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앞에는 레테의 바다이다. 망각의 바다. 죽음처럼 그 바다를 본다.
여기가 끝이다.
여기서 더 가는 연락선은 없다. 더 가는 비행기도 없다.
여기가 끝이다.
우수아이아이다.
사람은 더 이상 살지 않는다.
여기를 넘어서면 거긴 무인도이다. 바다이다. 빙하이다.
여기엔 이정표가 없다.
여정의 종착지이다.
굽이굽이 파타고니아를 종단하는 여행은 여기가 끝이다.
더 가고 싶은 욕망도, 더 이루고 싶은 의지도 없다.
여기가 끝이다.
시작과 끝
삶과 죽음처럼,
육지와 바다는 아주 친밀하게 여기서 만난다.
해변에 서면,
바다와 육지는 서로 섞이고, 비비고. 어루만진다.
둘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그렇게 섞여 있다.
우수아이아
누구에겐 시작이고 누구에겐 끝이다.
현장은 아름답다.
산을 배경 삼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이 땅끝의 작은 마을은 내공이 있다.
마치 마을이 살아 있는 것 같다. 건축물에 표정이 있다. 골목이 말을 하는 것 같다. 언덕이 움직이는 것 같다.
그리고
그 살아있는 마을은 그 살아있음에 대한 내공이 쌓여 있는 듯하다.
단 한 개도 같은 모양의 건물이 없다.
단 한 개도 똑같은 창문이 없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남미 인들이 창의적이고 예술적인 일상이다.
도시에 실용성과 경제성을 조금 줄이면, 작품성과 예술성이 껑충 뛴다.
거긴 아름답다.
머물던 떠나던 그렇다.
망각의 바다.
레떼의 강. 이승과 저승사이에 흐르는 강. 나그네는 그 강물을 마셔야 하며, 그 강물을 마시면 이승에서의 모든 기억을 다 잊는다는 그 강이.
오늘은 바다가 되어서
우수아이아 앞바다를 흐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바닷물에 목을 적시면
나는 다 잊게 될지도.
사랑과 미움과, 환희와 절망과 그리고 이승에서의 모든 애착들.
머무르고 싶지만,
시간 나그네는 언젠가 그 시간의 끝자락에 서서, 시간 너머로 떠나야 할지 모른다.
우수아이아에서 처럼.
늙은 나그네는 끝이란 단어가 싫다.
땅끝마을에서도 그렇다.
그렇게 남쪽을 바라보면 거기엔 바다가 있다. 바람이 분다. 눈물이 난다.
23 Feb 20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