고니아를 여행하는 외로운 나그네에 대한 충고.
가지 마오
가지 마오. 부디 파타고니아를 가지 마오. 세상의 모든 고독한 여행자들이여. 거긴 너무 외로운 곳이라오.
혹시 거기를 가더라도, 버스를 타고 떠나지 마오.
동트기 직전의 버스 터미널은 너무 무뚝뚝하다오. 허기지고, 싸늘하게 가라앉은 차갑고 생소한 느낌이 나그네의 외로움에 불을 지핀다오.
혹시 버스를 타고 길을 떠난다 하더라도, 창 밖을 보지 마오.
그 갈색의 벌판과 푸른색의 호수는 내가 혼자 먼 곳에 있음을 실감하게 한다오. 잊고 있었던 것을 포함하여 세포 구석구석에 저장되었던 모든 외로움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다오.
특히 혼자 여행 중이라면, 파타고니아를 가지 말기 바라오.
거긴 너무 잔인하고 위험한 곳이라오.
엘찰텐
버스 안에서 잠을 못 잤다.
버스의 흔들림. 창 밖의 파타고니아.
남미. 아르헨티나.
나는 어쩌다 혼자 여기를 여행하고 있는가.
멀리 산이 보인다.
버스는 엘찰텐에 들어선다.
불타는 고구마.
버스 터미널에서 등산로 입구까지는 일직선의 도로가 있다.
도로는 넓다.
안내판을 따라 산에 오른다.
산엔 바람이 분다.
불어도 너무 분다.
바람에서 냄새가 난다. 빙하의 냄새이다. 빙하가 녹으면서 만 년 전의 기록들이 바람을 타고 파타고니아 벌판을 메아리친다.
고독의 메시지이다.
만 년 전의 고독이 바람을 타고 나그네의 메마른 영혼을 때린다.
바람에 흔들린다.
옷 소매가 바람에 떨린다. 바짓가랑이가 바람에 춤을 춘다.
소리가 난다. 그것들이 떨리면서 소리가 난다.
떨고 있는 것은 저고리의 소매나 바지의 가랑이만이 아니다.
내 마음은 더 흔들리고 있다.
여기까지 와서 불타는 고구마에 가지 않을 것인가.
그렇다.
나는 노인이다.
바람에 날아가기 전에 포기해야 한다. 포기도 선택이다. 전진만 선택이 아니다.
나는 슬기로워야 한다.
놓친 비행기는 아름답다.
불타는 고구마는 이제 내 마음속에 있다.
미완의 꿈으로, 아쉬움 속에 남아 있다.
파타고니아의 고독과 함께 나는 내가 포기한 불타는 고구마를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여행을 하다보면 비행기를 놓치기도 한다. 그러나 놓친 비행기는 아름답다.
정시에 도착해서 안락하게 여행한 스케줄보다. 비행기를 놓쳐서 공항에서 고생했던 기억이 더 오래간다.
불타는 고구마는 지금 나에게 놓친 비행기가 되었다.
바람 때문에...
혹시 최근에 거길 다녀온 분이 계시다면 묻고 싶다.
엘찰텐의 고구마는 지금도 불타고 있는지.
21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