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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는 열정적이지 않다.

누가 남미를 열정의 대륙이라고 했는가. 남미는 오히려 냉정하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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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미는 열정적이지 않다.

쿠바 하바나는 그랬다. 구 시가지 거리를 지나면 어디선가 음악소리가 들린다.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한다. 딱히 누가 들으라는 것도 아닌 듯하다. 역시 돈을 벌기 위한 것이 아닌 듯하다.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다. 누군가는 길을 가다가 그 음악에 몸을 흔든다. 열정이다.


남미도 그럴 줄 알았다.

눈동자는 불타고, 몸은 유연하고, 목소리엔 생명이 넘칠 줄 알았다.

거리마다 악사들이 음악을 연주하고, 거기 행인들이 발을 멈추고 탱고를 추는 줄 알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남미는 뜨겁지 않다.

안데스의 원주민들은 거의 무표정이다.

칠레나 아르헨티나의 유럽인종은 차분하다. 열정보다 냉정에 가깝다.

길거리에 음악은 없다. 탱고는 공연장에서 뿐이다. 거리공연도, 춤도, 노래도 없다.

소리가 나는 것은 데모대의 함성뿐이다.






열정적이라고 쓰고 야만적이라고 읽는다.

남미는 유럽의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다.

이민자는 그 사회의 마이너그룹이다. 잘 나가는 그룹은 이민을 가지 않는다.


남미는 한때 유럽보다 잘 살았다.

유럽은 배가 아팠을 것이다. 못 살겠다고 떠나간 사람들이 자신들보다 더 잘 사는 상황이 싫었을 것이다.


열정은 감성이다. 냉정은 이성이다.

배불리 먹고 마시며 즐겁게 노는 남미를, 배고팠던 유럽은 야만적으로 이해하고 싶었을 뿐이다.

감정적이고, 즉흥적이고, 감상적으로 보고 싶었을 것이다.


남미에게 물었다. 열정적이십니까? 아니란다.

남미를 열정적이라고 한 것은 남미가 아니다. 다른 사람들이다.






스테레오타입. Stereotype. 고정관념.

누군가 남미가 열정의 대륙이란 고정관념을 나에게 심어 주었다.


나는 고민한다.

나는 열정적이지 않은 남미를 여행하면서 내내 고민한다.


내가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고정관념 또는 인식 가운데 상당수는 오류이다.

경험하지 않으면, 혹은 경험마저도 나를 오류에서 벗어나게 하지 않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명제의 치명적인 오류이다. 그 안다는 것에 대한 회의. 선입견..





혹시 그랬을지는 모르겠다.

열정적이었다. 뜨거웠다. 그런데 그건 잘 살떄 이야기이다.

경제가 몰락하고, 사는 게 힘들어서, 열정이 식었을지도 모른다. 미소를 잃었을지도 모른다.

백 번 양보해서 그렇게 미루어 생각해 보기도 한다.








23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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