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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날지 못함에 대한 일반이론.

펭귄은 날지 않는다. 나도 그렇다. 펭귄은 직립보행을 한다. 나도 그렇다

by B 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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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을 보러 가다.

나는 야생 펭귄을 본 적이 없다.

인공으로 만든 수조에서 갇혀 있는 것만 보았다.

자연에서 살고 있는 펭귄을 보는 것은 오늘이 난생처음이다.


우수아이아에서 배를 탔다.

비가 내린다. 우수아이아가 비에 젖는다.

배는 비 내리는 남극항로를 따라 바다로 나간다.


갈매기다.

섬 사이로 배가 지날 때 가까이에서 갈매기가 난다.

갈매기도 새이고, 펭귄도 새이다.

갈매기도 물고기를 잡아먹고, 펭귄도 물고기를 잡아먹는다.


그런데 왜

갈매기는 지금도 날고 있고

펭귄은 날지 못하는 것일까.


드디어 섬에 도착했다.

펭귄들이 지천이다. 펭귄의 실물을 본 것도, 이렇게 많은 펭귄을 한꺼번에 본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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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에 대한 관찰

통통하다

작지 않다. 그리고 통통하다. 전체적인 느낌이 귀엽다. 비만한 어린아이 느낌이다. 결론적으로 귀엽다.


직립보행을 한다.

육지에서 이동할 때 걸어간다. 직립보행이다. 뒤뚱뒤뚱 걸어간다. 사람처럼 걷는다. 신기하다.


흑과 백.

색은 무채색이다. 등은 검고 배는 하얗다. 그 대비가 선명하다.


왕따가 있다.

펭귄도 왕따를 한다. 주류는 양지바른 곳에 무리 지어 있다. 집단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한 두 마리씩 소외된 펭귄이 있다.


멍 때린다.

별로 하는 일이 없다. 일반적으로 그냥 서 있다. 남극의 바다 바람이 만만치 않은데 피하지 않는다. 그냥 서서 멍 때린다. 생각이 없거나 생각이 너무 많거나 둘 중에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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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에 대한 일반이론

천적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먹어야 한다.

이 두 가지, 천적과 먹이. 펭귄에게 남극만큼 그 생존의 여건을 충족시켜 주는 곳은 없다.


이곳에 올 때까지만 해도 펭귄은 날아서 왔을 것이다.

그런데 먹이 즉 물고기는 물속에 있다. 또는 천적을 피해서 날아오를 필요도 없다.

새는 날기보다 헤엄치기를 더 즐겨하게 된다.


그래서 날개는 퇴화하여 지느러미가 되었고,

몸은 바다의 찬 온도에 견디도록 통통해졌다는 것이 AI가 전하는 펭귄의 슬픈 이야기이다.


생각 없이 사는데 집중하다 보니

나는 새가 아니라 수영하는 새가 되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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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귄의 진화에 대한 특수이론

펭귄의 선택이 펭귄 자신의 선택이었을까 아니면 자연의 선택이었을까.

펭귄이 날지 못하는 것이 운명적이었던 것인가. 아니면 펭귄 자신의 결정이었던 것인가.


펭귄은 날지 않음으로 행복해졌을까.

날지 않은 펭귄은 왜 다시 날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 것일까.

펭귄은 날지 않음으로 생기는 혜택들. 그 절약된 시간이나 에너지를 어떤 용도로 활용하고 있는 것일까.




나그네는 펭귄을 보며 생각이 많아진다.

이별 시간이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제 헤어지면 우린 다시 못 만난다. 나는 늙었고, 지구 반 바퀴를 돌아서 다시 올 수 없다.

영영 이별이다.


펭귄은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냉정할 뿐이다.

그런 펭귄에게 '새야 잘 있어' 하고 인사를 하려다가 말았다. 새라고 부르는 게 실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다.


펭귄. 넌 너야.

날지 못하면 어때. 새가 아니면 어때. 그치?









22 Feb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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